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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리거

pepe

 

언젠가 어둠 속을 투명한 거미가 기어다닌 적 있다. 나는 그 거미의 다리가 사라지고, 나중에 몸통마저 사라진 것을 보았다. 마치 그 거미가 나 같았다. 이제 내 존재마저 희미하거든. 나는 이 캄캄한 어둠 속에서 조각난 내 영혼만 바라봤다. 내 정신은 이미 블랙홀에 빨려 들어간 지 오래다. 나는 누구였을까. 무엇을 하다가 무의 세계에 빠져 버렸지. 내 몸이  분리되기 직전에 떠오른 것은 우습게도 가족의 얼굴이 아닌 잠깐 스쳐갔던 낯선 이의 얼굴이었다. 거미가 줄을 타고 내려온다. 고개를 비틀 때마다 1자의 거미줄이 반짝거린다. 나는 어느새 아래로 사라진 거미를 찾다가 그 줄을 붙잡았다. 이윽고 의지를 잃은 손이 줄을 타고 내려간다.

 

 

*

 

 

좀비 바이러스는 곧 종식될 것이다. 수 년간 끈질기게 버텨오던 인류가 뜻밖의 기회로 좀비 억제제 개발에 성공했다. 지금은 백상 병원에서 채민서를 필두로 한 자원봉사자들이 나서서 좀비가 된 사람들을 찾아서 직접 억제제를 놓아주고 있다. 이것은 좀비의 특성인 공격성을 줄여 바이러스를 옮기는 것을 저지하는 데 의의를 갖는다. 그것만으로도 사람들의 숨통은 트일 것이고, 억제제가 전국에 보급이 된다면 이 절망적인 상황도 해소될 것이라 믿는다.

 

누군가는 계속해서 좀비가 판 치길 원했다. 좀비를 죽여주는 대가로 밥 벌어먹고 사는 집단이 있었던 것이다. 그 집단, 카프카의 우두머리는 조우현. 아래에는 성한빈과 신지우가 있다. 고작 3명뿐인 그 패거리는 황폐화된 도시를 뒤흔들만한 영향력을 가지고 있진 않는다. 그들의 주거지는 다 낡아빠진 컨테이너. 주로 스프링이 빠진 소파에 앉아서 좀비 소탕 계획을 짠다. 이놈의 좀비들은 죽였다 싶어도 어디선가 스폰 되어 나타나서 시민들을 해친다. 위기에 빠진 시민들을 구하는 건 언제나 그들의 몫이다.

 

그리고 나는 깨어나보니 좀비가 되어 있었다. 말 대신 짐승 소리가 나왔으며, 자꾸 왼 어깨가 뒤로 꺾였고, 오른 다리는 굽혀지지 않았다. 지나가다가 바닥에 깨진 전신 거울을 보니 내 몸과 눈동자는 새하얬다. 하얀 반팔 티 아래로는 핏줄이 적나라하게 드러나 있었다. 누가 봐도 미디어에서 묘사하는 좀비가 아닌가. 무언가 잘못되었음을 깨닫고 주위를 둘러봤더니 온통 좀비밖에 없었다. 허리가 잘린 백화점은 1층만 간신히 유지하고 있고, 조각나버린 건물은 울타리를 벗어나 도로를 완전히 점령했다. 정부에서 좀비와의 전쟁을 선포 후 미사일을 쏴 댔기 때문이다. 나는 내 앞길을 가로막는 간판에 무엇이 쓰여 있는지 알 수는 없지만, 그동안 어떤 상황이었는지 어렴풋이 느낄 수 있었다. 고개를 기울여 불이 꺼진 간판에 글씨를 찬찬히 살폈다. 나는 모르는 언어다. 나는, 타국에서 좀비가 된 것이다.

 

다시 생각을 짚자면 그러하다. 중국인인 나는 대한민국에서 좀비가 되어서 괴상한 소리를 내고, 어깻죽지를 꺾으며 걸어 다니고 있다. 좀비들은 이런 비효율적인 걸음걸이를 고수하지 않으면 안 되는 걸까. 갑자기 인간을 발견한 좀비 하나가 빠르게 뛰어간다. 그때였다. 좀비의 대가리에 사냥꾼의 화살이 꽂혔다. 못 박힌 야구 방망이를 든 한빈이 무표정으로 그 좀비를 흠씬 두들겨 패고 있다. 좀비가 꽥 소리도 없이 축 늘어진다. 한빈은 그를 발로 걷어차며 다른 사냥꾼들과 대화한다. 나는 좀비에게서 눈을 뗄 수 없었다. 곧 닥칠 내 미래 같아서. 한빈이 나를 봤다. 내 시선을 느꼈던 건지 그 행동은 기민하다. 얼른 숨을 곳을 찾았다. 그러고 발걸음을 옮기기 전에 생각해야 했다. 좀비는 걷거나 존나 빠르게 뛰는 것밖에 못 한다는 것을.

 

존나 빠르게 뛰던 나는 바로 브레이크를 밟았다. 내 발 앞에는 유리 파편이 떨어져 있다. 튼튼한 운동화를 신고 있어 밟아도 상관은 없지만, 최대한 저 좀비 사냥꾼들의 눈에 띄고 싶지 않았다. 주변에 죄다 무너진 건물이라 마땅히 들어갈 곳도 없었다. 몸을 숨길 엄폐물은 좀비 사냥꾼들에게 가깝다. 나는 그들과 멀어지려고 발을 틀었다. 질질 끌며 오른 발, 삐걱거리고 왼 발. 나는 평범한 사람처럼 걷기를 원하는데 몸은 좀비처럼 걷지 않으면 안 되는 듯 나에게 불편함을 강요한다. 세상이 망하기 일보직전인데 좀 편하면 안 되나. 치질 걸린 사람인가, 나. 그런 생각이 들자 공포감이 덮쳐왔다. 중국도 한국처럼 좀비 바이러스가 기승을 부리고 있다. 어차피 거기나 여기나 매한가지다.

 

나는 모든 게 허망하게 느껴졌다. 이런 상황에 성한빈이 나에게 가까이 다가오고 있다. 다시 몹쓸 몸을 이끌어 발걸음을 옮겼다. 그러나 몇 걸음 못 가 그에게 붙잡히고 말았다. 그는 나를 빤히 쳐다보더니 내 팔뚝을 잠깐 쥐었다가 놓았다. 다음에는 못 박힌 배트로 내 팔꿈치를 밀었다. 내가 아무런 반응도 보이지 않으니 놀라워한다.

 

이게 얼마만에 0단계 좀비야.”

 

0, zero. 어떠한 공격성도 띄지 않는 좀비를 일컫는다. 내 머릿속에서 무기력해서 아무런 공격성을 띄지 않는 좀비가 지나갔다. 누가 꾸며낸 세상인가, 꿈인가. 꿈이라면 빨리 깨었으면 좋겠다.

 

잠깐. 억제제 맞은 좀빈가?”

 

한빈이 갑자기 내 반팔 티 소매를 어깨까지 우악스럽게 걷어 올렸다. 나는 이번에도 얌전히 기다렸다. 그는 주사 자국을 찾으려는 듯 검지로 나를 꾹꾹 눌러 댔다. 나는 내 앞을 돌아가는 한빈을 쳐다봤다. 여기서 말을 하면 저 사람이 놀랄 것 같았다. 목소리를 내려고 했지만, 목이 끓는 소리만 났다. 그르릉거리는 짐승 소리는 한빈이 야구 방망이를 다시 들게 하는 계기가 되었다. 나는 고개를 살짝 숙여 아무런 공격성이 없음을 어필했다. 시선을 들어 눈 마주치며 입술을 삐죽거리자 방망이가 스르륵 아래로 내려갔다. 한빈은 내 얼굴을 한 번 보더니 다른 팔도 꾹꾹 눌러본다. 그리고선 제 손목에 감긴 시계를 힐끔 본다. 다시 나를 보는 얼굴에는 은은한 미소가 감돈다. 좀비를 죽일 듯이 패던 그 얼굴이 아니다.

 

좀비야, 너 길 잃었어? 백상 병원까지 같이 갈래?”

“……?”

너 같은 제로는 백상 병원에서 관리해. 거기로 가자. 여기 있으면 너도 다른 좀비들한테 당해.”

 

나는 그가 무슨 말을 하는지 도무지 알아들을 수 없었다. 중간에 zero라고 하는 건 들었다. 한빈이 말려 올라간 옷소매를 내려준 다음 내 팔을 붙잡았다. 앞을 가리키며 걸어가는 거로 보아 나를 어디론가 데려갈 모양인가 보다. 나는 무기력하다. 끌려가서 죽임을 당해도 할 말은 없다. 좀비는 죽어야 하니까.

 

한빈은 말이 많았다. 나는 알아들을 수 없는 언어가 계속해서 내 귀에 박히자 금방 피곤해졌다. 집에 가고 싶어. 그 생각만 머릿속에 가득했다. 한빈은 파편이 된 건물을 밟다가 문득 나를 돌아봤다. 나는 이 땡볕에 몸을 꺾어대며 느긋하게 걸어가고 있었다. 이런 내가 안쓰러운지 딱하단 표정을 지으며 내 손을 꽉 쥐었다. 무언가 당부하는 듯한 말을 전한 후 힘껏 나를 끈다. 나는 그에게 거의 뽑혀갔다. 힘이 없는 내 몸은 나풀거렸고, 한빈은 난색을 표하며 파편들이 사라질 때까지 나를 거의 안고서 뛰어갔다. 나는 뛰어가며 그를 봤다. 어쩐지 필사적인 얼굴이다.

 

우리는 병원 같은 건물에 도달했다. 이게 그 백상 병원? 건물 앞 주차장에 앰뷸런스가 한 대 서 있었기 때문이다. 가까이서 보니 피가 잔뜩 묻어 있고, 주변에 잿가루가 날렸다. 한빈은 길을 벗어난 나를 데리고 중앙문으로 들어갔다. 나는 이 병원이 이질적으로 느껴졌다. 다른 건물들은 허리가 부러졌거나 무너졌는데, 이 병원만 멀쩡하다. 병원 근처는 미사일을 살살 쐈나. 실없는 생각만 들었다. 병원 로비에는 우현과 민서가 싸우고 있다. 나는 무슨 소린지 못알아 듣지만, 알아듣는 한빈의 얼굴은 어두워 보였다. 한빈이 내 팔을 거의 부러질 정도로 세게 붙잡으며 엘리베이터 앞까지 갔다. 그러나 작동하지 않는 듯 버튼에 불도 안 들어와 있고, 숫자도 안 나타난다. 한빈은 급히 지나가던 사람들을 붙잡고 무어라 묻는 것 같았다. 나한테 돌아왔을 땐 망설이는 얼굴이었다. 이내 무언가 결심한 얼굴이 되어 다시 내 팔을 붙잡는다.

 

입원 병동이 꼭대기층에 있다는데, 같이 걸어가보자.”

 

한빈이 나를 데려간 곳은 비상용 계단이다. 나는 계단을 오르고, 또 올랐다. 힘들진 않았지만, 왠지 몸이 쇠약해짐을 느껴졌다. 한빈은 웃는 상으로 나를 다독였고, 나는 그 얼굴을 봐서라도 꾸역꾸역 계단을 오를 수밖에 없었다. 이 계단의 끝에 성한빈이 원하는 것이 있겠지.

 

한빈은 계단이 끝나는 지점에 문을 열었다. 지금쯤 나는 내 팔만 움직이는 것 같았다. 한빈이 나를 돌아보고선 뿌듯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유리문에 난 버튼을 누르면 문이 자동으로 열린다. 병동 안에서 데스크가 가장 먼저 눈에 띄었다. 거기에 의사 가운을 입은 사람이 있었기 때문이다. 한빈도 그에게 제일 먼저 다가갔다. 아는 사이인가. 반갑게 인사를 나누고선 이것저것 대화를 한다. 그러는 동안 의사는 힐끔힐끔 나를 봤다. 대화가 끊기자 그가 나에게 이렇게 물었다.

 

왓 츄 어 네임?”

 

나는 내 이름을 중국어로 말하려고 했다. 여전히 목소리는 나오지 않았다. 좀비에게 대사가 없는 건 당연한 일이다. 나는 주변을 둘러봤다. 내 이름의 뜻은 여름 하늘이다. 지금이 찌는 듯한 여름이니까 하늘을 가리키면 그 질문에 대답할 수 있다. 나는 한 병실로 뛰어갔다. 이렇게까지 열심인 건, 여기 오고 나서 드디어 사람이 하는 말을 알아들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혹시 알아. 이런 적극적인 모습을 보이면 또 내가 알아들을 수 있는 말을 해줄지. 사실 아직 죽고 싶진 않다. 나는 하얀 커튼을 왼쪽으로 젖힌 다음 꽉 닫힌 창문을 오른쪽으로 밀었다. 어느새 한빈이 안으로 들어와서 나를 지켜보고 있다. 나는 그런 그를 향해 하늘을 가리켜 보였다. 그는 영문을 모르겠단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하늘…? 네 이름이 하늘이야?”

