늘빈웹진: cinéclub

스물, 스물 아홉

단호떡

2014

스무 살, 장하오.

 

 

 

"53위로 탈락하게 된 장하오 연습생."

"…."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말씀해 주세요."

 

 

인생에 답이 어딨어? 하고 싶은 대로 하는 거지. 자유롭게 길을 개척하는 사람이 있다면,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촘촘하게 짜여진 삶을 사는 사람도 있다. 장하오는 후자였다. 스스로 생각하고 언어를 구사할 수 있게 됐을 때부터 그의 미래는 정해져 있었다. 교육자가 아닌 다른 건 꿈도 못 꿨다. 많고 많은 친척들의 직업은 모두 하나였으니까. 교수 부모님 밑에서 장하오는 까까머리 시절부터 자신을 예비 선생님이라고 생각하고 살았다. 자는 시간보다 책상에 앉아 있는 시간이 길었다. 친구들은 모두 꿈을 고민하며 대학을 고민할 때도 망설임 없이 당연하게 사범대를 준비했다. 입학은 어렵지 않았다. 마음먹은 대로 됐다. 주변에 조언해 줄 롤모델은 널렸고 그들이 갔던 길을 따라 걸으면 됐으니까. 장하오는 앞으로도 제 인생에 그런 탄탄대로만 펼쳐질 줄 알았다. 온 가족이 닦아놓은 교육자의 길.

 

하지만 이제 탄탄대로는 없다. 그 길은 한순간에 금이 갔다. 정확히 말하면 스스로 붕괴됐다. 나날이 늘어가는 과제 때문에 숨 막혀서 처음으로 도서관 문 닫는 시간보다 일찍 나온 날. 무작정 걷던 길에서 흘러나오던 노래가 일주일 넘게 귀에 맴돌았다. 그게 케이팝이라는 건 일주일 넘게 시달리다가 허밍으로 검색해 보고 나서야 알았다.

 

처음엔 단순한 호기심이었다. 노래? 춤? 자신이 할 거라곤 생각도 못 했다. 한국어는 한국인 유학생들 때문에 기본적인 단어만 알고 있는 정도였다. 안녕하세요. 감사합니다. 화장실이 어디예요? 이 정도.

 

그런 장하오가 이뤘던 모든 걸 포기하고 냅다 한국으로 날아온 건 약간의 희망과 확신이 있어서였다. 내가 선택한 건 모두 잘될 거라는 그런 자신감. 지금까지 그렇게 살았으니까. 일등이 아닌 적은 없었으니까.

 

 

"첫 번째 생존자 발표식에서 마지막으로 생존한 52위 연습생은,“

"...“

"김철수입니다.“

"....“

"장하오 연습생은 간발의 차이로 53위입니다."

 

 

2년. 모든 희망이 사라질 때까지 딱 2년 걸렸다.

 

금방 데뷔할 줄 알았다. 막연하게 희망만 가진 채 비행기 타고 날아온 건 아니었으니. 케이팝에 관심이 생긴 지 얼마 안 돼서 운 좋게 캐스팅을 당했다. 커버 영상 하나 올린 게 다였는데. 아이돌이라는 환상에 잔뜩 젖어있던 장하오는 덜컥 그 소속사에 입사했다. 제대로 된 곳인지, 소속 그룹은 누가 있는지 같은 기본 정보도 확인하지 않은 채로. 그럴싸한 계약서와 화려한 캐스팅 매니저의 말빨에 속아 냅다 한국으로 왔다. 오는 건 어렵지 않았다. 저 아이돌 하고 싶어요. 그 한마디에 집에선 쫓겨났으니까.

 

한길만 걸어오던 집안에서 다른 길을 걷겠다는 존재는 돌연변이나 마찬가지다. 처음으로 부모에게 폭언을 들었지만 개의치 않았다. 내가 아이돌로 성공하면 되니까. 잘나가면 선생님? 그런 건 생각도 안 날 테니까. 입사하자마자 데뷔 조에 속해서 장하오는 단꿈만 꿨다. 데뷔하게 되면 모든 게 다 잘될 거라는 그런 꿈. 현실을 몰라도 너무 몰랐다. 아무것도 모르는 햇병아리 연습생이 데뷔 조에 속하는 건 그만큼 인재가 없는 중소라는 것도. 

 

말만 데뷔 조였다. 6개월이 지나도 진전된 건 아무것도 없었다. 데뷔곡을 연습하지도 않았다. 소속사는 아직 딱 맞는 곡을 찾지 못했다는 핑계로 커버 곡만 시켰다. 그런 장하오에게 서바이벌 오디션 프로그램은 한 줄기 빛이었다. 작년에 히트 친 프로였다. 여기서 데뷔한 그룹의 노래가 장하오의 인생을 바꾼 첫 케이팝이었다. 내가 여기 나가기만 하면 선배님처럼 될 거야. 큰 꿈을 갖고 98명에 속했지만 52위까지 생존하는 1차 순위 발표식에서 53위로 탈락했다. 

