늘빈웹진: cinéclub

체호프의 S

돈삼

 

 

 

 

 

삶과 극의 경계는 어디에 있나. 죽기 직전 주마등과 필름의 영사를 구분 짓는 건 무엇의 역할인가. 인생의 궤적과 장면의 나열은 어디서 갈라서는가. 이름과 제목은 그것들을 어떤 방식으로 명명하는가.

 

장하오의 삶에 오프닝 시퀀스가 있다면 그것은 분명 지난 몇 주 사붓한 움직임에도 지겹게 삐걱대던 침대 프레임에 어설피 짜 맞춰진 매트리스 위, 익숙한 손길로 알람을 끄는 잠결 어린 얼굴을 클로즈업하며 시작될 것이다.

 

 

 

 

 

 

 

S#8748

 

눈을 떴다. 시각보다 촉각이 먼저 돌아왔다. 이불이 잔물결처럼 달라붙어 온다. 마찰을 아득바득 벗겨내고 팔을 휘적여 알람을 껐다. 평소처럼 귀가 찢어질 듯한 소리가 일순간에 사라졌다. 아침에 빠릿하게 눈 뜨는 법 없는 대학생은 귀가 멍멍할 만큼 알람 소리를 키워두지 않으면 타야 하는 버스를 놓치기 일쑤였다. 장하오가 무거운 눈꺼풀 위로 팔을 얹고 신음했다.

 

주말인데 알람이 왜 울리는 거야...“

 

손끝에 성질 담아 화면을 두들기자 시간이 반짝였다. 오전 09:00. 단잠 자기도 아까운 주말에 기상 알람 따위는 설정한 적 없었다. 그러니 이건 아마 저를 부르는지 아닌지도 구분 못 하는 스마트폰 인공지능 비서의 실수거나, 어제 제 스마트폰을 가져가 토독토독대던 이의 장난이겠지. 희뿌연 시야로 이불자락 부여잡고 툴툴대봤자 잠은 이미 멀리 달아나서 그가 할 수 있는 건 한숨 푹 쉬며 자리 털고 일어나는 것뿐이다. 장하오는 이불을 벽 쪽으로 제치고 다리를 침대 아래로 뻗었다. 침대 방향으로 앞코 들이민 슬리퍼를 발끝 감각으로 돌려 신었다. 빽빽한 머리숱이 홀씨 가득한 민들레처럼 넘실거린다.

 

화장실로 비척비척 걸어온 장하오가 대형마트에서 5+1로 저렴하게 산 핑크색 미세모 칫솔에 새하얀 치약을 쭉 짜 입으로 찔러넣었다. 촌스럽게 선명한 초록색 디자인의 튜브가 제자리로 돌아간다. 성의 없이 왕복하는 손목과 채 다 뜨지 못한 눈의 남자는 거울 속에 눈길 한 번 주지 않는다. 장하오가 거울에 비친 자신에게 눈을 맞추기까진 아직 몇 단계 더 남았다. 그가 거품을 뱉어내고 입을 헹군다. 미지근한 물로 얼굴을 꼼꼼히 닦는다. 수건으로 물기를 닦아내고 나서야 총명한 기운 도는 새까만 눈동자가 거울과 마주한다. 장하오는 비죽비죽 솜털처럼 선 머리카락을 손빗질로 정리하고 화장실에서 퇴장한다.

 

허한 빈속 채울까 싶어 냉장고를 열었더니 생각보다 뭐가 많았다. 냉장고 선반엔 자연방사 유정란, 유지방 100% 버터, 유기농 샐러드 박스, 무항생제 한돈 항정살이 상품 매대처럼 진열되어 있었다. 보나 마나 또 성한빈의 짓이다. 성한빈은 종종 장하오의 집에 몰래 들어와 이런 걸 놓고 가곤 했다. 피차 같이 자취하는 살림이면서 냉장고에 채워 넣고 가는 내용물은 자취생 지갑으론 하나 사기도 부담스러운 것들 뿐이라 장하오는 그가 어쩌면 부잣집 아들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처음 몇 번은 강경하게 거절해봤지만 도통 말을 듣지 않았다. 그래서 말리다 지쳐 도어락 번호를 몰래 바꿨더니 학교에서 마주칠 때마다 이것저것 먹이려고 해서 바꾼 번호를 알려줄 수밖에 없었다.