 

나는 한빈의 행동을 통해 그가 내 이름을 부르고 있다고 짐작했다. 혹시나 해서 다시 창밖을 가리켰다. 한빈이 고개를 끄덕인다. 정말 알아들은 것인가? 나는 왼쪽 어깨를 꺾고, 오른쪽 다리는 절대 굽히지 않는 괴상한 걸음걸이로 그에게 다가갔다. 몸이 무게를 재는 저울의 바늘처럼 움직였다. 내가 그 옆에 멈추자 한빈은 왜인지 감격한 얼굴이 되었다.

 

좀비가 사람 말을 알아들을 수가 있어. 너 대단한 좀비구나?”

 

그는 곧 나를 껴안았다. 아주 잠깐이었다. 의식 없이 한 행동인 것 같았다. 그도 그럴 게, 금방 떨어져서 지레 겁먹은 얼굴로 나를 본다. 나는 일부러 꼿꼿이 서 있었다. 그는 뻣뻣해진 내 팔을 조심스레 건드린다.

 

말 알아들은 거 맞지? 너를 하늘이라고 불러도 될까?”

 

다정해 보이는 그의 뒤로 아까 봤던 그 의사가 눈에 띄었다. 그는 불쾌한 얼굴로 나를 보며 웃고 있다. 모든 것에 초월한 관조자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한빈은 의사와 대화를 하다가 나를 병원 침대에 데려갔다.

 

여기서 지내. 너처럼 순한, 다른 좀비들도 있을 거니까.”

 

베드에 앉혀진 나는 한빈을 올려다봤다. 그는 나에게 작별 인사를 하듯 손을 흔들었다. 그리고 나를 등진다. 아마 나를 여기에 데려다 주고 본인은 떠날 모양인 것 같다. 왜지. 날 죽이려던 게 아닌가. 그 좀비는 죽일 듯이 패고, 왜 나는 예외인 거지. 자리에서 일어난 나는 발소리를 죽여 그 뒤를 밟았다. 동그란 뒤통수로 걸어가던 한빈은 병동을 나서기 전에 돌아보더니 나를 발견하자 팔짝 뛰었다. 나는 그렇게 그에게 붙잡혀 병실로 끌려 갔다.

 

나오면 안 돼. 여기가 안전하다니까.”

 

나는 그의 반대편 손에 있는 험상궂은 야구 방망이와 하는 행동이 영 딴판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한빈은 나를 베드에 앉힌 다음 손바닥을 보였다. 애완동물을 훈련시키듯 그것을 내 앞으로 몇 번 들이밀다가 천천히 뒷걸음질이다. 스탑. 스탑 잇. 나는 그 뜻을 알아들었지만, 못 알아들은 척 맹한 얼굴로 그의 얼굴이 돌아갈 때까지 기다렸다. 이윽고 한빈이 내 시야에서 사라지자마자 나는 발에 모터가 달린 것처럼 빠르게 달려 그의 등에 부딪쳤다. 다시 나를 발견한 한빈의 어깨가 축 내려간다.

 

너 도대체 왜 그래. 여기서 친구들이랑 놀아.”

 

한빈은 이번엔 다른 병실로 갔다. 텅 빈 병실은 그대로 지나쳐가는 걸로 보아 나를 감시할 사람을 찾는 것 같았다. 마지막으로 구석진 병실을 열어보더니 나를 안으로 데려갔다. 거기에는 나 같은 좀비가 한 명 베드에 누워 있다. 그는 생각이란 걸 할 수 있는 나와 달리 그저 천장을 보며 아, 아 거리기만 했다. 겉보기에만 그런가 했는데 한빈이 불러도 공허한 눈으로 간헐적으로 발작했다. 그야말로 좀비 그 자체다. 다만 공격은 하지 않는. 나는 그를 오랫동안 쳐다볼 수 없었다.

 

나를 그 좀비 곁에 놔둔 한빈은 다시 발을 돌렸다. 이번에는 찜찜한 얼굴이다. 이대로 나를, 아무것도 하지 않는 좀비 곁에 두어도 정말 괜찮겠냐고. 그렇게 생각하는 것 같았다. 나는 얌전히 그가 어떠한 선택이라도 해주기를 기다렸다. 나를 보며 흠칫하던 한빈은 발을 완전히 문 쪽으로 돌렸다. 또다시 떠난다. 나는 또다시 그 뒤를 밟았다. 이번엔 오기 같은 거다. 한빈이 내 발소리에 체념한 얼굴로 뒤돌아본다.

 

그래…. 나도 데려가 줘. 이거지?”

 

그러고 내 뒤를 봤다. 그 의사를 부르려는 것 같았다. 기웃거리던 그는 포기하고 내 손을 잡았다.

 

네가 마음에 드는 곳이 있겠지.”

 

한빈은 나를 데리고 병원 안을 탐방했다. 가다가 문득 멈춰서 내 안색을 확인한 다음 나를 남겨두고 떠나려는 시늉을 했다. 나는 그때마다 한빈의 곁으로 갔다. 두어 번 내 마음을 확인한 한빈은 죄책감을 느끼며 병원에서 빠져나왔다. 이젠 목적지를 정한 듯 발걸음에 망설임이 없었다. 다시 나와 한빈이 처음 만난 장소로 돌아왔다. 낮에 죽인 좀비는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이런 상황에도 환경 미화원이 일하는 건가 싶었다.

 

우리는 걷고, 또 걸었다. 주변이 온통 허허벌판인데 컨테이너 하나가 덩그러니 놓여 있었다. 한빈은 거기에서 생활하는 것 같았다. 헐거워서 덜그럭거리는 문고리를 끼워 맞춘 한빈이 문을 열었다. 그가 먼저 들어가고, 나는 뒤늦게 그 안에 발을 들였다. 안에선 지우가 지폐를 둘둘 말아 코로 마약을 흡입하고 있었다. 가루 두 줄을 단숨에 들이켠 그녀는 검지로 코를 막으며 다시금 숨을 들이켰다. 이런 암울한 환경에서 살아남은 사람들에겐 의존할 것이 필요했다. 마약이라든지, 마약이라든지, 마약이라든지. 좀비 바이러스가 터지기 전부터 대한민국엔 마약이 대량 유입되고 있었다. 과장 좀 보태서 지금 살아남은 사람들이 모두 매일 10g씩 흡입해도 100년은 거뜬할 정도인 것 같던데.

 

약에 꼴은 지우는 소파에 기대어서 몸을 축 늘어뜨리고 있다. 한빈은 익숙한 일인 듯 약이 담긴 지퍼백을 잠그고, 둘둘 만 지폐를 폈다. 나는 지우와 눈이 마주쳐도 시선을 피하지 않고 지켜봤다. 나를 가리키는 손길에 한빈이 설명하는 것 같았다. 제 머리카락을 꼬던 지우는 대충 수긍하며 옆으로 쓰러졌다. 한빈은 컨테이너 내에 마련된 간이 주방으로 향했다. 나는 그녀의 얼굴을 계속 보고 있으니 정신이 이상해질 것 같아 한빈의 곁에 붙었다. 그는 참치 통조림을 따고 있다. 젓가락으로 조금 집더니 나를 본다.

 

좀비도, 이거 먹어도 돼?”

 

잠시 고민하더니 나에게 권한다. 나는 아무 생각 없이 젓가락을 물었다. 가공된 참치가 찢어져 내 입 안에 굴러다녔다. 그것을 삼킬 수 없었다. 이 몸이 본능적으로 거부하는 것 같았다. 나는 떫은 표정을 지으며 뱉을 곳을 찾았다. 한빈이 비닐봉지를 건네자 거기에 뱉어냈다. 그는 손으로 내 입가를 한 번 닦아주었다. 온전히 제 몫이 되어버린 참치를 먹으면서 나에게 쉴 새 없이 말을 쏟아냈다.

 

이 참치 통조림, 매일마다 생겨나는 것 같아. 내가 구해오는 것도 아니고, 다른 카프카 친구들이 가져오는 것도 아닌데. 매일매일 참치만 먹다 보니까 다음 생엔 참치가 될 것 같아. 다행인 게, 딱히 질리진 않는다? 참치가 채워지기 전에 감시해야지. 하는데 맨날 까먹어. …근데 난 마약은 안 해. 그러면 나중에 더 공허해지잖아.”

 

한빈이 물끄러미 지우가 있는 소파를 바라봤다. 나도 그를 따라서 고개를 돌렸다. 한빈은 참치를 젓가락으로 조금씩 집어서 천천히 맛을 음미했다. 심심했던 내가 몸을 돌리자 바로 나를 말렸다. 나는 하는 수 없이 그가 참치를 다 먹어 치울 때까지 기다렸다. 한빈의 젓가락에 참치가 뭉텅이로 집혔다. 바로 다 먹어 치우려는 듯 손길이 급하다. 우물거리던 그가 손으로 입가를 가리며 진지한 얼굴로 말했다.

 

나 진짜 너 같은 좀비는 처음 봐. 보통 사람을 죽이려고 하지, 따르진 않거든. 뭐라고 해야 하지. 넌 좀 특별한 것 같아. 근데 지금은 나도 좀 특별하다고 생각하게 되는 것 같아. 왜인지는 모르겠는데, 기분이 그래.”

아, 조용히 좀 해.”

 

소파 헤드를 손으로 누른 지우가 성이 난 얼굴을 내밀었다. 한빈은 미안하단 말을 전하고선 남은 참치를 빠르게 입에 털어 넣었다. 지우는 몸을 제대로 가누지 못 하고 낑낑대며 팔을 움직이다가 아래로 굴러 떨어졌다. 한빈이 달려가 그녀를 일으켰다. 나는 삐걱대며 걸어가 온 몸에 힘이 빠진 지우가 소파에 눕혀지는 과정을 지켜봤다. 인간은 약을 하면 좀비가 되어버린다. 지우의 팔목이 꺾인 채 굳었다. 그녀는 감히 상상도 못할 쾌락에 취해 있겠지만, 나는 얼간이처럼 보이기만 했다. 그녀를 소파 끝까지 밀어 넣는 한빈의 얼굴은 씁쓸하기만 하다. 그는 지우를 뒤로하고, 딱딱한 원목 프레임 위에 매트리스만 덜렁 올라간 침대에 나를 데려갔다. 침대는 총 3개이며, 각각 분리되어 있다. 그는 이번엔 나를 그 침대에 눕혔다. 아마 백상 병원에서 봤던 좀비처럼 나를 관리하려는 것 같았다. 나는 시키는 대로 침대에 누워서 가만히 있으려고 했다. 한빈이 다시 내 곁에서 벗어나려고 하기 전까지는.

 

컨테이너 밖으로 나온 한빈은 뒤돌아서 나를 보더니 이젠 놀랍지도 않다는 얼굴로 내 어깨를 손으로 감쌌다.

 

근처에 폐차를 모아놓은 데가 있거든. 나 거기에 가려고. 너도 같이 갈래?”

 

나는 이제 그가 의문문으로 말하는지, 평서문으로 말하는지 구별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내가 고개를 끄덕이자 놀라워하는 얼굴로 나와 눈을 마주친다.

 

좀비가 이렇게 발전할 수 있었다면 좀비와의 전쟁을 하지 않아도 되었을 텐데.”

 

나는 어쩐지 죄책감이 들었다. 기분이 그랬다. 한빈이 나를 데리고 또 어디론가 향했다. 허허벌판에 폐차들이 가득 쌓인 폐차장이 있다. 거기에서 사람들이 캐치볼을 하고 있다. 한빈은 자연스럽게 그 무리에 합류했다. 나한테는 정보가 없는 사람들이다. 대충 안경과 팔토시라고 생각하기로 했다. 한 명은 안경을 쓰고 있고, 또다른 한 명은 팔토시를 끼고 있었기 때문이다. 한빈은 그들에게 나를 소개해주는 듯했다. 안경은 나한테 다짜고짜 야구공을 던졌고, 팔토시는 탐탁지 않은 얼굴로 나를 위아래로 훑었다. 한빈은 공에 맞은 내 안색을 살피고선 안경을 말렸다. 나는 내 발 앞에 놓인 야구공을 주웠다.

 

한빈은 그들과 합류해 캐치볼을 했다. 나는 몸이 둔해 관람객 신세다. 폐차 더미에 기댄 나는 아무런 재미도 없어 보이는 캐치볼을 구경했다. 그들 역시 그 행위만 하기엔 지루한 듯 캐치볼을 하며 입을 쉴 새 없이 움직였다. 지켜보고 있는데 기분이 좀 이상했다. 안경과 팔토시의 억양이 비꼬는 듯한데 한빈은 계속 웃고만 있다. 말은 안 통해도 느껴졌다. 나는 참견하고 싶지 않아 주변을 살피기로 했다. 흙이 깔린 공터에는 모래바람이 일었다. 해가 지고, 달이 떴는데도 가만히 있어도 덥다. 이 열대야에 뜨거운 바람만 훅 내 몸을 훑고 지나갔다. 나는 반대편으로 걸어가서 납작하게 압축된 차들의 연식을 헤아렸다. 게처럼 옆으로 걷다가 무언가 발에 채이자 아래를 내려다봤다. 들꽃이다.