 

이름도 제대로 알려지지 않은 소속사. 눈을 덮는 헤어스타일로 다 가려버린 외모는 방송국 입장에서 중요한 존재가 아녔다. 1,2화는 통편집되고 모두 공평하게 올라오는 개인 직캠이 유일한 분량이었다. 하지만 방송에서 비춰지질 않는데 그 영상을 찾아볼 팬이 있을 리가. 같이 출연한 연습생 동기 한 명이 빌런으로 주목받으면서 잠깐 같이 이슈됐지만 그뿐이었다. 소극적인 성격 탓에 분량이 티끌 모아 태산이었으니까. 꿋꿋하게 연습하는 우직한 이미지로 53위까지에 오르긴 했으나 그게 끝이었다. 더 올라갈 기회가 이젠 없었다.

 

한국에 온 지 2년 만에 장하오는 거리에 주저앉았다. 탈락하자마자 소속사에서도 나왔다. 회사에서는 방송으로 얼굴도 비췄고 조금이나마 팬도 있으니 바로 데뷔를 준비하자고 했지만, 장하오는 이제 현실을 알았다. 데뷔해 봤자 무명에서 벗어나지 않을 현실도. 그래서 나왔다. 갈 데는 없었다. 부모님과는 연락이 끊겼고 먼저 연락할 수도 없었다. 잘 돼서 찾아가려고 했는데. 내 선택이 맞지 않았냐며 큰소리치려고 했는데. 

 

물론 그동안 쌓아둔 길을 다시 걸으면 된다. 한번 부서지긴 했어도 보수공사는 언제든 할 수 있으니까. 사범대 재학생이라는 타이틀은 사라지지 않았다. 눈칫밥이야 먹겠지만 다시 돌아가서 복학해서 원래 길을 걸으면 된다. 하지만 미련이라는 게 넘쳐흘렀다. 실패만 맛봤음에도 아이돌이라는 꿈이 포기가 안 됐다. 되지 않으니 더 간절해졌다. 결국 한국에 머물기를 택했다. 소속사가 없어도, 믿어주는 가족이 없어도. 어떻게든 혼자서 해낼 거라는 굳은 마음으로.

 

이번엔 3개월이 걸렸다. 3개월 만에 굳게 먹었던 마음마저 사라졌다. 늦은 새벽, 음주 운전 뺑소니. 기사 한 줄 없는 마지막. 스무 살의 끝자락이었다.

 

 

 

 

 

 

2014.

열아홉, 성한빈.

 

 

 

“쟤 뭐야?”

 

 

최애가 결정되는 순간은 간단하다. 누군가가 영입해도 안 되고 오로지 마음이 움직여야 하는데 잘생김? 실력? 그건 당연한 거고. 쟤 뭐지 싶을 정도로 자꾸 눈에 밟히는 순간, 최애가 결정된다. 19년을 살아오면서 성한빈은 수많은 최애를 품었고 방금 새로운 사랑을 찾았다. 습관처럼 보게 된 서바이벌 프로에서.

 

늘 인기 멤만 잡았다. 일부러 노린 건 아니었고 잡고 보면 죄다 그랬다. 서바이벌 프로그램도 마찬가지였다. 자신이 픽한 연습생은 하나같이 안정적으로 데뷔권에 안착했다. 몇 위로 데뷔할지만 걱정했지, 데뷔를 못 할 거라곤 생각도 못 했다. 이번엔 아니었지만. J 엔터테이먼트 중국인 연습생 장하오. 첫 순위가 89위일 정도로 안정적인 심해 연습생.

 

사실 처음 잡은 픽은 아녔다. 원래 최애는 따로 있었다. 장하오는 걔랑 첫 미션에서 같은 팀이었다. 팀에서 말도 잘 안 하고 분량도 없었는데 화면 끄트머리에 삐죽 나오던 그 얼굴이 자꾸만 아른거렸다. 최애보다 더. 그래서 직캠도 찾아보고 인터뷰도 찾아봤더니 최애가 바뀌었다. 근데 너무 늦게 품었다. 하필 첫 순위 발표식 직전에 픽해버려서 한빈은 제 최애가 탈락하는 걸 그저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원래 덕질에 큰 미련은 없었다. 저번 시즌에서도 눈여겨본 연습생이 탈락한 적은 있었지만 아쉬움없이 다른 연습생을 픽했다. 최애가 없어지면 다른 최애를 만들면 되지. 아이돌은 많고 내 스타일은 또 있을 테니까. 근데 이번엔 뭔가 달랐다. 그냥 포기가 안 됐다. 장하오가 일찍 탈락해 버려서 더 볼 것도 없는데 프로그램 본방송은 안 챙겨보고 자꾸만 예전 직캠만 돌려봤다.