장하오가 프라이팬을 꺼내고 가스레인지를 켠다. 마트에서 두 병 묶어 싸게 산 올리브오일을 두르고 달걀을 두 알 깼다. . 치이익... 실수로 흘린 껍질 조각이 팬에서 튀어 올라 눈가에 쏘아졌다. 이런 일은 흔치 않은데 오늘은 아침부터 예사롭지 않은 일의 연속이다. 장하오는 눈썹 한 번 움찔하곤 눈가를 대수롭지 않게 털어냈다. 일단 간단하게 아침을 먹고, 나가서 걷고, 좋아하는 카페에 가서 밀크티도 한 잔 마시자. 종강은 진작에 했고, 준비하던 공모전도 거의 마무리했으니 일찍 일어난 김에 하루 빽빽하게 쓴다고 생각하면 예기치 못했던 불한당 같은 알람도 너그러이 의식의 저편으로 보내줄 수 있었다. 장하오가 주방서랍을 열어 스테인리스 뒤집개를 꺼내 넓적하게 퍼진 달걀의 끄트머리를 살살 긁어 뒤집었다. 샐러드가 담긴 플라스틱 용기 뚜껑을 열고 뒤집개 위에 프라이를 얹어 조심스레 그 위로 운반하던 순간,

 

쾅쾅쾅

 

철퍽

 

바닥에 떨어진 프라이는 깨진 도자기처럼 파편으로 비산했다. 불운한 사고에도 집을 울리는 소리는 멈추지 않았다. 쾅쾅쾅 쿵 쾅쾅 쾅 쿵 쿵... 장하오는 입김을 불어 앞머리를 흩트린다.

 

오늘 정말 이상하네에.”

 

새카만 눈동자가 소리의 근원지를 찾기 위해 움직인다. 정체불명의 소음은 벽 너머 옆집인 듯하다. 주말 아침부터 예고 없이 공사를 해? 이런 무례한 이웃 같으니라고. 콧바람으로 한숨을 대신한 장하오는 키친타올을 끊어 바닥에 떨어진 흰자와 노른자 조각을 집었다. 기름기 남지 않도록 꼼꼼하게 닦은 뒤 조각은 싱크대로, 기름 먹은 키친타올은 휴지통에 털어냈다. 프라이를 두 개 해서 다행이다. 팬 위에서 조금 식어가던 나머지 프라이를 샐러드 위로 올리고 젓가락을 꺼냈다. 자리에 앉으려 의자를 빼고 돌연 멀거니 선 장하오가 소리 없이 입 벌리며 침대를 향해 몸을 돌렸다.

 

! 드폰을 안 가져와쓰어.”

 

흰색 스마트폰이 베개 옆에 엎어져 있다. 장하오가 손을 뻗어 그것을 집어 들었다... 이상하다. 손에 감기는 감촉이 낯설다. 비몽사몽 알람 끌 땐 몰랐는데 지금은 처음 만져보는 생소한 물건처럼 느껴졌다. 핸드폰을 뒤집어 맨정신에 화면을 보고서야 장하오는 오늘 아침 그의 단잠을 폭격한 알람이 누구의 소행인지 알게 된다.

 

성한비인...”