 

나는 바닥에 완전히 앉아서 들꽃을 보살폈다. 잎사귀도, 꽃잎도 막 물을 머금은 듯 생기가 넘친다. 그것을 돌보는 게 질리자 모래 바닥에 글을 썼다. 잘 써지지도 않았다. 자꾸 바람이 불어서 알갱이들이 파인 곳으로 이사했기 때문이다. 나는 그것을 관두고 멍하니 시간을 죽였다. 뒤에서 다급한 외침이 가까워졌다. 성한빈의 목소리다. 캐치볼 하다가 공이 엉뚱한 데 날아갔나. 나는 문득 죽죽 한자 획을 그었다. 다시 모래 알갱이가 글씨를 덮는다. 한빈이 내 등 위에 덮였다.

 

어디 갔었어…. 한참 찾았네.”

 

내 심장은 죽어버려 뛰지 않는다. 그러니까 지금 뛰고 있는 심장은 성한빈의 것이다. 나는 시선을 내려 내 앞에 겹친 양팔을 봤다. 이내 문이 열리듯 팔이 스르륵 옆으로 빠졌다. 내가 돌아봤을 때 한빈은 땀범벅이었다. 나를 오랫동안 찾았는지 아직도 쌕쌕거리고 있다. 나는 그의 손을 잡아 일어났다. 한빈은 모래 묻은 내 바지를 털어주며 들꽃을 내려다봤다.

 

이런 곳에도 꽃이 피는구나. 지키고 있었어? 대단하네.”

 

쪼그려 앉아 내 바지 밑단을 털던 한빈이 고개 들어 다정한 얼굴로 나를 올려다본다. 나는 이런 사람이 아무렇지 않게 좀비를 패고 다니는 것에 잠깐 의문이 솟았다. 한빈은 이번엔 내 손에 깍지를 꼈다. 귀와 턱을 잇는 부분이 가려웠다. 이제 좀 알 것 같다. 성한빈은 나를 죽이려는 게 아니라 돌봐 주려는 것이다. 그는 아무래도 나한테 첫눈에 반한 것 같다. 그러지 않고서야 나에게 호의를 베풀 리가 없으니까. 나는 시니컬한 미소를 감추고선 한빈을 따라 안경과 팔토시가 있는 곳으로 돌아갔다.

 

한빈아, 다음부턴 혼자 와. 괜히 좀비 같은 거 데려오지 말고.”

근데 하늘이가 자꾸 나를 쫓아다녀서.”

네가 자꾸 데리고 다니려고 하니까 그런 거야.”

하늘이는 다른 좀비랑 다른 것 같은데.”

그래 봤자 좀비는 좀비야. 이름까지 붙여 주고 난리야. 인형 놀이 해?”

 

나는 그들이 나를 탐탁지 않게 여기는 걸 말하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당분간 한빈이가 여기에 오려고 할 때 끼어들지 말아야겠다. 어차피 끼어들지도 못 하는 거. 캐치볼을 끝낸 한빈은 그들에게 인사를 마치고, 나를 데려갔다. 어쩐지 손아귀에 힘이 더 강렬해졌다. 그 컨테이너로 돌아가는 길. 날이 많이 선선해졌다. 이젠 좀 시원한 바람이 분다.

 

내가 좀비를 사냥하고 심심할 때마다 폐차장에 가서 저 사람들이랑 놀거든. 외로워서. 앞으론 너랑 놀까 봐. 너랑 노는 게 더 재미있어.”

 

나는 문장이 다 끝난 듯하자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한빈이 웃었다.

 

뭐야. 너 그냥 고개 끄덕이는 거였어?”

 

내가 다시 고개를 끄덕이자 한빈은 뭐가 우스운지 배를 잡고 깔깔 웃었다. 나도 웃고 싶었다. 그런데 감정 표현을 까먹은 것처럼 어색하고, 엄두가 나지 않았다. 한빈은 다시 내 손을 잡고 걸었다.

 

내일 낮 되면 어떻게 될지 모르겠네. …일 끝나면 너 데리러 올게. 어디 안 갈 거지? 나만 따라왔으니까.”

 

나는 고개를 끄덕이는 것밖에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한빈은 그것으로도 마음이 편안해 보였다. 컨테이너에는 아까 못 봤던 우현이 와서 침대에 누워 자고 있었다. 지우 역시 소파에서 곯아떨어진 것 같았다. 한빈은 다시 나를 침대에 눕히고, 스위치로 불을 껐다. 걸어가던 발소리는 내 옆에서 멈췄다. 나는 사람들의 잠자는 숨소리를 들으며 멍하니 천장만 올려다봤다. 잠이 오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 병원의 좀비처럼 아무것도 하지 않고 시간만 죽였다. 맴밤에도 매미가 울었다. 찌르르 풀벌레 소리. 나는 내 영혼과 육체가 분리된 듯한 느낌을 즐기며 새벽을 보냈다.

 

아침에 일어난 한빈은 또 그 참치 통조림을 먹었다. 그러고 밖에 나가나 했더니 카프카 멤버들과 소파에 앉아서 심각하게 이야기를 나누었다. 나는 우현에 의해 추방당할 뻔했으나 한빈이 말려서 상황은 잘 마무리되었다. 물론 나도 무해하다는 걸 알리려고 가만히 있었고. 내 머리에 총구를 들이밀던 우현은 수긍하고 물러났다. 저 안에 진짜 총알이 들긴 했을까? 지우는 아직도 약에서 덜 깬 듯 입을 우악스럽게 벌렸다가 앙 다무는 행동을 반복했다. 나는 침대에 앉아서 그들의 대화가 끝날 때까지 기다렸다. 대화가 길어지자 한빈이 손목시계를 한 번 내려다 보고선 자리에서 일어났다.

 

일하러 갈 시간이야. 다들 움직이자.”

 

한빈이 나에게 다가왔다. 여기 있으라고 당부하는 것 같았다. 나는 고개를 주억거렸다. 순식간에 그 3명이 나가고, 컨테이너에는 나만 남았다. 나는 얌전히 기다리려고 했다. 얼마 있지 않아 바깥에 나가도 그다지 위험하진 않은 것 같은데, 하는 생각에 자꾸만 하지 말란 짓이 하고 싶어졌다. 나는 간밤에 줄을 타고 내 얼굴 앞까지 내려오던 거미의 얼굴을 떠올렸다. 그것은 요요를 하듯 실에 매달려 나한테 가까이 다가왔다가 멀어지기를 반복했다. 나는 그럴 때마다 입을 벌렸다가 닫았다. 어느새 나는 오금이 저릿했다. 거미는 끝내 천장으로 돌아갔다. 사각사각 모서리에 숨어들었다.

 

모서리를 보던 나는 고개 돌려 쿵 소리가 난 곳을 쳐다봤다. 다시 무언가 부딪쳤다. 좀비인가. 침대에서 내려와서 컨테이너 문고리를 잡았다. 한 번에 열리지 않아 한빈이 그랬던 것처럼 문고리를 문에 끼워서 돌렸다. 문이 열리자마자 내 몸이 앞으로 튀어나갔다. 나는 컨테이너에 몸을 부딪치던 좀비를 보았다. 순간 나에게 죽일 듯 달려들던 좀비는 저와 같은 냄새가 나는 것을 확인하고선 고개를 갸웃거렸다. 나는 같은 좀비로서, 좀비와 소통을 하려고 입을 벌렸다. 나오는 말이 없고, 목만 끓었다. 그 좀비는 킁킁거리다가 회까닥 넘어갈 것 같은 짐승 소리를 내었다. 젠장, 알아들을 수가 없다. 내가 여기에서 알아들을 수 있는 언어가 영어 외엔 없는 걸까.

 

나는 예전에 좀비가 되길 원한 적이 있었다. 사실 통제할 수 없는 상황에 놓여서 돌파하는 것을 즐기는 편이다. 막상 좀비가 되었는데 성한빈이라는 귀인을 만나서 좀 안일하게 생활했다. 정신 바짝 차려야겠다. 그 좀비가 내 주위를 배회하며 나를 간 보고 있다. 나는 나에게 한빈이 그랬던 것처럼 그의 팔을 붙잡았다. 컨테이너에서 멀어지게 하려고 반대편으로 무작정 걸었다. 그는 의외로 얌전히 내 뒤를 따랐다. 나는 가끔씩 뒤를 돌아봐 그가 잘 따라오는지 확인했다. 첫 번째에는 잘 따라왔다. 두 번째에는 혼자서 막 어디로 뛰어갔다. 나는 이쯤 되면 컨테이너에서 멀어졌으리라 생각하고 왔던 길을 돌아갔다.

 

돌아왔을 땐 열어 놓았던 컨테이너 문이 닫혀 있었다. 그 카프카 3인방이 돌아왔겠거니 대수롭지 않게 여기고 문을 열었다. 다급히 내 눈앞에 화살이 지나간다. 나는 나를 잘못 보고 쏜 건 줄 알았다. 오른편에 있던 지우가 다시 나를 바라보며 활시위를 당긴다. 분명 아침까지만 해도 나를 0단계 좀비로 취급하던 사람들이다. 혼란스러운 상황에 나는 한빈을 찾았다. 한빈은 안광이 꺼진 눈으로 못 박힌 야구 방망이를 높이 쳐들고 있다. 다시금 지우를 봤다.

 

여긴 왜 왔냐, 좀비야. 하필 들어와도 이런 곳에 들어와.”

운이 나쁘네.”

 

그들이 하는 말은 공허했고, 지우가 행동하는 모든 게 슬로우 모션으로 보였다. 나는 일단은 다시 밖으로 나갔다. 뒤에서 뛰어오는 소리가 들린다. 하는 수 없이 달렸다.

 

등에 못이 박히고, 목덜미에 화살이 꽂힌 채 거리 한복판에 놓인 나는 생각을 했다. 몸이 아픈 것보다 성한빈이 갑자기 돌변해 나를 공격했다는 사실이 더 아팠다. 그럼 그렇지. 나를 언제 죽일지 간이나 보고 있었던 거야. 등에 팔을 걸어 척추 바로 옆에 꽂힌 못을 빼내려고 힘을 주었다. 도무지 빠질 생각이 없어 보여 점프를 뛸 때였다. 뒤에서 누가 울면서 달려오는 소리가 들렸다.

 

하늘아!! 하늘아!! 나 진짜 그럴 의도가 아니었어. 믿어줘!!”

 

나는 익숙한 목소리에 반사적으로 돌아봤다. 성한빈이 아무런 무기 없이 눈물, 콧물 흘리며 나에게 뛰어오고 있다. 보통 사람이면 추한 몰골일 텐데 성한빈은 가엾기만 하다. 도대체 뭘까, 저 사람은. 내 앞에 멈춘 그는 코를 훌쩍이며 눈물을 닦았다. 화살에 걸렸던 내 손이 힘없이 떨어지자 그의 눈에서 나오는 물줄기가 하나 더 생겨났다.

 

미안해.”

 

한빈이 불어터진 얼굴로 내 몸에 박힌 못과 화살을 빼낸다. 나는 그것들이 빠질 때마다 윽, 소리를 내며 고개를 뒤로, 앞으로 꺾었다. 피는 나지 않았다. 내 심장 멈춰 있으니까. 아득했던 앞에 초점이 잡히자 울망울망한 한빈의 얼굴이 다시 보였다. 그는 미안하단 얼굴로 나를 끌어안았다.

 

하늘아……. 내가 왜 갑자기 너를 죽이려고 하겠어. 내 진심이 아니야.”

 

내 양 볼이 한빈의 손에 의해 짓눌렸다. 한빈은 괜찮은지 내 얼굴을 휙휙 돌려본다.

 

그래도 좀비라 괜찮아 보이네. 헤….”

 

그는 코를 훌쩍이며 활짝 웃다가 다시 눈썹을 내린다. 뭐 저런 사람이 다 있지. 언제는 내가 다가가니까 방망이로 마구 때리질 않나. 언제는 끌어안질 않나. 한빈이 다시 나를 안았다. 나는 그가 좀 버거웠다. 눈깔이 돌아서 좀비를 패던 때부터 도망쳤어야 했다.

 

미안해. 진짜진짜 미안해. 내가 원래 그런 사람이지만, 아까는 내 의지가 아니었어.”

 

이번엔 내가 먼저 그를 밀어냈다. 하는 수 없이 떨어진 한빈이 안절부절못해 나를 봤다. 나는 성한빈을 못 믿으면 어디로 갈까 생각했다. 그 병원에 있던 좀비만 떠올랐다. 음흉하게 웃던 그 의사도. 차라리 병원에 가서 재활을 받아서 평범한 사람처럼 되기를 바라야겠다. 한빈이 그랬던 것처럼 발을 돌려 이 불편한 자리에서 벗어났다. 한빈이 펄쩍 뛰더니 내 뒤를 졸졸 따라온다. 나는 그가 데려다 줬던 길을 기억하며 열심히 뛰었다.