 

그게 벌써 몇 달 전 일이었다. 프로그램은 진작에 끝나서 데뷔 조 팀명도 나왔고 탈락한 연습생들도 근황이 계속 뜨는데 장하오는 감감무소식이었다. 혹시 해외연습생이라 한국 커뮤에만 반응이 없을까 봐 열심히 구글로 서치해봐도 마찬가지였다. sns도 안 했고 목격담도 안 떴다. 쥐도 새도 모르게 중국 갔나. 아니면 데뷔 조에 속해서 바쁜 건가. 대문자 F답게 생각은 꼬리에 꼬리를 물었다. 또 몇 달이 지나고 나서야 꼬리가 잘렸지만.

 

프로그램이 끝난 지 일 년 만에 최애의 소식을 듣게 됐다. 일 년 동안 애타게 찾았던 장하오의 근황은 같은 프로에 출연했던 소속사 동기의 라이브를 통해 쉽게 알 수 있었다. 혹시 데뷔 조에 하오도 있어? 곧 데뷔할 거 같다고 킨 라이브에 누군가가 남긴 댓글이었다. 하오 형이요? 아 이런 말 해도 되나. 한참 뜸 들이길래 소속사에서 안 좋게 나갔나 싶었는데. …그 형 이제 못 봐요. 몇 달 전에 교통사고 당해서.

 

 

죽었어요. 열아홉의 성한빈은 그날 이후로 덕질을 접었다. 감히 청소년이 받아들이기 쉽지 않은 소식이었으니까.

 

 

 

 

 

 

스물, 스물아홉

 

 

 

 

01.

 

 

 

“아이스 아메리카노 한 잔 맞으시죠?”

 

 

10년 뒤에 나는 무슨 일을 하고 있을까요? 학창 시절에 줄기차게 들었던 질문에 선생님이요! 라고 대답하던 성한빈은 카페 사장이 됐다. 아직 1년 차인 햇병아리이긴 했지만. 막 시작한 만큼 의욕도 넘쳤다. 최근엔 베이킹도 배워서 쿠키도 직접 만들고 있는데 은근 매출이 쏠쏠했다. 이래서 다들 메뉴를 추가하는 건가. 주택가 근처라서 큰 매출은 기대 안 했는데 SNS 계정을 개설하고 나서 답례품 문의가 자주 들어왔다. 밸런타인데이, 화이트데이, 빼빼로데이…상술이라고 생각했던 날들이 이젠 반가웠다. 장사꾼의 눈으로 달력을 보면 특별한 날은 꽤 넘쳤다.

 

 

“사장님, 혹시 망자의 날에도 영업하세요? 저희 어머니가 쿠키를 좋아하셨어서 드리려고요.”

 

 

이번 달의 큰 행사는 딱 하나, 망자의 날. 1년에 한 번 돌아오는 죽은 자를 기리는 날이었다. 생일도 제사도 없는 죽은 자를 위한 유일한 행사였다. 한빈도 어릴 땐 그날을 챙겼다. 혼자 서울에 올라오고 나선 잊어버렸지만. 그냥 휴일로만 알고 있었지, 누굴 챙길 생각을 안 했다.

 

 

“죄송하지만 그날은 쉴 거 같아요.”

 

 

그럼 올해는 한번 챙겨볼까. 오랜만에 본가 가서 부모님 얼굴도 뵙고 제사상 차리는 것도 도우면 좋으니까. 평소엔 J지만 가끔은 P가 되기도 한다. 한빈은 그런 생각이 들자마자 냅다 버스표부터 끊었다. 엄마, 망자의 날에 본가 내려가려고요.

 

 

 

-

 

 

 

망자의 날은 집집마다 불을 환하게 켜고 고인이 생전 좋아하던 음식과 사진을 제사상에 올려둔다. 그러면 망자가 사진을 통해 이승으로 넘어와서 차려둔 음식을 맛있게 먹고 보고 싶었던 인연들도 보고 간다고 한다.

 

 

“사진첩 좀 찾아줄래? 할아버지 사진을 바꿀 때가 된 거 같아서.”

“네. 제 방에 있죠?”

 

 

오래전부터 전해져 내려오는 전설인데 특이한 건 망자가 사진 속 옷을 그대로 차려입고 온다는 거다. 그래서 주기적으로 사진을 바꿔줘야 했다. 망자도 매번 똑같은 옷만 입으면 질릴 수 있잖아. 사진첩을 찾기 위해 몇 년 만에 들어간 방은 스무 살 때와 똑같았다. 10년의 시간이 흘렀음에도 어머니가 주기적으로 청소를 하신 건지, 먼지 하나 없이 깔끔했다.