 

장하오의 것과 똑같은 모델인 성한빈의 스마트폰. 그의 것이라면 분명 그를 반겼을 잠금화면, 새벽까지 중도에서 과제 할 때 찍었던 흩뿌려진 벚꽃잎 사이 두 사람의 그림자 사진은 온데간데없고 새파란 기본 화면이 장하오의 황당한 얼굴을 파르랗게 물들였다. 어제 제 핸드폰을 가져가 사진을 찍는 등 이것저것 해보며 장난치더니 아무래도 정신없이 자리를 정리할 때 바꿔 들고 간 모양이다. 장하오는 감기는 눈에 허벅지 찔러가며 영상 편집하고 집에 온 터라 샤워 후 침대에 뻗어 뜬금없는 알람에 눈뜨기 전까지 핸드폰을 들여다보지 않아서 몰랐다. 어젯밤 성한빈이 알아차렸다 해도 장하오의 핸드폰 잠금을 풀 수 없으니 연락도 하지 못했을 거고. 물론 그건 지금 장하오도 마찬가지다. 핸드폰이 잠겨 있으니 어쩌나. 찾아갔다가 엇갈리면 낭패니 일단 집에서 기다려야하겠지. 제 것이 아닌 핸드폰을 벗 삼아 눈앞에 두고 달걀 프라이 곁들인 샐러드 한 그릇을 다 먹어갈 때쯤 옆집에서 넘어오는 둔탁한 공사소음 사이로 기다리던 음성이 장하오를 불렀다.

 

장하오! 일어났어?”

 

문을 쿵쿵쿵 두드리는 소리가 뒤이어 들렸다. 장하오는 순식간에 문 앞으로 뛰쳐나가 문고리를 밀어 문을 열었다. 활짝 웃는 얼굴이 틈새를 비집고 드러난다. 서늘한 복도의 공기를 등지고 눈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활짝 웃고 있는 그 낯에 순간이 영원처럼 길어진다. 모든 소리가 멀어지고 시야엔 미소만 가득하고...... 하염없이 늘어나는 찰나를 성한빈이 휙 잡아챘다.

 

들어가서 옷 입고 나와. 빨리.”

, ?”

빨리!”

 

태양처럼 웃던 얼굴이 쾅 닫힌 문 너머로 사라졌다. 칙칙한 문짝 위로 그 얼굴이 잔상처럼 둥실둥실. 장하오는 식탁 위를 치울 생각도 하지 못한 채 행거를 향해 달렸다. 한창 여름이라 저대로 두면 용기 표면에 묻은 소스 등의 찌꺼기가 상해 퀴퀴한 냄새를 풍길 걸 알면서도 성한빈의 재촉에 기꺼이 응한다. 급하게 꿰어입은 얇은 면바지와 반소매 셔츠. 지갑과 성한빈의 핸드폰만 챙겨 한 손에 가볍게 잡고 다른 손으로 신발을 꺼냈다. 성한빈이 지난 생일에 사주었던 고가의 스니커즈가 현관에 안착한다. 여기저기 자랑하고 싶을 만큼 좋아서 매일 신을 수도, 닳는 게 아까워 마냥 보관하기만 할 수도 없었던 선물. 현관에 내릴 때마다 수천 번 고민하게 만들었던 신발이 이번만은 쉬이 꺼내졌다. 오늘은 이거라는 느낌이 왔다. 장하오는 혹시라도 뒤축 구겨질세라 조심스레 손가락으로 고정한 뒤 발꿈치를 욱여넣었다.

 

 

 

 

 

 

 

S#7891

 

장하오는 고작 1년 다니고 휴학한 학교로 돌아온 게 이렇게 반가울 줄 몰랐다. 캠퍼스에 덩그러니 서서 부모님의 사업으로 인해 갑자기 한국으로 넘어오게 됐던 18세 고등학생 시절부터 상위권 대학에 가기 위해 재수했던 20, 마침내 대학생이 되었던 21살의 기억을 반추하며 감상에 젖었다. 1학년 전공 수업을 들었던 건물의 정문을 지나며 이제 저보다 어린 학생이 한참 많아졌다는 걸 깨닫는다. 익숙한 듯 낯선 강의실 문을 열고 들어가자 낯익은 얼굴들이 다가와 아는 체했다.