 

뛰다 보니 백상 병원까지 금방이었다. 한빈은 악착같이 내 뒤를 쫓아와서 기진맥진한 상태다. 나는 한 번 슥 돌아본 다음 안에 발을 들였다. 오늘은 엘리베이터에 불이 들어와 있다. 나는 위로 버튼을 두 개 눌러 뒀다. 기다리고 있으니 한빈이 김빠지는 소리를 내며 내 옆에 다가왔다. 나는 그를 매몰차게 외면하고 도착한 엘리베이터에 탑승했다. 닫힘 버튼을 연타하자 한빈이 얼른 닫히려는 문 사이에 제 몸을 구겨 넣는다. 잠깐 아파하던 그는 언제 그랬냐는 듯 헤헤 웃으며 다시 내 옆에 섰다. 나는 속으로 깊은 한숨을 내쉬며 닫힘 버튼을 꾹 눌렀다.

 

꼭대기층에는 여전히 그 의사가 자리를 지키고 있다. 나와 한빈을 발견하자 기쁜지 이목구비가 확장되었다. 그전엔 따분한 얼굴이었기에.

 

이렇게 빨리 다시 만나게 될 줄은 몰랐는데.”

 

한빈은 헉헉거리느라고 제대로 말하지 못했다. 나는 그 좀비가 있던 병실로 향했다. 병실에 문은 열려 있다. 안에 있던 좀비는 여전히 침대에 누워 있기만 했다. 내가 팔을 건드리자 그 부분에 살이 쪼그라든 게 육안으로 보였다. 피부는 원래대로 돌아오지 않고 여전히 주름 진 모습 그대로다. 나는 그의 얼굴을 가까이서 봤다. 달리지 못하는 말은 죽어야 한다. 공격하지 못하는 좀비는 아무런 쓸모가 없다. 내 눈엔 그렇게 보였다.

 

거친 숨소리가 점점 가까워졌다. 그 의사의 목소리도 들렸다. 그들은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며 걸어오고 있다. 잠시 멈춘 듯 발소리가 멎었다. 꿀꺽꿀꺽 물이 목 뒤로 넘어가는 소리도 들렸다. 다시 발소리. 한빈과 그 의사가 안으로 들어온다.

 

저 좀비도 좀비 곁을 그리워하는 것 같은데 이만 놓아주시죠.”

저 때문이에요. 왜 이러는지는 모르겠는데, 제가 갑자기 공격하다가 잘해주다가 하니까 헷갈릴 거예요.”

“…언제부터 그랬는데요?”

글쎄요. 그건 잘…….”

진실이 알고 싶어요?”

 

의사와 한빈이 다시 병실에서 나갔다. 나는 누워 있는 좀비 옆의 베드를 끌었다. 아래에 바퀴가 달려 있어 끌렸다. 그의 베드 옆에 내 베드를 완전히 딱 붙이고 나서야 거기에 누울 수 있었다. 그는 시끄러운 소음에도 정말 옴짝달싹 하지 않았다. 나는 베드와 베드 사이에 누워 있다가 아래로 떨어졌다. 그 소리에 한빈이 달려와서 나를 본다. 전의 그 다정한 얼굴로 나를 일으켰다. 그는 영어로 이렇게 말했다. 이게 진짜 나라고. 믿어달라고.

 

나는 내 생각을 전달하고 싶었다. 간단한 캐치볼도 못 하는 바보 같은 몸을 가지고 어떤 소통 방식을 사용해야 할지 막막했다. 다시 내 시야 안에 의사가 들어왔다. 그는 처음부터 나에게 영어로 이름이 뭐냐고 물었었지. 한빈과 무슨 대화를 나눴을까. 무슨 대화를 나누었기에 한빈이 나에게 영어를 사용했을까. 나는 다시금 이 세상이라는 것에 대해 의문을 가졌다. 좀비가 되어버린 나. 이중인격 성한빈. 의뭉스러운 의사.

 

한빈을 따라가기로 했다. 내가 멀어져도 한빈이 다시 다가왔기 때문이다. 사실 성한빈 외에는 선택지가 없었다. 혼자 떠돌아다니는 것도 재미없을 테고, 맞아 죽을 것 같으면 날렵하게 도망쳐야지. 한빈이 그랬던 것처럼 나도 그의 손을 잡았다. 나는 그가 하는 말들을 무시하고 전에 봐 뒀던 물리치료실에 들어갔다. 여러 가지 휘황찬란한 기구에 한빈이 먼저 앞장섰다.

 

다친 데가 그렇게 아팠어? 내가 마사지해줄까?”

 

베드에 누운 나는 성한빈이 나한테 전전긍긍하는 원인을 짚으려고 했다. 그는 얼굴도 잘 안 비추는 조우현, 마약 하는 신지우가 있는 컨테이너에서 산다. 밤에는 저를 무시하는 사람들과 캐치볼을 한다. 밖에는 좀비가 돌아다니고 있고, 한빈은 이 현실에도 허허실실 웃는다. 생각해보니 제정신이 아닌 게 이상하다. 저렇게 다정하게만 굴다가 어딘가 뒤틀리는 게 정상일지도. 나는 내 팔이 뒤틀린 상황에서도 이런 생각을 했다.

 

“…괜찮아? 다시 조립해줄까?”

 

내 팔이 다시 끼워 맞춰졌다. 나는 이번에도 아프지도 않았다. 한빈은 나를 엎드리게 한 다음 내 등을 마사지했다. 나는 팔을 등에 올려서 왼쪽 날개뼈를 가리켰다. 걸을 때마다 매번 무너지던 곳이었다. 한빈은 한 손으로는 날개뼈를 누르고, 다른 한 손으로는 그 아래를 지압한다. 나는 그 마사지가 끝나자 오른쪽 오금을 손으로 가리켰다.

 

맞아. 너 걷는 거 보니까 여기가 불편해 보이더라.”

 

나는 낫고 있는지 알 길이 없었다. 내 오금 위에 올라간 한빈의 손이 치워지자 베드에서 내려왔다. 확실히 걸음걸이가 달라졌다. 한빈도 나를 보며 뿌듯한 표정을 지어 보인다. 나는 물리치료실 벽까지 찍고 유턴했다. 그러나 다시 절름발이가 된 것처럼 내 몸이 삐그덕거리기 시작하더니 원래대로 돌아왔다. 내 시야가 위아래로 널뛴다. 베드에 앉아서 감탄을 내지르던 한빈이 그런 나를 안아주었다.

 

괜찮아. 이러면서 천천히 바뀔 거야.”

 

나는 자꾸 나를 안는 성한빈에 조금 낯간지러웠다. 아무리 내가 말을 못 하는 좀비라고 하더라도 안에는 멀쩡한 사람의 영혼이 들어 있는데. 한빈의 팔을 떼어낸 나는 그 팔을 붙잡고 펜으로 끼적이는 시늉을 했다. 한빈은 알아듣지 못 한 듯 친절한 얼굴로 나와 그 손을 번갈아 봤다.

 

뭐가 필요해? 글 쓰는 거?”

 

한빈이 내 손등을 검지 손톱으로 간지럽혔다. 나는 그것이 옳다며 고개를 끄덕였다.

 

근처에 문구점은 다 박살 났을 텐데. ……아, 학교에 가면 되겠다.”

 

내 손은 다시 한빈의 손 안에 갇혔다. 한빈은 확신에 찬 얼굴로 나를 데려갔다. 내 생각을 전하기 어려워 보여도 일단 해보고 싶었다. 한빈이 향한 곳은 학교였다. 미사일의 여파 때문인지 운동장은 움푹 파였고, 건물 앞 보도 블록은 질서를 잃고 무너져 있었다. 한빈은 나를 살피며 안전한 길을 걸었다. 나는 가면서 울타리가 뜯겨 뻥 뚫린 풍경을 바라봤다. 저 멀리 부서진 건물과 산들이 보일 뿐이었다. 이윽고 한빈에 의해 몸이 건물 안으로 빨려 들어갔다. 학교 복도에는 잿가루와 유리 파편이 앉아 있었다. 한빈은 나를 1-3 팻말이 달린 교실로 데려갔다. 교실 안도 마찬가지로 복도처럼 지저분했다. 창문은 깨져 있었으며 창가 쪽엔 넘어진 책상도 있었다. 한빈은 잠시 난감한 표정을 짓다가 뒤편의 사물함까지 걸어갔다. 하나씩 열어 보면 내가 바라던 공책과 필기구를 어렵지 않게 구할 수 있다.

 

공책과 펜을 받은 나는 한빈에 의해 학교 밖으로 나왔다. 표정을 보아하니 안에 있는 게 위험하다고 하는 것 같았다. 그렇게 우리는 조금 걸어 무너진 건물의 파편 위에 앉았다. 나는 공책을 펼친 다음 주먹 쥐어 펜을 손 안에 가뒀다. 내가 한자를 생각하고 쓰면 손이 마음대로 움직여 선들로 글자가 뒤덮이게 했다. 대신 영어를 쓰려고 다음 장으로 넘겼다. 한빈은 옆에서 나를 묵묵히 지켜보고 있다. 무슨 말을 전하면 좋을까. 나는 문득 두려워졌다. 언어라는 장벽이 무너지면 알고 싶지 않은 진실을 마주하게 될까 봐.

 

한빈은 내가 그린 그림을 유심히 보더니 하늘을 올려다봤다. 공책에는 어설프게 그린 구름이 있다. 내가 봐도 지렁이 같지만, 한빈은 구름으로 생각한 듯하다. 나는 구름을 정교하게 그리려고 종이를 넘기고, 또 넘겼다. 나중에는 일자만 긋고 펜을 놓쳐버렸다. 한빈이 대신 펜을 주운 다음 내 손아귀에 끼웠다. 그리고 부드럽게 내 손을 잡고선 힘주어 구름을 그렸다.

 

이거 그리려던 거 맞지? 하늘에 구름이 있으니까.”

 

나는 그가 무슨 말을 하려는지 알 것 같아 고개를 끄덕였다.

 

참, 내 이름 모르지? 나 성한빈이야. 따라해볼래?”

 

나는 말을 할 수 없어 고개만 끄덕였다. 한빈은 나에게 말을 시키려다가 이내 체념하고 섰다. 나는 계속해서 고개를 내젓다가 공책을 내려다봤다. 한빈 역시 그림 솜씨가 그렇게 좋지는 않지만, 내가 본 구름 중에 가장 많이 생각날 것 같다. 뒷장을 넘기던 나는 이제 남은 종이가 없어 공책을 덮었다. 잠시 시계를 보던 한빈이 급하게 자리에서 일어났다. 나는 공책만 품에 안은 채 그의 손을 잡았다.

 

한빈은 나를 다시 병원에 데려갔다. 그 컨테이너에는 이제 데려가지 않을 모양이다. 입원 병동까지 데려다 주나 싶었더니 급한 일이 있는지 먼저 가버렸다. 나는 달려가는 한빈의 뒷모습을 지켜보다가 몸이 굳었다. 성한빈이 갑자기 사라졌기 때문이다. 마치 이 자리에 없었던 사람처럼, 순간 이동해 사라졌다.

 

입원 병동까지 어떻게 왔는지 모르겠다. 이 모든 게 허상이라고 생각하면 어떤 표정을 지어야 할지 모르겠다. 좀비가 되기 전 내가 어떤 사람이었는지 떠올리려고 필사적으로 노력할 때마다 머릿속의 글씨가 지워졌다. 이젠 흐릿하게나마 추측할 수도 없다. 나는 좀비에게 내 자아가 잡아 먹히는 끔찍한 일을 당했지만, 그렇게 화가 나진 않았다. 원래 내 몸은 조각나 있었고, 지금이 나은 편이다. 이 몸을 가지고 흐느적대며 걷던 나는 심심했던 의사에게 붙잡혀 빈 병실의 베드에 앉혀졌다.

 

너 같은 케이스는 처음 본단 말이야. 도대체 어디를 통해 어떻게 들어와서 이러고 있는지.”

 

의사는 답지 않게 청진기 귀꽂이를 귀에 걸고 내 몸을 진찰했다. 벨이 내 앞에 잠시 머물렀다가 떨어졌다. 그는 청진기를 귀에서 빼서 제 어깨에 걸친 다음 팔짱을 꼈다. 나에게 영어로 질문들을 했다. 어디서 왔냐. 뭐 하는 사람이냐. 말은 못 하냐. 나는 당연히 아무런 대답도 할 수 없었다. 그는 내 품에 있던 공책을 보더니 그것을 빼앗아갔다. 낙서만 가득한 공책을 넘기던 그는 곧 싱거운 얼굴로 덮는다. 나에게 공책을 돌려준 그는 의사가운 주머니를 뒤적거리다가 하얀 가루가 담긴 작은 지퍼백을 내밀었다. 나는 그것이 마치 처방전처럼 느껴졌다. 건네는 걸 받긴 했지만, 마약 하던 지우가 생각나 내 허벅지 위에 올려 두기만 했다. 그는 사는 게 힘들면 마시라고 했다. 나는 굴곡진 허벅지 위에서 가루가 알알이 흩어지는 것을 관찰했다. 좀비의 몸으로 마약 하면 어떻게 될까. 잠깐 호기심이 일었지만, 잠깐의 호기심으로 놔뒀다.