 

 

“이게 아직도 있네.”

 

 

책상 아래, 색이 바랜 흰 상자에 시선이 꽂혔다. 사진첩을 찾아야 한다는 사실도 잊고 상자를 집었다. 아마 내 기억이 맞다면. 이 안에 들어있는 건.

 

 

“…장하오.”

 

 

구 최애의 추억. 그동안의 덕질 물품이 가득했는데 제일 위에 있는 건 최애의 사진이었다. 내 마지막 아이돌. 아, 아이돌은 아니지만…그래도 누구보다 빛났는데. 사실 매년 망자의 날마다 생각나긴 했다. 딱히 제사상을 차려서 기리진 않아도 문득 떠올랐다. 좋아했던 사람 중에서 가장 먼저 떠난 사람이니까. 처음으로 죽음의 존재가 가까이 있다는 걸 알려준 사람이라서 매년 이맘때쯤 생각나곤 했다. 늘 바빠서 스쳐 지나가긴 했지만.

 

오늘은 그 생각이 좀 길어진다. 장하오를 기억하는 사람이 또 있을까. 혹시 몰라 검색해봤지만 새 소식은 없었다. 조회수 3만 중에서 2만은 기여했을 직캠만 떠서 오랜만에 또 돌려봤다. 10년 만에 보는 장하오는 여전히 화면 속에서 빛났다. …아무리 봐도 무대가 잘 어울리던 사람이었는데.

 

 

 

 

-

 

 

 

 

10월 31일, 망자의 날 시작. 사흘간의 연휴 첫날이라 오랜만에 늦잠도 잤다. 일 년 동안 새벽에 일어나는 게 습관이 돼서 금방 깰 줄 알았는데 벌써 오후 한 시였다. 제대로 푹 잤네. 휴대전화로 시간을 확인하자마자 방문을 열었지만 이미 늦었다. 할아버지 제사상은 차려져 있었다. 결국 도움이 못 됐네. 거실 한가득 차려져 있는 음식들을 눈으로 훑다가 다시 방으로 들어갔다. 할아버지, 맛있게 드세요. 유교보이 답게 속으로 인사를 하는 건 잊지 않았다.

 

 

“…흠. 뭘 좋아했더라.”

 

 

다시 잘까 하다가 책상 위에 올려둔 장하오의 사진이 눈에 띄었다. 예전처럼 한번 눈에 밟히자 자꾸 생각났다. 인간 마약도 아니고 왜 자꾸 생각나는 건지. 한빈은 침대에 대충 던져둔 휴대폰을 다시 집어 배달 앱을 켰다. 밀크티와 낙곱새. 곱창구이는 대낮에 안 하네. …두리안은 패스하자. 10년도 더 된 최애라 다 잊은 줄 알았는데 많이 좋아하긴 했나보다. 장하오 사진을 바라보고 있으면 그에 관한 것들이 하나둘씩 떠올랐다. 작지만 명랑한 목소리로 했던 인터뷰 영상 속 말들. 수백 번 돌려본 직캠과 다시는 못 보는 순위 발표식. 그리고 마지막으로 접했던…장하오의 소식.

 

얼마나 장하오 생각을 했는지, 정신을 차려보니 배달 음식이 모두 도착했다. 하나하나 비닐을 까서 예쁜 그릇에 옮겨 담아 다시 방으로 들고 왔다. 책상 위를 깨끗하게 닦고 정성 들여 세팅했다. 음식이라곤 두 가지뿐이지만 가지런히 놔두고 그 앞엔 어제부터 빤히 바라보던 사진을 뒀다. 사진 속엔 연습생 단체복을 입은 장하오가 예쁘게 웃고 있다.

 

 

안녕, 장하오.

망자의 날이라서 그쪽이 떠올라요.

 

물론 그쪽은 저를 모르겠지만. 웬 뜬금없는 대한민국의 가정집에서 볼품없는 제사상을 차리냐 하겠지만.

한때 당신의 팬으로서. 당신을 기억합니다.

가족들 보러 가느라 바쁘겠지만 마지막 날엔 잠깐 들려서 버블티 먹고 가세요.

 

 

 

 

 

 

02.

 

 

 

“하오, 넌 잘생겼으니까 연예인 사칭하자.”

“맞아. 안경 쓰고 머리 좀 덮으면 장하늘? 닮았을 거 같은데.”

“그거 옛날에 써먹었던 거야. 안 먹혀.”