 

안녕. 네가 장하오구나.”

 

가지런한 검은 머리카락. 반짝이는 눈동자. 보기 좋게 접히는 눈과 입술. 볼 근처 길쭉한 보조개. 곧은 자세, 부드러운 목소리, 선명한 눈빛. 처음 보는 인물. 장하오는 세상이 개변되는 것을 느낀다. 그 애를 중심으로 모든 것이 변한다. 스물셋이나 돼서 그 사람의 속 알맹이도 모르고 속절없이 무너졌다.

 

얘기 많이 들었어.”

 

무슨 얘기? 내가 네게 좋은 인상으로 남을만한 이야기? 혹은 나쁜 선입견을 심어줄 못난 이야기? 장하오는 새내기 시절 자신을 다시 끄집어낸다. 그리 모나지 않게 살았던 거 같은데. 제법 살갑게 굴어보고 매사 열심히 했다. 그렇지만 왜 이리 겁이 날까. 아니 땐 굴뚝에도 연기는 난다. 스스로 불 지핀 적 없어도 남들이 제 굴뚝에 불씨 던져놓고 가면 활활 탈 수도 있는 거라서, 장하오는 실체 없는 걱정에 조금 속이 탔다.

 

 

 

 

 

 

 

S#8748

 

성한빈은 문 옆의 벽에 기대어 장하오를 기다리고 있었다. 조금 얼떨떨한 기색의 장하오를 위아래로 훑은 그가 팔목을 잡아끌었다. 성한빈의 손길에 몸을 맡기고 발을 내디딘 장하오는 흘깃 옆집을 본다. 시멘트를 담은 흰 플라스틱 통 여러 개와 그것을 위한 철제 도구, 용도를 알 수 없는 와이어 묶음들. 공사 현장이라면 발에 채도록 흔한 부스러기들. 그 가운데 아무 일 없는 듯 굳게 닫힌 문. 건물을 울리는 쿵쿵 소리는 여전하고 주변은 잔해로 지저분하다. 무엇을 짓는 것보다 무너뜨리는 데에 가까운 소음. 마치 단 한 번도 열린 적 없던 것처럼 닫혀 있는 깨끗한 문짝이 기묘한 위화감으로 장하오의 발목을 붙잡지만...

 

장하오.”

 

팔목을 감은 손이 그를 재촉하듯 당겼다. 장하오는 조종간을 빼앗긴 콕핏처럼 재빨리 고개를 돌린다. 성한빈이 반짝이는 눈으로 그를 보고 있다. 손끝이 부드럽게 팔목을 더욱 옥죈다. 장하오는 그것이 강압이라기보다 부탁처럼 느껴져서 이끄는 대로 다시 발을 옮겼다. 두 사람은 좁고 가파른 계단을 익숙하고 빠르게 내려갔다. 그리고 장하오는 예기치 못한 발견에 눈을 조금 크게 뜬다. 평소처럼 웃고 있는 성한빈의 목덜미가 땀으로 흥건했다. 건물 출입구를 지나 바로 앞 길바닥에서 멈춘 성한빈이 여전히 장하오의 손을 잡고 말했다.

 

여기 잠깐만 있어. 차 가져올게. 금방 올 거야.”

.”

 

두 사람은 이곳에서 자주 차에 타고 내렸다. 성한빈의 차는 매번 여기에 주차되었다. 왜 평소처럼 여기에 차를 두지 않고. 성한빈은 건물 옆 골목으로 사라졌다. 지체할 수 없다는 듯이 빠른 걸음. 잔뜩 경직된 어깨와 등. 장하오는 의문을 삼키고 일단 여기 서서 그를 기다리기로 했다. 그리고 어떤 사건은 인지보다 빠르게 전개된다. 장하오가 방금 전까지 성한빈이 서 있던 자리에 무언가 떨어진다는 걸 알아차린 건 그것이 이미 바닥에 충돌한 시점과 일치했다.