 

한빈은 해가 졌다가 뜰 때까지도 얼굴 한 번 비추지 않았다. 나는 그동안 재활 운동 겸 병원을 돌아다니며 걸음걸이를 교정했다. 그러다 민서의 눈에 띄어 지금은 그녀에게 붙잡힌 상태다. 민서는 나를 데리고 병원에서 나가서 작은 산책로를 함께 걸었다. 나는 그녀를 보며 잊고 있던 정보를 떠올렸다. 백상 병원의 자원봉사자. 좀비들에게 억제제를 놓아 0단계 좀비로 만들고 다니는.

 

신기하네. 다들 억제제 맞으면 무기력하게 누워만 있거나 아예 죽어버리던데. 너, 입원실에 있던 거 맞아? 못 봤던 것 같은데. 하긴. 내가 요즘 입원실에 잘 안 가.”

 

그녀는 똑같은 얘기를 하고, 또 하는 것 같았다. 들리는 말이 비슷했기 때문이다. 나는 산책로 두 바퀴를 돌고 나서야 풀려날 수 있었다. 병원 앞에 조우현이 왔다. 민서는 우현을 적대시해서 밀어내는데, 우현은 그런 민서를 따라간다. 나는 이야깃거리를 놓칠 수 없어 그들을 뒤쫓았다. 우현이 먼저 민서를 붙잡았다. 민서는 신경질적으로 돌아보았고, 싸움을 이어 나갔다.

 

무의미한 짓 좀 그만해! 네가 좀비들한테 억제제 맞혀서 죽이는 거랑, 내가 좀비들 죽이는 거랑 도대체 뭐가 다른데?”

난 좀비들한테 기회를 주는 거야. 살 수 있는 기회.”

그래서 걔네들이 뭘 하는데? 그냥 누워 있기만 하잖아. 걔네들은 사람도, 좀비도 아니야.”

상황이 암울하다고 해서 희망을 놓으면 안 돼.”

당장 이번에 억제제 맞은 좀비도 시체가 되었어. 이게 네가 바라던 거야?”

 

나는 계단을 올랐다. 자막 없이 드라마를 보는 것 같아서 여기 있어야 할 의미를 찾지 못 했다. 입원 병동에 도착했을 땐 한빈의 뒤통수가 가장 먼저 보였다. 한빈은 나를 발견해도 이젠 환히 웃어주지 않는다. 오히려 피곤한 몰골이다. 그는 내 손을 잡고 계단을 내려갔다. 로비에는 아직도 우현과 민서가 싸우고 있다. 이제 막 끝났는지 서로 얼굴 붉히며 등진다. 우현은 민서를 남겨두고 성난 발걸음으로 출입문 쪽으로 걸어갔다. 그때, 좀비떼들이 문을 들이밀며 들어왔다. 한빈은 어느새 내 손을 놓고 좀비들에게 방망이를 휘두르고 있었다. 우현은 그렇게 모질게 굴 땐 언제고 민서를 보호하고 있다. 그녀는 혼자서도 살아남을 수 있다며 아등바등대다가 우현이 저를 공격하려는 좀비를 총으로 쏴 죽이자 표정이 변한다. 영화 속 한 장면이었다.

 

한빈과 우현 덕분에 이곳에 쳐들어온 좀비들이 모두 소탕되었다. 나는 또 오해를 살 것 같아서 비상용 계단 문 뒤에 서서 상황이 종료될 때까지 기다렸다. 어디에 있었는지 모를 자원봉사자들이 튀어나와서 한빈과 우현을 혼낸다. 한빈은 거만한 태도로 일관했다가 끝내 얼굴에 침을 맞고 만다. 그들의 잔소리를 듣던 한빈은 우현과 함께 등을 보이며 출입문 쪽으로 걸어간다. 나는 두 사람이 완전히 사라지자 로비로 나왔다.

 

한빈은 시간이 조금 지난 뒤에 병원으로 돌아왔다. 나는 민서에게 또다시 붙잡히기 싫어 전력질주 하던 참이었다. 한빈이 벽에 이마를 박은 나를 잡아 옆으로 돌렸다. 그는 또 울적한 표정이다. 얼굴에 흐르던 침이 말랐는지 흔적은 어디에도 보이지 않는다. 무심한 얼굴에 입술만 들썩였다.

 

아까 그 모습은 진짜 내가 아니야.”

 

깨달음을 얻은 얼굴이 된 한빈의 눈이 커졌다.

 

아, 그런 것 같아. 그런 나도 이해해줄 수 있어?”

 

나는 나에게 다가오는 민서 때문에 한빈을 데리고 병원에서 나갈 수밖에 없었다. 내 빠른 뜀박질에 한빈의 심장도 빠르게 뜀박질을 했다. 문득 멈춰서 봤을 때 한빈은 거의 쓰러질 듯 온 몸으로 호흡하고 있었다. 나는 그런 그를 내 몸으로 받아냈다. 한빈이 뒤늦게 정신 차리고 내 양어깨를 붙잡으며 상체를 일으켰다. 좀비가 아닌 인간이 이 정도 속도로 달려본 적은 없겠지. 미안했는데 딱히 할 수 있는 행동도 없었다.

 

한빈은 목이 마른 듯 자꾸 기침을 했다. 그러다가 공원의 식수대로 나를 데려갔다. 어디서 끌어온 물인지 모르겠는데 그는 잘도 마셨다. 입에 닿던 물줄기가 내려갔다. 한빈이 시선 돌려 나를 본다. 이제 기분이 좀 나아졌을까. 웃고 있다.

 

다행이다. 이제 내가 무섭지 않나 봐.”

 

나는 한빈이 이끄는 대로 움직였다. 당분간은 여유로운지 발걸음이 느긋하다. 공원의 풍경은 그저 그랬다. 가는 길목마다 나무가 다 쓰러져 있었고, 구조물엔 굳은 피가 엉겨 붙어 있고, 이름 모를 시체가 곳곳에 널려 있어 기이한 풍경을 자아냈다. 나는 가다가 시체에 발이 채일 뻔했다. 한빈이 그런 내 손을 잡아주었다. 그러자 내가 손에 쥐고 있던 지퍼백이 떨어졌다. 한빈은 반사적으로 아래로 툭 떨어진 마약을 낚아챘다.

 

이게 왜 너한테 있어?”

 

나는 그 뜻을 알 것 같아서 그에게 청진기 대는 시늉을 했다. 몇 번 반복하자 한빈이 알아들은 듯 주먹 쥐어 내 앞에 갖다 대었다.

 

의사 선생님께서 너한테 드렸다고? 왜?”

 

나는 이번에는 고개를 내저었다. 한빈은 시무룩한 얼굴로 손을 내린다.

 

“……나중에 그분한테 물어보면 알겠지.”

 

한빈은 그것을 제 바지 뒷주머니에 찔러 넣었다. 우리는 풀밭에 앉아서 시체 더미를 풍경 삼아 부는 바람을 맞았다. 한빈이 기분이 좋은지 계속 나에게 재잘거렸다. 나는 적당한 때에 고개를 끄덕이기도 하고, 으르렁거리기도 했다. 어쩐지 으르렁거릴 때마다 한빈이 웃음이 터져 나와 몸을 못 가누다가 나에게 안겨 왔다.

 

햇빛이 더 따가워지기 전에 다른 데로 이동했다. 나는 괜찮았는데, 한빈이 온 몸에 홍수가 난 듯 땀을 뻘뻘 흘려 댔다. 막상 만지면 땀이 묻어나오진 않았다. 우리는 1층만 남은 백화점 안에 들어가서 쉬었다. 그 안에서 싸움이 있었는지 매장에 유리창이 깨지고, 마네킹이 뒹굴었으며 척 봐도 비싸 보이는 옷들이 밟혀 있었다. 한빈은 지치지도 않는지 나를 데리고 걷다가 상대적으로 멀쩡해 보이는 옷 가게에 들어갔다. 나는 그 안에 들어가고 나서도 뻥 뚫린 천장만 올려다봤다. 이상하게 절반은 뚫려 있고, 절반은 온전하다. 내가 기이한 광경에 올려다보는 동안 한빈이 행거에 걸린 옷들을 뒤적거렸다.

 

다행이다. 좀비 바이러스 터졌을 때도 여름이라 여름 옷들이 많아서.”

 

그는 검정색 티를 꺼냈다. 팔이 짧아 거의 민소매처럼 보인다. 나에게 주려는 듯 그것을 내 몸 위에 대어본다. 나는 고개를 내저었다. 한빈은 잠시 당황한 듯 나를 봤다가 거두었다.

 

왜. 잘 어울리는데….”

 

한빈이 내 팔목을 잡아 옷걸이 위에 올렸다. 그리고 피아노 건반을 쓸 듯 내 손을 움직였다. 직접 고르라는 것 같아 나는 귀여운 캐릭터가 프린트된 티셔츠를 하나 꺼냈다. 멀리서 볼 땐 귀여웠는데, 가까이서 보니 좀 괴상하다. 한빈이 덥석 그 옷걸이를 잡는다. 놀라서 손을 뗀 그는 다시금 제가 골랐던 옷을 꺼냈다. 나는 그 옷들을 행거에 걸었다. 둘 다 영 아니었다. 한빈은 나를 데리고 매장을 한 바퀴 돌았다. 그러나 어떤 옷도 나를 만족시키지 못 했다. 그는 창고 안으로 들어가서 옷이 쌓인 박스를 뒤적였다. 나는 뒤에서 움직이는 엉덩이만 지켜봤다. 한빈이 꺼낸 건 지금 내가 입고 있는 베이직한 흰 티였다.

 

나는 입고 있던 옷을 벗으려고 허리를 완전히 숙였다. 팔이 위로 들리지 않았기 때문이다. 허리를 숙이면 팔이 자연스럽게 아래로 내려갔다. 한빈이 잔뜩 더러워진 내 옷을 벗기고, 비닐 안에 들어 있던 새 옷으로 갈아 입혔다. 내가 허리를 세우자 그는 흡족한 얼굴이 되었다.

 

할 일 없을 때 여기 와서 새 옷으로 갈아입거든. 그러면 기분이 좀 달라져.”

 

나는 눈을 찌르는 앞머리에 고개를 세차게 흔들었다. 웃으며 내 머리칼을 정리해주던 한빈이 다시 박스를 뒤졌다. 나는 옷더미에 파묻히고 싶은 충동이 들었다. 거기엔 어떠한 저항도 없었다. 바로 내 몸을 던졌다. 한빈은 아래에서 불어오는 바람에 눈을 동그랗게 뜨며 나를 내려다봤다. 왠지 그가 옆으로 미끄러지고 있다. 나는 차가운 바닥이 등에 닿자 그제야 정신이 차려졌다. 한빈이 비닐에 싸인 옷가지들을 끌어다 넓게 옷침대를 만들었다. 그 위에 나를 눕히고, 저도 누웠다.

 

앞으로 여기서 잘까?”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 앞으로 한빈의 팔뚝이 올라왔다. 손목시계를 보던 한빈이 급히 일어났다.

 

벌써 시간이.”

 

기껏 만든 옷침대를 매몰차게 등지는 데에는 이유가 있겠지. 그는 뭐에 쫓기는 사람처럼 빠른 걸음으로 걸어갔다. 나는 또다시 종이 인간처럼 나풀거리며 그가 이끄는 대로 끌려갔다.

 

밖에는 좀비들이 득실거렸다. 도대체 여기까지 오는 동안 보이지 않았던 좀비들이 어디에서 스폰되어서 나타나는지 모르겠다. 한빈은 다시 표정을 바꾸어 어디서 생겨났는지 모를 못 박힌 배트를 휘둘렀다. 나는 이제 좀 답답했다. 좀비들이 나오는 구멍이라도 틀어막아야 할 것 같았다. 그러면 한빈이 돌변해서 좀비들을 때려잡는 일도 없어지겠지. 나는 숨기를 포기하고 멀뚱멀뚱 서서 저 앞을 보며 기웃거렸다. 화살이 날아와서 다른 좀비들에게 박힌다. 뒤이어 우현이 나타나서 칼로 좀비들을 썬다. 여름 날씨 때문인지 저 끝에서 아지랑이가 피어났다. 나는 그것을 자세히 보려고 인상을 찡그리며 다가갔다. 아래에서 좀비가 꿈틀대며 올라왔다. 한빈이 방망이로 그를 후려 갈긴다.