 

 

10월 31일, 망자의 날 시작. 망자의 세계는 축제 준비로 바쁜 이승보다 딱 두 배 더 시끌벅적하다. 민족대이동의 첫날이니까. 출입국 사무소는 일 분이라도 빨리 이승으로 가려는 죽은 자들로 가득했다. 여덟 갈래로 나뉜 검색대는 숫자를 헤아릴 수 없을 만큼의 인파가 몰렸다. 물론 어디에나 예외는 있다. 출입국 사무소에서 세 발짝 떨어진 곳. 작은 벤치에도 영혼들이 모여있다. 스무 명 남짓한 그들은 이곳에서 서로를 처음 봤지만, 동질감에 쉽게 친해졌다. 왜냐면 이승에서 버림받은 존재였으니까.

 

망자의 날은 죽은 자를 위한 축제지만 모든 영혼이 즐길 순 없다. 이승에 가려면 조건이 있었다. 바로 이승에 있는 누군가가 나를 기억해 줘야 한다는 것. 나를 기리는 제사상이 어딘가에 있어야 한다. 세상과 세상을 넘어가려면 그걸 이어주는 매개체가 꼭 필요하니까.

 

“난 틀렸어. 곧 사라지겠지.”

“그게 무슨 말이에요.”

“지금도 봐. 오른쪽 다리가 흐릿하잖아.”

“….”

“생각해 보니까 우리 딸 나이가 팔순이 넘었어.”

 

 

걔가 곧 여기로 오려나 봐. 그럼 난 없겠지. 날 유일하게 기억해 주던 게 그 아이였거든.

 

망자의 세계도 균형이 필요하다. 모든 영혼이 평생을 머물 수 없다. 언젠가 영혼도 소멸하게 되는 때가 오는데 그건 이승에 자신을 기억하는 사람이 하나도 없게 될 때. 그때가 되면 검은 후드를 뒤집어쓴 노인처럼 온몸이 희미해지면서 완전한 소멸을 하게 된다. 하오는 벌써 56번째 소멸을 목격했다.

 

 

“하오, 넌 되게 신기해.”

“왜요?”

“10년 넘게 이승을 못 가면서 몸이 투명해지지도 않잖아.”

 

 

이건 스스로도 신기하긴 했다. 보통 이승에 못 가는 영혼들은 이 세계에서 오래 버텨봤자 3년이었다. 이승에 못 간다는 건 자신을 기리는 존재가 없다는 거니까. 지금 사라지고 있는 노인은 올해로 5년째인데 이승은 못 가도 간간이 제 생각을 해주는 딸 덕분에 여기에 남아있을 수 있었다. 이젠 그것도 한계였지만. 영생? 그런 건 없다. 죽어도 또 죽을 수 있다고.

 

자신도 10년 넘게 소멸하지 않은 건 누군가가 저를 기억하고 있다는 뜻인데. 도통 그 사람이 누군지 감이 안 잡혔다. 10년 동안 몸이 단 한 번도 투명해지지 않았다는 건 꾸준히 나를 생각해 주는 존재가 있다는 거다. 부모님은 절대 아닐 거고. 친구도 없는데. 예측되는 이가 한 명도 없다. 참 신기한 삶의 연장이었다.

 

 

“곧 자정인데 오늘은 그만 돌아갈까?”

“하오는 도전 안 해?”

“해도 안 될 건데 뭐하러 해요.”

“혹시 모르잖아.”

 

 

늦은 시간이라 한산해진 검색대 앞은 이제 통과하지 못한 영혼들로 가득하다. 간혹 몰래 통과하려는 이들이 있긴 하지만 카메라 앞에서 무용지물이었다. 하오도 초반엔 몰래 시도했지만 붙잡히고 나서 독방에 갇힌 이후로는 도전하고 싶은 마음이 싹 사라졌다. 이승에 못 가는 것도 슬픈데 갇혀있으면 너무 우울하잖아.

 

근데 10년마다 강산이 변하는 것처럼 영혼의 마음도 변하는지. 안 될 거라는 말과 다르게 하오의 발은 검색대 앞으로 향했다. 저를 바라보는 직원의 눈빛은 의심으로 가득했다. 그럴 수밖에 없지. 내가 매년 이 앞을 서성이는 걸 봤을 테니까. 나 같아도 그냥 쫓아내려고 했을 거야.

 

 

“장하오 씨. 즐거운 여행 되세요!”

“…네?”

 

 

근데 통과했다. 아니 진짜로?

 

 

“여행지는 한국이네요.”

“저 중국인인데요.”

“성한빈 씨 모르세요?”

“…성항빙이 누군데요.”

 

 

누가 내 제사상을 차렸다. 그것도 한국에서. 성항빙이 누구야? 오래된 기억을 떠올려봐도 그런 이름은 처음 들었다. 연습생 친구 중에서도 없는데….

 

 

“잠시만요!”