 

!

 

떨어진 것의 단말마가 지나치게 커서 그게 무엇인지 단번에 알 수 없었다. 유리라면 챙그랑, 했을 것이고 액체라면 철퍽, 했을 텐데. 그 자리로부터 퍼진 소리는 아주 높은 곳에서 꽤 무게가 있는 물건이 추락한 굉음과 같았다. 다행스러운 점이 두 가지 있다면, 하나는 그 파편이 아침의 달걀껍질처럼 장하오의 얼굴로 튀어 오르지 않았다는 점이고 또 다른 하나는 거기 있던 성한빈이 조금 전 자리를 떠났기에 두개골 골절부터 이어지는 연쇄적 피해로 인해 즉사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장하오는 등골을 타고 오르는 소름을 애써 억누르며 추락 지점에 가까이 다가갔다. 주변엔 높은 건물은 물론 삐죽 솟은 구조물조차 없었다. 정말로 하늘에서 뚝 떨어진 것이다. 별똥별처럼.

정체불명의 낙하물은 조명등이었다. 아주 큰 스튜디오에서 쓸 것 같은 대야만 한 조명. 전면부는 볼품없이 깨졌고 추락의 충격에 심하게 찌그러졌으며 어딘가에 연결되어 있었을 연결부는 울퉁불퉁한 단면으로 잘려져 있었다. 테두리엔 흰 스티커가 붙어 있었는데 손바닥만 한 크기라 굳이 몸을 내리지 않아도 꽤 잘 보였다. 다만 떨어지며 손상된 건지 세월에 닳았는지 거기 적힌 단어를 온전히 알아볼 수 없었다.

 

Vea

 

조명에 붙은 스티커라면 보통 그것은 조명의 쓰임새나 모델, 혹은 조명이 있어야 할 위치를 표시하기 위해서 부착되었을 테다. Ve는 뭐지? Vea가 이어진 한 단어인가? 장하오는 그 빈 자리에 알파벳 a부터 집어넣어 보았으나 d를 대입하는 중 성한빈의 차가 다가와 생각을 그만 멈춰야 했다. 기이한 기분을 뒤로하고 조수석으로 다가가 자연스럽게 문을 열 때였다.

 

장하오 씨, 어디 가?”

 

몇 주 만에 보는 집주인이다. 지난번 수도 관련해서 볼 게 있다며 업자와 방문했을 때 이후로 처음이었다. 장하오는 예의 있는 미소로 꾸벅 인사했다. 집주인도 고개를 끄덕이며 인사를 받더니 재차 물었다.

 

어디 놀러 가나 봐?”

 

이렇게 입주자에게 관심이 많은 인물이었던가?

 

, 네에. 친구가 와서요.”

친구? 지난번에 그 잘생긴 친구?”

하하하 맞아요, 그 친구.”

, 어디, 멀리 가나? 평소랑 옷 입은 게 다르네.”

 

몇 달 전부터 과제에 시험에 공모전 준비까지 몰아치며 바쁜 날을 보내느라 편하게 입고 다녔으니 어쨌든 맞는 말이라 장하오는 평소에 얼마나 보셨다고, 하는 말이 혀끝까지 넘어온 걸 애써 밀어 넣었다. 차 문 열리는 소리가 들렸다. 성한빈이 차에서 내려 장하오와 집주인을 번갈아 봤다. 그리곤 그린 듯이 입술을 끌어올리며 인사했다.

 

안녕하세요. 지난번에 뵀었죠.”

 

집주인이 마주 웃는 얼굴로 성한빈에게 답한다.

 

어우, 반가워라~ 그때 보고 잘생겨서 딱 기억했지.”

감사합니다.”