 

나는 좀비가 솟아나는 근원지에 가까이 다가가려고 눈치를 살폈다. 사냥꾼들은 좀비 잡는 데 정신이 팔려 있다. 자세를 낮추어 근처에 널린 시체들에 몸을 숨기며 조금씩 이동했다. 아지랑이가 피어나는 곳이 거의 코앞이다. 내 등 위로 화살이 지나갔다. 무모한 행동이란 건 안다. 다른 좀비들처럼 죽도록 맞겠지. 나는 이런 상황을 이해할 수 없었다. 나한테 새 옷을 입혀주고, 글을 쓰게 해주고, 먹을 것을 챙겨주던 한빈이 돌변해서 나를 죽이려고 달려드는 이 상황이. 나는 다시금 이 모든 게 슬로우모션처럼 보였다. 공허한 눈동자는 초점이 없는데도 나를 담고 있다. 어떡하면 성한빈을 말릴 수 있을지 고민하던 나는 나에게 달려오는 그를 그대로 끌어안았다. 한빈이 나에게 배트를 휘둘렀다. 그 손길에는 망설임이 없었다. 나는 못이 여러 개쯤 박혀도 상관없었다. 그러나 한빈이 방망이로 내 몸에 박힌 못에 망치질을 했을 땐 망했단 생각이 들어 그 손을 잡고 뛰었다. 불결한 거리에서 얼추 멀어지고 나서 돌아보니 한빈이 울고 있다. 눈물이 흐른 건 아닌데, 그냥 그렇게 느껴졌다.

 

나는 또다시 그에게 등을 내어주어 내 몸에서 못이 빠져나가는 걸 느꼈다. 한빈은 못을 다 뺀 다음 내 등에 업혔다. 뒤에서 자꾸 코를 훌쩍이는 소리가 들렸다. 나는 주먹 쥐어 내 눈앞에 튀어나온 그의 팔을 때렸다. 그러자 한빈이 아야, 하면서 팔을 뒤로 뺀다. 이런 일이 반복되는 게 싫었을 뿐이다. 마음이 복잡하다.

 

하늘아, 이번엔 진짜 화난 거 맞지?”

 

나는 고개 돌려 한빈을 봤다. 그를 달래 주려고 끌어안았다. 한빈은 그제야 안심한 듯 내 등 위에 팔을 둘렀다. 내 어깨에서 한빈이 자꾸 머리 위치를 바꾸는 게 느껴졌다. 자꾸 와락 안는 게, 기분이 이상했다. 미련이 남은 얼굴이 떨어져 나를 본다.

 

진짜 미안한데 하늘아. 나 일이 있어서. 가야 해. 너도 중요한데, 중요하니까.”

 

한빈이 꾸물거리며 내 품에서 멀어졌다. 그리고 나를 붙잡고 뛰어가는 것이었다. 다시 그 거리로 돌아왔다. 거리에 널려 있던 시체들과 좀비들, 사냥꾼들이 모두 사라지고 없다. 나는 기이한 현장이 도대체 무슨 의미인지 짚기만 했다. 갑자기 돌변해서 사냥꾼이라는 이름에 걸맞게 좀비를 죽이고 다니는 사람들. 갑자기 나타났다가 사라지는 좀비들. 이 모든 게 무엇을 위해 세팅되는 건가. 한빈은 시계를 봤었지. 어떠한 시간이 되면 특정한 장소로 반드시 가야 하는 듯. 그것은 일정하지 않았다. 규칙이 정해져 있는 건 아닌 모양이다. 순간 내 머릿속에 우현에게 반한 민서의 얼굴이 지나갔다. 소름 돋는 생각이 지나갔다. 만일 이 세상이 영화 속 세상이라면?

 

애들아!! 어디 있어? 다음 장소로 갔나?”

 

한빈이 다시 내 손을 잡고 이동했다. 나는 눈앞에 날아다니는 날파리를 쫓으며 내가 세운 가설을 증명했다. 한빈은 영화에선 피도 눈물도 없는 좀비 사냥꾼으로 등장하는데, 실은 착하고 여린 사람이라고 하면 그의 이중인격이 설명된다. 이야기에 끌려간다면 갑자기 사라진 것도 설명된다. 내가 아무런 공격성이 없는 0단계 좀비임을 알았던 지우와 우현이 갑자기 나를 공격한 것도, 설명된다. 새로운 씬 넘버가 시작되면 그에 맞춰 등장인물들이 움직인다.

 

애들아! 나 빼고 가면 어떡해.”

 

횡단보도가 교차하는 사거리에 도착했다. 한빈이 그 가운데에 서 있는 우현과 지우에게 뛰어간다. 그러나 그들은 한빈을 빼놓고 대화하기에 바쁘다. 한빈이 필사적으로 끼어들어도 투명 인간 취급만 한다. 저 현상은 또 뭐지? 나는 이전에 있었던 일을 짚었다. 분명 내가 좀비를 죽이려는 한빈을 끌어안았고, 데려갔었지.

 

애들아, 내 말 안 들려? 나 여기 있는데.”

 

한빈은 다급한 얼굴로 우현과 지우를 흔들었다. 어째서인지 튕겨나고 만다. 그는 몇 번이고 부딪치다가 두 사람이 완전히 증발되자 허망한 얼굴로 땅을 짚었다. 나는 그것이 나 때문이라는 끔찍한 생각이 들었다. 내가 그 장면에서 강제로 한빈을 빼내서 그가 이야기에서 튕겨 나온 걸까.

 

정신 나간 한빈이 어디론가 달려갔다. 이번엔 나를 데려가지 않았다. 나는 돌아갈 곳이 백상 병원밖에 없었다. 울고 싶은데 눈물이 나오지 않았다. 차가운 심장 때문에 한빈이 가엾게 느껴지지도 않았다. 나는 왜 하필 이런 곳에서 좀비가 되어 떨어졌을까. 누가 이런 곳에 밀어 넣었을까.

 

백상 병원 꼭대기 층에 억제제를 맞은 듯한 좀비가 급히 이송되었다. 나는 데스크로 가서 아래에 숨어 있는 의사를 봤다. 그는 사람들이 모두 지나가고 나서야 다리를 편다. 내가 준 약은 해봤나? 어때? 나는 그 물음에 고개만 내저었다. 의사는 내 몸을 뒤지더니 혀를 찼다. 한빈이가 내 약을 훔친 거로 오해한 것이다. 나는 마땅히 변명할 길도 없어서 그가 오해하게 놔뒀다.

 

의사는 나를 두고 빈정거렸다. 나는 바깥 사람(outsider)으로 사는데, 너 같은 케이스는 본 적이 없다고. 뭐라 해야 하나. 이방인(stranger)? 나는 나를 관찰하는 시선에 모서리에 위치한 병실에 들어갔다. 빈 침대에 누워서 억제제를 맞은 좀비처럼 눈을 끔뻑이기만 했다.

 

한빈은 밤이 다 되어서야 이 병원에 찾아왔다. 곧장 내가 있는 병실에 찾아오지 않고, 의사와 심각하게 대화를 나누었다. 나는 심심해서 밖으로 나와서 그들이 하는 이야기를 들었다. 대화는 끊어질 듯 계속 이어졌다. 밤이 깊어지고, 나는 데스크 근처 소파에 거의 누워서 대화가 끝날 때까지 기다렸다. 환자들이 쉬면서 놀라고 마련해 놓은 바둑알이 내 손가락 안에서 압축되었다. 나는 그것들을 바닥에 놓인 바둑판 위로 던졌다. 바둑알이 자석처럼 바둑판에 달라붙었다.

 

그럼 저도 당신처럼 바깥 사람이 된 건가요?”

맞아요. 그런데, 진행되는 이야기에는 두 번 다시 참여할 수 없을 겁니다.”

저는 그럼어떻게 되나요?”

엔딩 크레딧이 올라갈 때까지 이 자유를 즐기는 것 말고 뭐가 더 있나. 당장 저도 할 일이 없어서 의사 노릇을 하고 있는데요.”

원래 어떤 역할이셨는데요?”

좀비한테 당하는 선량한 시민. 그것도 엑스트라요. 그래서 혼자 놀다가 알았잖아요.”

 

의사가 소리 내어 웃었다. 한빈은 아아, 탄성을 지르며 고개를 끄덕인다. 무슨 대화인지는 몰라도 잘 풀려가는 것 같다. 돌아서는 한빈의 얼굴은 착잡해 보인다. 그 얼굴이 점점 가까워진다. 한빈이 자세 낮추어 나와 시선을 마주했다.

 

여기서 뭐 해? 바둑?”

 

나는 그 긴 시간 동안 다행인 점과 불행인 점을 찾아냈다. 다행인 점은 이야기가 끝나면 여기에서 나갈 수 있다는 희망이 존재하는 것이고, 불행인 점은 이야기가 끝나면 성한빈을 두 번 다시 못 본다는 절망이 존재하는 것이다. 이야기가 끝나고 여기에서 나갈 수 있을지도 의문이다. 다가올 미래가 두렵지만 그런 건 생각하지 않기로 했다. 한빈이 나를 들어올렸다. 그는 아무도 없는 구석진 2인용 병실에 나를 데려갔다. 여기에서 묵을 생각인지 출입문은 꽉 닫고, 선선한 바람이 들어오게 창문을 열었다. 좁은 병실. 마주보게 놓인 베드. 서랍장과 화장실까지. 나는 한빈에 의해 눕혀져 다시 지루한 생각을 반복했다.

 

화장실에서 나온 한빈은 나와 다른 침대에 누웠다. 그는 잠도 못 자고 한참을 뒤척이다가 슬금슬금 내 침대에 올라왔다. 나는 그가 누울 수 있게 옆으로 물러나줬다. 한빈은 나를 끌어안은 자세로 파고들었다.

 

있잖아. 너랑 있으면 마음이 편해. 이상한 일이야. 일을 망쳤는데 기분이 나쁘지 않아.”

 

나는 그런 그의 어깨를 쓰다듬었다. 한빈이 고개 들자 홀린 듯이 손을 들어 뒤통수를 쓰다듬었다. 그는 시선을 아래로 내리며 손길에 따라 머리를 움직였다. 더 칭찬해달라고 하는 고양이 같았다. 한빈이 나와 눈을 마주치자 창피한지 조금 움츠러들었다. 그날 이후로 한빈은 갑자기 사라지거나 시간에 쫓겨 살지 않았다. 나를 데리고 모험을 떠나는 것을 즐겼다. 아무것도 없는 허허벌판에서 잠을 잔 적도 있었고, 무너진 건물 위에서 태닝을 하기도 했다. 태닝, 이라고 쓰고 햇빛을 쬐는 것밖에 하진 않았지만. 나는 어쨌든 일이 잘 풀린 것 같단 생각에 행복한 나날을 보냈다.

 

작열하던 태양이 숨어들고 장마가 시작되었다. 나는 교실의 창문 틀에 앉아서 오는 비를 그대로 맞으며 뻥 뚫린 풍경을 바라봤다. 한빈이 구해다 준 우비 덕분에 몸이 완전히 젖는 일은 없었다. 요즘 분위기가 심상치 않다. 다 망해가는 세상에서도 파벌이 갈리고 있다. 백상 병원에 갔다가 삼엄한 분위기에 나온 적도 있다. 무슨 일이 일어나려는 게 분명하다. 그 일이 끝나면 이야기도 끝나겠지. 나는 소멸하는 보도 블록 아래에 비가 고이는 것을 지켜봤다. 고이던 빗물이 아래로 쓸려 내려갔다. 이상하게 공포감이 들었다. 귀가 물에 잠긴 것처럼 보글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발버둥 치는 내가 보였다. 눈앞이 캄캄해졌다. 숨이 가빠졌다. 끝없는 절망감에 질식할 것 같았다.

 

하늘아!”

 

정신이 번쩍 든 내가 고개를 옆으로 돌렸다. 한빈이다. 그가 내 겨드랑이에 손을 넣어 나를 내려준다. 나는 얌전히 그를 붙잡고 바닥에 발을 디뎠다. 다시 눈앞에 가라앉던 내 모습이 떠올라 표정이 굳었다. 한빈은 내가 보던 풍경을 확인하고선 나를 달래듯 말했다.

 

세상은 그렇게 쉽게 멸망하지 않아, 하늘아…. 괜찮아, 괜찮을 거야.”

 

한빈이 내 손에 깍지를 껴왔다. 그는 빠르게 학교에서 빠져나갔다. 나는 아까 봤던 그 풍경을 보지 않으려고 고개 숙이기만 했다. 한빈은 무작정 아무 데나 가는 것 같지만, 우연이라도 그 컨테이너로 돌아가는 일은 거의 없었다. 가끔 혼자 들어갔다가 참치 통조림을 한아름 안고 나오기도 했다. 그런 그가 데려간 곳은 옷가게의 창고다. 입고 있던 우비는 벗어서 박스 위에 말렸다. 천장 아래 우리는 옷더미에 묻혀서 멍하니 시간을 죽였다. 문을 닫아도 비가 들어오는 것 같아 한빈이 박스를 세워두었다. 나는 젖어 들어가는 박스를 보며 비 내리는 소리를 들었다.

 

이제 괜찮아?”

 

나는 무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한빈은 회색빛 내 눈동자를 응시했다. 그는 간혹 호기심 가득한 얼굴로 나를 들여다본다. 내 얼굴에 난 오돌토돌한 핏줄을 손으로 쓸다가 바르르 떨기도 했다. 잠깐 나에게 다가오려다가 얼굴을 멈추고 내 눈치를 살피며 체념한 얼굴이 된다. 이번엔 내 가슴팍 위에 손을 얹어 본다. 차갑게 식은 앞엔 아무런 생기도 느껴지지 않을 것이다. 나는 한빈의 가슴팍 위에 손을 얹었다. 심장이 요동치고 있었다.