 

 

삐용삐용. 넋 나간 장하오만큼 출입국 사무소도 비상이다. 지금처럼 제사상이 없다가 생겨서 통과하는 경우는 종종 있긴 했지만, 생판 모르는 남이 차려줘서 영혼이 당황한 적은 처음이었다. 그것도 10년 만에 차린 거니까. 직원은 부서질 듯 키보드를 뚱땅거리다가 답을 찾은 듯 고개를 퍼뜩 들었다.

 

 

“장하오 씨. 여기로 오신 지 10년 되셨죠?”

“네.”

“그동안 장하오 씨를 여기 있게 만들어준 분이에요.”

“네?”

“일 년에 한 번씩 당신을 생각한 유일한 사람이에요.”

 

 

그 사람이 대체 누군데요? 저는 그 사람을 모르는데요. 대체 누구길래 제 제사상을 차려요? 한국으로 가는 다리를 건너는 와중에도 장하오의 머릿속은 물음표로만 가득했다.

 

 

 

 

-

 

 

 

 

혼란스러운 건 혼란스러운 거고. 일단 밥부터 먹어야 하는 거야. 하오는 10년 만에 마주하게 된 한국 음식에 정신을 못 차렸다. 소곱창 너무 보고싶어쓰어…. 디저트로 버블티까지 흡입하고 나서야 이성을 되찾았다. 배가 부르자 머리가 차분해진다. 소곱창. 버블티. 그리고 버블티 옆에 노란색 포스트잇에 쓰여있는 [두리안] 글씨까지. 이건 모두 내가 좋아하는 것들이다. 그러니까 이 사람은 나를 잘 아는 게 분명했다. 아니면 내 취향을 이렇게 잘 알 리가 없으니. 마지막으로 액자 속 사진으로 시선이 향했을 때, 하오는 눈을 깜빡일 수 없었다. 시간이 멈췄다고 해도 지금보다 더 충격적이진 않을 거다. 저 사진은……서바이벌 프로그램에 나갔을 때 찍었던 프로필 사진이잖아. 그러면….

 

사진 옆엔 뚜껑이 살짝 열린 흰 상자가 놓여있었다. 그 틈으로 안을 훑어보던 하오가 눈물을 흘린 건 순식간이었다. 장하오. 이름 석자가 적힌 슬로건. 내 사진. 그리고 예쁘게 접혀진 편지들. 수신인은 모두 장하오니까 봐도 되겠지. 망자의 날 특권인지, 물체가 손에 잡혔다. 열장이 넘는 편지를 다 읽고 나서야 왜 이곳으로 오게 됐는지 알게 됐다. 고향인 중국이 아닌 한국에 오게 된 이유. 내가 모르는 사람이 내 제사상을 차리게 된 이유.

 

…팬이 있었구나. 지금까지 나를 기억해 주는 팬이 있었어.

한빈. 성한빈. 여러 번 이름을 곱씹었다.

 

 

“내일 올라가려고요.”

“벌써 가려고? 망자의 날은 다 쉰다며.”

“죄송해요. 일이 많아서요.”

 

 

너구나. 나를 기억해 준 유일한 내 팬이.

반가워, 성한빈.

 

 

“…이것도 다 치워야겠지. 하오 형이 먹으면 좋을 텐데.”

 

 

먹었어. 너무 맛있는 거야. 낙곱새는 식었는데도 존맛인 거야.

 

 

“매년 차리려면 이건 챙겨야겠다.”

 

 

그저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일지는 모르지만 혹시 모르니까. 매년 챙기다 보면 진짜로 형이 한 번쯤 나를 보러 와줄 수도 있으니까. 한빈은 여전히 액자 속에서 맑게 웃고 있는 하오의 사진을 집었다.

 

 

“어, 안녕?”

“……뭐야.”

“나 장하오.”

 

 

순간 사진이 선명해지더니 투명하던 하오의 영혼이 형체가 생겼다. 10년 만에 처음으로 제사상이 생긴 장하오를 축하해주기 위해 망자의 세상에서 준비한 선물이었다.

 

스무 살의 장하오와 스물아홉의 성한빈이 만났다.

 

 

 

 

 

 

03.

 

 

 

세상에는 말로 설명 안 되는 것들이 있다. 일단 인간 세상이 아닌 또 다른 세상이 존재한다는 게 진짜라는 것도 말도 안 됐으니까. 그래서 장하오와 성한빈은 이 상황을 빠르게 받아들였다. 오래 생각할 여유가 없긴 했다. 망자의 날은 사흘이었고 벌써 하루가 지났으니. 함께할 시간은 단 이틀이다. 처음으로 마주하는 팬. 처음으로 만난 내 최애. 서로가 너무 애틋했다.