그래서 오늘은 어디 가요?“

 

(잠시 정적)

 

잠깐 바람 쐬고 오려구요. 저희 둘이 요새 바빴는데 이제 좀 쉴 틈이 났거든요.”

 

(또 다시 정적)

 

그래... 빨리빨리 다녀. 요즘 밤에 흉흉한 일 많아서 문제야, 문제.”

 

장하오의 어깨를 툭툭 두들긴 집주인이 손을 휘휘 저으며 건물 안으로 들어갔다. 뒤돌자 성한빈이 건물 입구를 빤히 보고 있었다. 그 안으로 집주인이 완전히 사라진 걸 확인하듯이 가만히. 아주 짧은 시간 만에 그가 다시 웃으며 장하오에게 말했다.

 

. 드라이브 가자.”

 

성한빈은 자주 웃었다. 장하오는 성한빈의 웃는 얼굴에 대해 빠삭하게 알고 있다. 오늘은 아침부터 여러 가지 일이 많아서 그런가. 모든 게 낯설다. 조수석 문짝의 손잡이를 잡아당기며, 장하오는 남은 하루가 아주 이상하리라는 예감이 들었다.

 

 

 

 

 

 

 

S#79??

 

속으로 하품을 몇 번이나 삼켜야 했던 수업이 끝나고 강의실을 나설 때 어깨를 붙든 것은 성한빈이었다. 갑자기 점심을 먹자고 하더니 기어코 장하오를 학교 앞 찌갯집의 삐그덕거리는 의자에 앉혔다. 제 앞에 가지런히 놓인 수저를 한 번, 맞은편의 성한빈을 한 번 본 장하오는 한숨을 푹 내쉬다가 몰래 살짝 웃었다. 성한빈은 장하오와 처음 만난 이후로 매번 이런 식이었다. 과제 일정을 짜거나 다른 동기들과 약속을 잡을 땐 며칠 전부터 때와 장소를 정해 스마트폰 캘린더에 저장해둔다더니 장하오만 봤다 하면 갑자기 밥을 먹자거나 카페를 가자거나 했다.

 

찌개백반을 배부르게 해치우고선 지도 앱을 이리저리 뒤적이며 카페를 찾던 성한빈이 어딘가의 사진을 내밀었다. 장하오가 고개를 끄덕이자 재빨리 일어나 계산하고 가게 주인에게 인사하는 것까지 잊지 않았다. 성한빈은 어느새 저 멀리 걸어가 그에게 손짓하고 있었다. 장하오는 제 몫을 계산하기 위해 꺼냈던 카드를 도로 지갑에 넣으며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 고양이.”

 

길가에 앉아 털을 고르던 고양이가 성한빈을 보고 다가왔다. 장하오는 그걸 보기만 했다. 성한빈이 익숙한 듯 손을 뻗는다.

 

너 정말 즉흥적이네.”

그런가?”

 

장하오는 가만히 서서 쭈그려 앉아 골골대는 고양이의 턱을 긁어주는 성한빈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고개를 꺾어 올려 눈을 맞춘 성한빈이 씨익 웃고선 다시 손끝의 미물에게로 주의를 돌렸다. 성한빈의 그늘에서 온몸을 내맡긴 털짐승이 여전히 요상한 소리를 내며 꼬리를 이리저리 흔들었다. 장하오는 그 한가로운 풍경을 보며 꽤 자주 드러나는 성한빈의 즉흥성에 대해 생각했다.

 

*

 

1년 휴학하고 대학생 노릇하자니 시험 준비하는 것도 놀랍도록 낯설어서 지나치게 피곤해졌다. 안경 벗고 침침한 눈을 마사지하고 있는 장하오를 옆자리의 성한빈이 툭툭 친다.

 

나갈래?”