 

네가 무슨 생각하는지 알고 싶어. 너도 내가 있어서 다행인지 그런 것 말이야.”

 

내 손 위에 한빈의 손이 얹어졌다. 그는 내 손을 꽉 쥐었다가 놓고선 손등을 살살 문질렀다.

 

아니, 가끔은 네가 다른 좀비들과 똑같은 좀비일 것 같단 생각도 해. 내가 너무 외로워서 너같이 완벽한 존재를 만들어낸 게 아닐까.”

 

나는 울적해진 한빈을 지켜볼 수만은 없었다. 잠깐 얼굴을 겹쳤다가 떨어트리니 내 손등에 감긴 한빈의 손이 굳는 게 느껴졌다. 심장 박동이 더 빨라졌다. 한빈은 눈을 질끈 감으며 이 현실에서 달아나려고 했다. 다시 눈을 떴을 땐 기다란 속눈썹에 눈물이 맺혀 있었다. 한빈의 떨리는 숨소리가 코앞에서 들렸다. 나는 그 모습이 뇌리에 강렬하게 박혔다. 내 손등과 손가락 마디마디에 올라간 한빈의 손이 잠깐 다물렸다. 목 울대가 파들파들 떨렸다. 이 감정은 그 무엇으로도 설명할 수 없었다. 잠깐 나와 한빈이 이 이야기의 주인공이 된 것 같았다.

 

고마워…. 나 걱정하지 말라고 그러는 거 맞지?”

 

영어로 땡큐. 그 속삭임에 귀가 간지러웠다. 나도 심장이 뛰었으면 한빈이가 불안해할 이유도 없을 텐데. 처음에는 친절해 보여서 졸졸 따라다녔지만, 지금은 오롯이 내 의지로 네 옆에 붙어 있는 건데. 잠깐뿐인 감정은 어디에도 없어. 말이 하고 싶었다. 그럴 때마다 어떤 말을 어떤 발음으로 해야 할지 머릿속이 백지가 되어버린다. 나는 손을 한빈의 뺨 위에 얹었다. 그것으로 대답을 대신했다. 한빈이 나와 이마를 맞댔다. 긴장한 손이 내 뺨 위에도 올라왔다.

 

그냥 다 너 덕분이야.”

 

지겨웠던 장마가 끝났다. 나는 이 시간들을 견디기 위해 학교에서 공책에 구름 그리는 연습을 했다. 나는 이야기가 끝나기 전까지 간단한 그림이라도 그리고 싶었다. 지금은 내팽개치고 한빈과 손을 잡고 걷고 있다. 어차피 언제 끝날지 모르는 이야기 속에서 안 될 일에 시간을 허비할 순 없었다. 우리는 백상 병원 근처 버려진 버스 앞에 섰다. 한빈이 열쇠가 꽂힌 것을 발견하자 시동을 걸어봤다. 버스가 움직인다. 그는 열쇠를 뽑아 버스에서 내렸다. 그리고 나를 버스 안에 데려다 놓은 뒤 병원 쪽으로 뛰어갔다.

 

한빈이 꼭대기 층에 있던 의사를 데려왔다. 그는 어리둥절한 얼굴로 왔다가 카리스마 넘치는 얼굴을 하며 운전대를 잡았다. 멀뚱멀뚱 서 있던 나는 한빈에 의해 붙잡혀 그의 앞자리에 앉아서 갔다. 가면서 창밖을 내다봤다. 의사는 죄책감도 없이 좀비들을 치고 지나갔다. 깨진 창문 밖으로 얼굴을 내밀어 버스에 달려드는 좀비들을 봤다. 그들은 내 얼굴을 보자 뜀박질이 느려졌다. 나는 그 광경에 조금 미안해져서 얼굴을 도로 안으로 넣었다. 한빈이 문득 그런 내 어깨를 두드렸다. 내가 돌아보자 손으로 입을 가리며 속닥거렸다.

 

아무말. 아무거나. 못알아듣겠지.”

 

한빈이 한 문장씩 끊을 때마다 머리가 가까워졌다가 멀어졌다. 속사포 같은 말소리에 내가 별생각 없이 고개를 끄덕이자 한빈이 웃으며 나에게 얼굴을 들이밀었다. 그가 키딩(kidding)거리자 나는 그제야 장난임을 깨달았다. 한빈은 쉽게 웃음을 그치지 못 하고 뒤에서 나를 끌어안기에 바빴다. 나는 주먹으로 그의 손등을 살짝 때렸다. 아야, 하며 빼는데 기분이 나빠 보이진 않는다. 버스가 덜컹거리자 잠시 내 몸이 위로 솟았다가 꺼졌다. 의사는 어디로 가려는 건지 거침이 없다. 뒤에서 끅끅대던 소리가 멎고 내 뒤통수가 한빈의 머리칼에 쓸렸다.

 

의사 선생님, 근데 저희 어디로 가나요?”

저도 모르겠는데요?”

드라이브나 하실까요?”

잠깐만요.”

 

버스가 끼익 멈춰 섰다. 의사가 급히 버스에서 내리자 나는 창밖으로 고개를 내밀었다. 보이진 않지만, 말싸움이 오가는 것 같았다. 한빈이 사태의 심각성을 느끼고 앞으로 뛰어갔다. 나는 혼자 있기 뭣해서 버스에서 나왔다. 민서가 바닥에 누워 있고, 의사가 그녀를 일으키려 하고 있다. 넋이 나간 그녀가 중얼거렸다.

 

사람들은 다 좀비를 죽였으면 해요. 나는 그러지 않았으면 좋겠는데, 아무도 내 말을 들어주지 않아요. 내가 나의 신념과 반대되는 사람을 사랑한다고 해서 이 일을 포기해야 하는 게 옳을까요?”

“…본인은 이미 답을 알고 있는 것 같은데요?”

 

민서는 고개를 뒤로 꺾었다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제 이마를 짚던 그녀는 넋이 나간 얼굴로 옆으로 걸어갔다. 의사는 혀를 끌끌 차다가 한빈에게 말을 걸었다.

 

어차피 정해진 운명, 저러다 말겠죠.”

저분은 볼 때마다 어딘가 괴로워 보이세요.”

이야기에서 벗어나기 전까진 우리 같은 아웃사이더는 못 돼요.”

그렇겠죠…….”

에이, 텄다, 텄어. 어차피 이 앞에 길도 끊겼고, 갈 데 없어요.”

 

우리는 버스를 타고 그 백상 병원에 돌아왔다. 잠깐의 드라이브에도 의사는 기분이 좋았는지 돌아가는 발걸음이 가벼워 보인다. 마지막으로 내가 내리자 버스는 고장이 난 듯 김이 펄펄 올라왔다. 해가 뉘엿뉘엿 지고 있어 나와 한빈도 병원에 들어갔다. 안은 전과 달리 분위기가 어두침침하다. 사람도 안 보인다. 엘리베이터에도 불이 꺼져 있어 계단을 오를 수밖에 없었다.

 

병실에 있던 그 좀비는 사라지고 없다. 나는 그가 있던 베드에 몸을 눕혔다. 그리워하는 것보단, 그래. 사실 기분이 좀 그렇다. 있지도 않은 심장이 뛰었다. 한빈이 내 옆에 누웠다. 옆 침대에 있다가 건너온 것이다. 나는 그의 목 뒤에 내 팔을 넣었다. 한빈은 지그시 나를 보다가 골똘히 생각하는 듯 시선이 내려갔다.

 

너는 말을 못 하는 대신 이런저런 고충이 많겠지. 내 말도 못 알아들을 거고.”

 

한빈의 볼에 보조개가 생겨났다. 그는 내가 그랬던 것처럼 잠깐 나와 얼굴을 겹쳤다. 굿나잇 키스라고 한다.

 

자기 전에 해주면 너도 기분이 좋겠지?”

 

나는 대답 대신 다시 그와 얼굴을 겹쳤다. 한빈은 웃다가 눈을 감았다. 나는 그가 눈을 뜰 때까지 좀비처럼 지냈다. 아무 생각도 하지 않고,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영혼이 빠져나갔다. 나처럼 영혼이 빠져나갔던 한빈이 눈을 떴을 때, 나는 다시 태어난 듯 눈을 깜빡였다. 그런 일상의 반복이었다. 날이 갈수록 나를 바라보는 한빈의 눈엔 사랑이 담기는데 나는 밑 빠진 독에 물을 채우듯 했다. 좀비의 몸 안에 갇혀 있으니 모든 게 무기력하게 느껴졌다. 그럴 때마다 한빈에게 내 몸을 맡겼다. 산 사람과 같이 지내는 건 탁월한 선택이다. 내가 아무것도 아닌 존재라고 느낄 겨를이 거의 없었다.

 

나는 부서진 건물에 앉아서 뙤약볕에 몸을 녹이며 한빈이 먹여주는 가공 참치를 씹다가 뱉어냈다. 뜨거웠던 바람이 제법 선선해졌다. 한빈의 이마에 맺히는 땀방울의 개수가 줄었다. 공책에는 여전히 지렁이 같은 글씨와 반듯하게 쓴성한빈만 있다. 공책을 넘기던 나는 바닥을 짚으며 주위를 둘러봤다.

 

하늘아, 넌 어떻게 생각해? 좀비에게도 인권이 있을까?”

 

나는 한빈의 시답잖은 질문에도 쉽게 고개를 끄덕였다. 한빈은 나에게 제대로 된 대답을 듣지 못할 걸 알면서도 말을 걸어왔다. 최근엔 그 빈도가 늘었다. 나는 그 뉘앙스를 캐치해 고개를 끄덕이거나 흔들었다. 언제까지 대화가 통하지 않는 상대에게 말을 걸 순 없는 법이다.

 

노닥거리기만 하는 일상이 지겨웠는지 한빈은 나를 이야기가 생겨나는 지점으로 데려갔다. 이념 싸움은 지치지 않고 이어졌다. 이런 상황에서도 인간은 서열질을 관두지 않았다. 적어도 내 눈엔 그렇게 보였다. 이야기가 끝으로 달려갈수록 사람들은 지쳐갔다. 민서는 우현과 거듭해서 싸웠다. 한빈은 그들을 볼 때마다 어두운 표정이 되었다. 그 두 사람의 대화가 어떤지 내 머릿속에 녹음되어 계속해서 재생되었다.

 

중요한 건 발판이야. 좀비들은 자기가 얼마나 가치 있었던 사람인지 몰라. 사람을 씹어먹고 다니는데 오죽하겠어. 그러니까 그 입질을 관두게 하면 다음 단계로 나아갈 수 있을지도 모른다고.”

매번 헛수고야, 넌. 그때까지 사람들이 기다려줄 수 있을 것 같아? 시체 더미와 살아가는 건 이제 지긋지긋하다고!”

 

거리에는 마약에 찌들어 비틀거리는 사람들만 보였다. 마약을 한 좀비는 자해 행위를 하다가 알아서 자멸했다. 이제 힘들여 억제제를 만들지 않아도 잠자는 좀비의 콧구멍에 마약을 넣으면 되었다. 자원봉사자들은 좀비에 시달리던 시민들을 말렸고, 나는 한빈에 의해 창고에 갇혔다.

 

나는 이야기 바깥의 사람이지만, 여러 번 인식된 적이 있었다. 갇히는 것에는 큰 불만을 가지지 않았다. 그러나 꽉 막힌 천장을 보면 마음이 갑갑해진다. 이럴 때 좀비의 몸에 갇힌 게 행운이라고 생각했다. 나는 밖에서 시끄러운 소리가 들릴 때마다 옷 더미 안으로 파고들었다. 한빈은 사람들과 실랑이를 벌였다. 나를 지키려고 그러는 것 같았다.

 

그러다 지친 한빈은 창고에서 나를 끌어안았다. 나는 얼굴과 몸통에 전부 옷이 뒤덮인 것을 느끼며 성한빈의 마음을 짐작했다. 고차원의 생각으로 넘어가지 못해서 관뒀다. 그저 종말을 기다렸다. 닫혀 있던 창고 문은 민서가 열었다. 한빈이 그녀와 대화를 하는 동안 나는 옆으로 굴러 내 몸을 보였다. 여전히 하얗고, 핏줄이 잘 보이는 영락없는 좀비다.

 

제가 봤을 때 이 좀비가 유일한 희망이에요. 억제제를 맞은 좀비가 움직일 수 있고, 사람들과 어울리는 게 쉬운 일은 아니거든요.”

“…사실 이 좀비는 억제제를 맞지 않았어요.”

그것도 긍정적인데요. 이런 존재가 있다는 것만으로도 사람들을 안심시킬 수 있을 거예요.”

 

한빈은 나를 보며 고민하는 눈치였다. 이내 아, 하고 탄성을 질렀다.

 

하늘이는 원래 이야기에 포함되어 있던 거예요. 그래서 사람들이 죽이려고 한 거야.”

아무튼, 데려가도 된다는 거죠?”

저도 같이 가도 될까요?”

물론이죠.”