 

이틀간 많은 일이 있었다. 하오의 영혼을 마주하자마자 냅다 자취방으로 돌아온 한빈은 가게 오픈도 미뤘다. 평소 바깥돌이면서 집돌이를 자처했다. 소곱창. 삼겹살. 마라탕. 하루에 세 번 꼬박꼬박 배달 음식만 시켜서 쓰레기만 쌓여갔다.

 

 

“…그럼 형은 이제 어떻게 돼요?”

“한빈이 나를 계속 기억해 주면 거기서 영원히 살지 않을까?”

“진짜요?”

“내년에도 밥 차려줄 수 있어? 그럼 또 얼굴 보러 올게.”

 

 

당연하죠. 먹고 싶은 거 다 말하고 가요. 구첩 밥상 차릴 거니까. 그거 다 먹으면 장하오 배 터져. 저승으로 못 가는 거야. 그럼 오히려 좋은 거 아니에요? 둘은 이제 실없는 농담도 주고받는 사이가 됐다. 주어진 시간은 이틀밖에 없었지만 그 시간 동안 그들이 나눈 대화는 10년을 넘나들었으니.

 

 

“형. 거기는 어때요?”

“여기랑 똑같아. 직업도 가질 수 있어.”

“아이돌도 있어요?”

“응. 어떻게 알았어?”

 

 

역시 한빈은 똑똑한 거야. 기획사도 엄청 많아. 그래서 여기 오자마자 캐스팅도 당했어. 현생에서 못다 한 꿈을 다시 이룰 건지, 말건지. 그럼 형은 거기서도 아이돌이에요? 아니. 안 한다고 했어. 왜요? 살았을 때 이루고 싶었던 꿈을 죽어서 이루는 건 아무 소용이 없다고 생각했어. 살아서도 인기 없었는데 여기라고 다를까 싶어서. 그게 무슨 말이에요? 형 팬이 버젓이 살아있는데. 그러게. 여기 있네.

 

 

“나는 형이 꿈을 포기 안 했으면 좋겠어요.”

“….”

“형 무대 하는 거 진짜 멋있거든요.”

 

 

 

 

 

 

04.

 

 

 

그날은 신기루와도 같았다. 매년 제사상을 차렸지만 하오를 다신 볼 수 없었다. 그래도 괜찮았다. 사흘의 추억은 시간이 지날수록 더 또렷해져서 그때의 기억으로 쭉 버틸 수 있었으니까. 구첩 밥상으로 차린다는 약속도 지켰다. 제 눈으로 하오를 볼 순 없지만 그가 올 거라는 믿음이 있었으니까. 매년 멋있는 옷을 입었으면 좋겠어서 포토샵으로 옷도 합성했다. 작년엔 구찌. 올해는 로에베.

 

 

“형. 올해는 새로운 가게에서 시켰는데 이번 낙곱새는 어때? 맛있어?”

“두리안도 큰맘 먹고 샀어. 근데 내년엔 못살 거 같아.”

“밀크티 당도는 괜찮아?”

 

 

혼잣말이 자꾸만 늘어갔다. 허공에 말이 흩어지는 게 가끔 쓸쓸했지만 멈추지 않았다. 속으로 생각하면 하오 형이 못 들을 수 있잖아.

 

“형. 올해는 새로운 가게에서 시켰는데 이번 낙곱새는 어때? 맛있어?”

작년보다 맛있는 거야. 내년에도 여기서 시켜줘.”

 

 

“두리안도 큰맘 먹고 샀어. 근데 내년엔 못살 거 같아.”

? 너무 맛있는 거야. 한 번만 더 사주면 안 될까? 아껴먹을게.”

 

 

“밀크티 당도는 괜찮아?”

쪼오금 달아. 근데 얼음 녹으면 먹으면 돼.”

 

 

그 믿음은 헛되지 않았다. 하오도 매년 약속을 지켰다. 망자의 날이 시작과 끝을 한빈 곁에서 보냈다. 매년 바뀌어있는 옷을 보며 신기해하고 배 터지게 맛있는 거 먹고. 또 한빈의 말엔 꼬박꼬박 대답도 했다.

 

 

“…형. 미안해.”

왜 미안해? 한빈은 미안해하면 안 돼. 그건 내가 해야 하는 말이잖아.”

“올해는 음식 못 차릴 거 같아.”

괜찮아.”

 

 

말하지 않아도 이미 하오도 알고 있었다. 한빈에게 남아있는 시간이 얼마 없다는 것을. 그도 그럴 게 벌써 한빈의 나이는 칠순이 훌쩍 넘었다. 백 세 시대라지만 모두가 그런 건 아니지. 한빈은 지난달부터 병원에 입원해서 하루하루를 겨우 버텼고 이젠 그날도 이제 얼마 남지 않았다. 아마 한빈은 내 제사상을 못 차린다는 게 슬프겠지. 한빈의 가족도 그럴 테고. 근데 난 안 그래.