 

패드니 프린트니 한 바닥 빼곡히 들어찬 내용은 머리에 도통 녹아들지 않고, 오래 앉아있었더니 허리도 뻐근하다. 끝낸 건 왼쪽, 끝내지 못한 건 오른쪽. 아직도 왼쪽에 비해 한참이나 우세한 오른쪽 두께를 보면 쉴 시간도 사치라는 걸 알아서 장하오가 고개를 젓자 성한빈이 과장된 울상을 지으며 그를 잡아끌었다. 장하오는 결국 또 그 손길에 마지못한 듯 일어나 열람실을 나선다.

 

여기 앞에 다 벚꽃나무인 거 알아?”

아니?”

그럴 줄 알았다.”

 

손가락과 손가락이 얽혔다. 성한빈은 매번 장하오의 손이 손잡이라도 되는 것처럼 덥석덥석 잡았다. 도서관 1층 복도를 지나 성한빈이 유리문을 열어젖힌다. 때마침 바람이 불더니 새카만 하늘에 꽃잎이 흩날렸다. 장하오는 얼굴에 부딪혀오는 실바람을 느끼며 숨을 들이마셨다. 기분 좋은 밤공기의 향취 사이로 성한빈의 향수가 실낱처럼 섞여 들어왔다. 어느 나무 앞에 선 성한빈이 핸드폰을 꺼내 들었다. 도서관으로 이어지는 길에 심긴 가로등이 두 사람을 피해 바닥으로 쏟아졌다. 딱 붙어선 두 인영이 빛 속에 잠긴 하나의 형체처럼 보였다.

 

오늘은 다 끝낼 때까지 딴 거 안 한다고 했잖아.”

그래도 나와서 바람 쐬니까 좋지?”

 

그림자 테두리를 더듬던 장하오의 까만 눈이 성한빈을 향한다. 너의 즉흥은 내 숨 돌릴 틈이 되어서 도무지 아니라고 말할 수 없다. 심장이 기분 좋은 소리를 내며 뛰었다. 그도 그럴 게 네 얼굴에 서린 파란 밤그늘 노란 등불빛, 세상을 메운 분홍빛마저도 전부 너와 나의 이 순간을 위한 연출 같잖아...

 

 

 

 

 

 

 

S#8748

 

어제 핸드폰 바꿔 들고 갔더라, 한빈.”

“...”

나 오늘 이거 때문에 엄청 일찍 일어나쓰어.”

 

장하오가 성한빈에게 그의 핸드폰을 내밀었다. 차는 신호를 받고 멈춰 있다. 성한빈은 제 앞으로 내밀어진 본인의 물건을 물끄러미 바라만 보다가 입을 열었다.

 

맞아. 그랬더라고... 여기, 네 거.”

 

주머니를 뒤적인 성한빈이 똑같이 생긴 핸드폰을 장하오에게 내밀며 제 것을 가져갔다. 장하오가 자신의 핸드폰을 다시 돌려받기 무섭게 화면이 켜졌다.

 

[영화영상 김종권 교수님 : 장하오 학생. 문자 보면 콜백 바람.]

 

?”

 

차가 다시 출발한다. 장하오는 화면 가득 켜켜이 쌓인 연락을 확인한다.

 

[영화영상 20 한영석 : 오늘 약속 있냐]

[妈妈 : 什麼時候回家?]

[영화영상 22 여인주 : 선배 이거 ㄱㅊ은지 좀 봐봐]

[영화영상 20 남지수 : 너 이거 알아?]

[영화영상 20 유나은 : 장하오 얼굴 좀 보자]

 

뭐야?”

 

당혹스러운 목소리가 저도 모르게 튀어 나갔다. 휴일에, 그것도 종강 이후 방학에 이렇게 열렬한 연락들이라니. 평소 연락도 많이 없던 동기와 한동안 연락하기 어렵던 어머니에 지도교수까지 무슨 일인지. 성한빈의 흘긋대는 시선이 느껴졌다. 장하오는 부러 어깨를 으쓱해보이곤 가장 먼저 확인한 연락부터 답한다.