 

한빈이 나를 일으켰다. 나는 그들과 함께 어디론가 걸어갔다. 백상 병원이다. 거기에 사람들이 모여 있었다. 한빈은 걸음을 멈추었고, 민서가 계속해서 나를 끌었다. 나는 도살장으로 끌려가는 것 같아 뒤돌아 한빈의 얼굴만 봤다. 병원 앞엔 단상과 스탠드 마이크가 마련되어 있다. 민서는 나를 거기로 데려갔던 것이다. 사람들의 시선이 보인다. 모두들 나만 바라보고 있다. 경계하는 듯, 흥미로워 하는 듯한 눈빛들이 보였다. 그녀는 당당한 걸음걸이로 걸어가 나를 소개했다.

 

여러분, 이 좀비를 봐주세요.”

 

그때 어둠이 덮쳤다. 나는 내 옆에 있던 민서가 사라졌을 뿐만 아니라 앞에 있던 사람들, 심지어는 한빈까지 사라졌다는 것을 확신했다. 근처에서 아무런 기척도 나지 않고, 걸어도 무언가에 발이 채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야말로 무의 세계였다. 시간도, 공간도 없는. 나라는 존재는 다시금 잘게잘게 조각 나서 이 세계에 놓인 것 같았다. 그러나 꿈이라면 깨지 않았으면 좋겠다. 깨어나면 이 모든 게 허상이 되어버린다는 게 싫었다.

 

어둠 속을 부유하던 나는 좀비처럼 생각을 놓아버렸다. 그런데도 성한빈과 마지막 작별 인사를 하지 못 한 것이 자꾸 마음에 걸렸다. 마지막이 이렇게 갑자기 다가올 줄 알았더라면 한 번이라도 더 안아줄 걸. 어둠에 눈이 잠긴 나는 성한빈을 그리워하지 않은 시간이 없었다.

 

내 몸을 타고 거미가 오른다. 나는 그것이 올라가게 냅뒀다. 속삭이듯 다가오던 거미가 입술 위를 지나갔다. 나는 손으로 거미줄이 쳐진 입을 문질렀다. 굳게 다물린 입술이 갈라졌다. 목에서 나오던 탁한 쇳소리에 울림이 더해졌다. 입을 벌린 채 서 있던 나는 어둠에 대고 소리쳤다.

 

성한빈!!”

 

 

*

 

 

영화 라스트 바디는 좀비를 죽이려고 하는 남자와 좀비를 살리려고 하는 여자의 이야기다. 거기에 피도 눈물도 없는 좀비 사냥꾼, 한태수가 나온다. 좀비를 죽여야 한다. 그 외의 값은 입력되지 않은 듯 감정이 결여된 행보를 보인다. 꿈에서 한빈은 한태수가 되었다. 라스트 바디에서 그가 그랬던 것처럼 죄책감 없이 좀비들을 죽였다. 처음 꿈을 꾼 날에는 기분이 묘했다. 인상 깊은 영화도 아니었고, 찌는 여름에 무난한 텐트폴 영화라 감상했던 것밖에 없었다. 그때까지만 해도 잠깐의 신기한 일로 넘어갈 수 있었다.

 

그러나 그 꿈은 내일도, 모레도 찾아와 라스트 바디를 완벽히 재현했다. 한빈은 한태수와 저를 분리하려 했으나 실패했다. 일상 생활에서 걸어 다니는 사람들이 좀비로 보이기 시작하고, 못 박힌 배트로 때려야 직성이 풀릴 것 같았다. 라스트 바디 엔딩에 태수는 사람들을 공격하지 않는 좀비가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지 못 하고, 그 좀비를 때려 죽이려고 했다. 발악하던 한태수는 조우현이 마지막으로 아껴두었던 총알에 맞아서 쓰러진다. 꿈에서 몇 번을 쓰러졌는지 모르겠다. 한빈은 평범하게 회사 잘 다니고 있던 사람인데, 그 꿈 때문에 저를 마음에 들어 하지 않는 직장 동료 앞에서 적의를 보였다. 안경과 팔토시 앞에서 표정 관리를 잘 못했다는 말이다. 스트레스가 극심해져 회사를 관둘 수밖에 없었다. 라스트 바디의 꿈을 꾸는 것도 다 한태수처럼 사람들을 마구잡이로 사냥하고 싶은 마음에서 기인한 게 아닌가 싶었다. 그런 생각이 들자 제가 끔찍하게 느껴졌다.

 

꿈에 하늘이 나온 건 한빈이 한태수가 아니라 성한빈이 되려고 했을 때였다. 라스트 바디에서 일어나는 일은 그대로 일어나지만, 그 밖의 시간에서 자유의 몸이 된 것이다. 한빈은 제 의지로 그 세계관에서 움직여 하늘을 구해 그와 시간을 보냈다. 꿈에서 깨어나면 라스트 바디를 시청했다. 그래야 다음 날에도 하늘이 나오는 꿈을 꿀 수 있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그런 명분으로 한 번, 두 번 시청 횟수가 쌓이다 보니 처음엔 보이지 않았던 것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민서는 정말 우현을 사랑했을까. 제 신념과 반대되는 사람의 손을 기꺼이 들어줄 수 있을까. 좀비는 좀비이기 이전에 사람이었는데, 그렇다면 그에게도 인권이 있을까. 하는 생각이 자꾸 들었다. 그렇게 영화는 한빈의 머릿속에서 재구성되었다. 이젠 영화가 영화가 아니게 되었다. 한빈은 저만의 영화를, 아니, 삶을 만들고 싶은 욕구도 치밀어 올랐다.

 

꿈꾸는 데 중독되어 매일 24시간 중 절반 이상을 잠자는 데 사용하는데도 기력이 쇠해졌다. 한빈은 하늘과 엔딩을 보기 싫어 침대에서 뛰어나왔다. 하늘은 도대체 어디에서 튀어나온 인물일까. 꿈은 무의식의 세계라던데, 혹시 어디서 만난 적 있는 사람을 하늘로 설정한 게 아닐까. 그를 직접 만나고 싶어졌다. 사회에 나를 녹이면 점차 나라는 존재가 어떤 존재인지 희미해지곤 한다. 하늘과 함께하면서 한빈은 진짜 제 모습이 무엇이었는지 깨달을 수 있었다.

 

그는 별안간 제 핸드폰 갤러리를 뒤졌다. 스크롤이 끊임없이 내려갔다. 그러다 어느 한 지점에서 멈췄다. 예전에 여행 갔을 때 찍은 사진이다. 숨을 들이켜던 한빈이 하늘의 얼굴을 떠올렸다. 언제 찍었는지 모를 사진을 봤더니 기억이 났다. 여행지에서 마주친 중국인이 한빈의 사진을 찍어줬었다. 스쳐 지나갔던 인연이다. 그런데 만날 사람이라면 언젠가 만날 수도 있겠지. 생각하던 그의 눈꺼풀이 천천히 아래로 내려 앉았다.

 

 

*

 

 

다시 주변이 밝아졌다. 나는 마지막에 봤던 그 단상 위에 올라가 있었다. 민서는 나를 사람들에게 소개했다.

 

여러분, 우리는 결국 좀비와 공존해야 합니다. 좀비는 죽여야 하는 존재가 아니라 마땅히 치유해야 하는 존재인 겁니다. 좀비 바이러스는 끈질겼습니다. 우리는 수 년 간 고통받아 왔습니다. 그 시간을 견뎌냈는데 이렇게 허무하게 생의 의지를 놓칠 수는 없습니다. 좀비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이 좀비는 다른 좀비와 달리 온순하며 사람의 말을 알아듣고, 의지를 가지고 있습니다.”

 

사람들은 민서의 말을 집중해서 들었다. 그녀는 훌륭한 연설가지만, 내 눈엔 오로지 성한빈만 보였다. 그토록 만나고 싶던 얼굴에 나는 발이 저절로 움직였다. 한빈은 불안한 얼굴로 있다가 바지 뒷주머니에서 의사에게 받은 지퍼백을 꺼냈다. 나는 그런 그의 팔목을 붙잡았다. 이야기가 끝나기 전에 단둘이 있고 싶었다.

 

그렇게 우리는 이곳에서 벗어났다. 병원의 울타리에서 나오니 세상이 무너져가는 게 보였다. 저 끝에서부터 풍경이 아래로 빨려 들어가기 시작했던 것이다. 한빈이 압도된 얼굴로 있다가 내 손을 꽉 쥐었다. 한빈은 나를 봤지만, 나는 다시 목이 막혔다. 무너졌던 건물이 땅으로 돌아가고, 하늘에 조명이 하나 둘씩 꺼졌다. 소멸하는 세상에서 옆을 봤을 땐 한빈의 얼굴이 면과 선, 점이 되어 무너졌다. 마지막으로 입술을 들썩이던 그가 완전히 사라졌다.

 

다시 어둠 속을 헤엄치게 된 나는 내 존재 의의를 짚었다. 이 거대한 우주 속 작은 먼지 같은 내가 무엇을 할 수 있냐고. 어디로 가면 다시 성한빈을 만날 수 있냐고. 이야기는 끝나고, 관객은 모두 떠났다. 엔딩 크레딧이 끝까지 올라가고 박수가 끝나면 배우들도 떠난다. 나는 배우도 뭣도 아니다. 그저 이 공간에 존재할 뿐이다. 성한빈이라는 희망으로 나를 고문한 건가. 나는 예전에 잠깐 봤던 얼굴을 떠올렸다. 깜깜해서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나는 좀비가 되기로 했다. 이런 식으로 살아있는 건 고통스러웠기 때문이다. 자아를 죽이는 방법은 간단했다. 좀비가 되면 그만이다. 나는 아, 아 괴상한 소리를 내며 먹잇감을 찾아 떠났다. 걸어도 걸어도 끝이 보이지 않는다. 걸어도 걸어도 성한빈은 안 나온다. 아, 그냥 쉬자. 나는 철푸덕 엎어졌다. 움직이기 귀찮아서 그렇게 있었다. 1mm도 움직이지 않고 그 자세에서 긴 휴식을 취했다.

그러나 어디선가.

 

하늘아!”

 

하는 소리에 생의 의지가 솟아났다. 눈꺼풀을 들기만 하면 성한빈이 있을 것 같았다. 나는 흩어진 내 몸을 찾아 끌어 모으려 했다. 이 어둠 속에서 꿈틀거리며 빛을 찾았다.

.

.

.

 

 

 

 

 

번쩍 눈이 뜨인 나는 숨을 토해내며 깨어났다. 내 얼굴에는 산소 호흡기가 달려 있었고, 팔과 상체에 링거와 줄이 덕지덕지 달라붙어 있었다. 왼쪽 가슴께에 화살이 꽂힌 듯 찌릿했다. 허억, 숨을 들이켠 나는 심장이 미친 듯이 뛰는 것을 느꼈다. 살아있다. 살아있다, 나는. 정신이 아찔했다. 눈을 질끈 감으며 베개에 머리를 부딪친 나는 손을 들다가 고통이 밀려와 눈꺼풀을 들려고 했다. 거미가 지나간 듯 한 번 감긴 눈은 잘 떠지지 않았다. 급히 눈을 닦아내고 옆을 봤다. 그토록 보고 싶던 성한빈의 얼굴이다. 꿈은 아니겠지. 링거가 꽂힌 손을 들다가 다시 밀려오는 고통에 입에선 괴상한 웃음소리가 나왔다. 그러나 나는 여전히 좀비인 듯 목소리가 나오지 않았다. 잠긴 목을 풀려고 마른 침을 삼켰다. 그동안 내 눈가에서 눈물이 나와 관자놀이에 그였다. 옆을 보던 한빈이 감개무량한 얼굴로 그런 내 뺨을 감쌌다.

 

괜찮아요?”

 

한빈은 조심스러워 보인다. 나는 바싹 마른 입술에 침을 발랐다. 가래 섞인 숨 때문에 산소 호흡기가 자꾸 뿌예졌다. 목을 가다듬은 나는 그토록 하고 싶던 말을 내뱉었다.

 

성한빈, 我想了。

 

나는 좀비가 되기 전에는 아무런 형체도 지니고 있지 않았다. 곧 끊어질 것 같은 생명줄을 붙잡은 채 추락하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계속해서 보고 싶었다고 외치던 나는 손으로 제 얼굴을 가린 한빈을 올려다봤다. 이제야 선명해진다. 예전에 성한빈을 잠깐 만난 적 있다. 잠깐. 찰나의 인연이다. 나는 터질 듯한 심장을 부여잡던 손으로 한빈의 팔목을 붙잡아 끌렀다. 한빈이 눈물이 그렁그렁 맺힌 얼굴로 나를 내려다봤다. 마음 고생이 심했는지 얼굴이 엉망이다. 나는 그제서야 그가 왜 여기에 있는지 짚었다. 한빈이 다리를 굽혀 얼굴을 가까이했다.

 

하늘아, 나 이제 알 것 같아.”

 

간호사와 의사가 나에게 달려들었다. 위아래로 벌어진 내 눈에 빛이 쏘였다. 환한 검정 눈동자로 한빈을 올려다봤다. 그의 얼굴은 여전히 엉망이다. 그러나 멋져 보였다. 언제나 그랬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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