 

 

“한빈. 그거 알아? 현생에서 널 생각해 주는 사람이 존재하면 나도 소멸하지 않는대.”

 

 

“죽은 자의 세상에서 특별한 케이스여서 우릴 하나의 공동체로 생각해 주겠대. 신기하지?”

 

“그러니까 네가 죽어도 나를 볼 수 있어. 내가 있는 여기서.”

 

 

“이건 네가 날 사랑해 줘서 가능한 거야.”

 

 

넌 듣지 못했겠지만 너에게 매년 해주던 말이 있어. 나 데뷔했다? 여기도 똑같은 오디션 서바이벌 프로그램이 있더라고. 이번엔 몇 등 했는지 알아? 1등 했어. 네가 어울린다고 했던 무대 위에서 요즘은 매일 같이 시간을 보내. 오디션 때 불렀던 노래도, 데뷔곡도 너한테 다 불러줬는데. 혹시 들렸어? 꿈에서라도 환청으로 들었으면 좋았을 텐데.

 

못 들었어도 괜찮아. 내가 다시 불러줄게. 오디션 때는 뭘 불렀는지. 어떤 노래로 화제가 됐는지. 내가 데뷔한 그룹의 노래는 어떤 건지. 솔로곡도 있다? 안 믿기지. 사실 나도 그래. 아직도 안 믿겨. 살아있을 땐 그냥 연습생이었던 내가 여기서는 연예인이라는 게.

 

근데 한빈아. 네가 내 곁에 있으면 믿어질 거 같아. 내가 다시 노래할 수 있도록, 무대를 설 수 있도록 해준 사람이 너니까. 다시 한번 말할게. 내 팬이 되어줘서, 내 제사상을 차려줘서 고마워.

 

내가 존경했던 선배님들이랑 요즘엔 밥도 먹는다? 어제는 누구랑 같이 술 마셨는지 알아? 놀라지 마. 모차르트 선배님이셔. 놀랍지? 솔직히 만날 거라곤 꿈도 못 꿨는데 현실에서 기억해 주는 사람이 아주 많으신 분이니까 여기서도 정정하시더라고. 죽은 자의 세상의 연예계는 현실 세계의 연장선인 거 같아. 거기서 팬이 많았던 가수는 여기서도 똑같아.

 

반대의 경우도 같아. 그래서 사람들이 날 신기해해. 왜 현실에선 팬이 하나도 없었냬. 그럴 때마다 당당하게 아니라고 한다? 네가 있어서 자신감이 다시 생겼어. 날 좋아해 주는 팬이 있다고. 그래서 내가 서바이벌도 다시 도전했다고 말하고 다녀. 아마 네가 여기 오면 동네방네 자랑할 거야. 성한빈은 내 1호 팬이라고. 그러니까 아무리 네가 좋아하던 선배님들이 가득해도 나만 봐야 해. 알았지? 그렇게 될 거야. 내가 소문 다 냈어. 못 물어.

 

한빈이가 지금 몇 살이더라. 칠십이 좀 넘었나? 사실 시간이 점점 지날수록 호칭에 대해서도 고민해 봤어. 일단 태어난 연도로 따지면 내가 형은 맞지만, 내 시간은 멈춰있잖아. 난 네가 처음 알았던 스무 살 장하오 그대로라서 따지고 보면 너한테 할아버지라고 불러야 하는 거 알지? 근데 싫어. 나 원래 되게 예의 중요시하는 사람인데. 한빈이는 예외야.

 

날 처음 알았을 때에 넌 열아홉이니까. 내 시간이 멈춰져 있으니까, 너도 그때로 멈춰져 있는 거야. 알았지? 그러니까 내가 할아버지 성한빈한테 한빈아 해도 버릇없다고 하면 안 돼. 내가 형이야.

 

너랑 하고 싶은 게 아주 많아. 매일 하나씩만 해도 10년은 거뜬할 거 같아. 먹고 싶은 것도 많아. 예전에 네가 자주 사주던 티에티에 낙곱새 가게 기억해? 거기 사장님이 5년 전에 이곳에 오셨어. 똑같은 이름으로 가게 차려서 한 번에 알아본 거 있지. 사장님 손맛은 여전하시더라. 한빈이도 여기가 제일 맛있다고 했잖아. 다 들었어. 여기 오면 매일 매일 먹으러 다니자. 곱창구이도 같이 팔아. 완전 천국인 곳이야!

 

내가 말을 너무 많이 했나 봐. 벌써 시간이 이렇게 됐네. 마중 나갈 준비를 해야 할 거 같아. 한빈아, 수고 많았어. 곧 만나.

 

 

 

영화 <코코> 모티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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