 

, 교수님. 장하오입니다.“

- , 장하오 학생.

문자 남겨주신 거 방금 확인했습니다. 무슨 일이세요?”

- 어어. 예성그룹 공모전... 그거 얼마나 됐어요?

“90프로 된 것 같습니다.”

- 쓰읍... 이거 참.

 

망설이는 목소리를 듣고 있자니 목이 탔다. 공모전에 들인 시간, 노력, 성한빈과의 다툼 같은 게 주마등처럼 스쳤다. 그 잠깐 사이 두 사람이 탄 차는 꽉 막힌 주말의 도로에 갇혀 속도를 잃었고, 스피커 너머 교수는 목에 뭐라도 틀어막힌 듯 이런저런 추임새 넣으며 할 말을 주저한다.

 

- 일단 학교에 좀 와야 할 거 같은데.

? 학교요?”

 

장하오가 놀란 듯 되묻자 답변은 기대하지 않은 이에게서 왔다.

 

학교 오래?”

 

성한빈은 장하오 쪽을 보지도 않고 물었다. 과 동기들이 입 모아 칭찬하는 모범운전자답게 눈은 전방을 주시하고 손은 핸들을 꾹 쥐고선 재차 묻는다.

 

? 뭐 잘못됐대?”

- 이거 문제가 좀 있어서 와서 듣는 게 좋겠어.

 

두 목소리가 겹쳤다. 공모전에 문제가 생겼다는 교수의 말보다 최소 볼륨으로 줄여둔 스피커에서 나오는 소리를 듣지도 못했을 텐데 교수의 용건을 정확히 예측한 성한빈의 물음이 장하오를 더 놀라게 했다. 의문과 의심이 시야를 밝게 한다. 공모전에 문제가 생겼다는 소식은 우선순위에서 한참이나 미끄러져 내려간다. 지난 몇 달 미친사람처럼 새벽이고 휴일이고 할 것 없이 매진했던 영상의 모든 것이 눈앞의 성한빈으로 인해 휘발됐다. 장하오의 눈에 성한빈은

 

 

 

 

 

 

 

S#8036

 

거짓말하는 게 다 보였다. 정확히 말하자면, 읽혔다.

 

[한빈 : 하오야 진짜 미안 나 갑자기 누나가 불러서 본가 가야 할 거 같아]

 

소리내 웃다가 테이블에 엎어져 들썩댔다. 참아지지 않는 웃음소리가 팔과 테이블 사이 한 뼘짜리 공간에 먹먹하게 울렸다. 제 생일에 성한빈이 뭔가 꾸미고 있다는 건 종강하기 전부터 알았다. 스쳐 가듯 몇 번이나 필요한 것, 가지고 싶은 것을 묻더니 카페 쇼케이스 앞에서 난데없이 케이크 취향을 조사하질 않나. 그 사이 성한빈의 생일에 케이크와 선물을 안겨줘도 무슨 생각에 빠진 건지 멍하기만 하고. 거기다 결정적으로 성한빈이 다른 동기나 선후배에게 자정 12시 땡, 하면 생일 축하해 보냈던 거 모르는 사람이 없다. 성한빈 얘기 귀에 못 박히게 하는 주변에서 그렇게 입에 올리는 에피소드인데 당연히. 그런데 장하오의 생일인 오늘 자정은 무려 십 분이나 조용했다. 동기 중 하나에게 연락이 온 뒤로는 물꼬라도 튼 것처럼 온갖 축하 연락이 우르르 몰려왔지만 성한빈만 거기 없었다. 그래놓고선 오늘 약속까지 무른다.

 

, 바보야. 이렇게 티가 나면 어또케에...”

 

탄식이 깊은 속에서부터 내뱉어진다. 명치께에서 무언가 절절 끓는 감각이 들었다. 장하오는 여전히 큭큭대는 웃음을 멈추지 못했다. 처음 너를 봤을 때부터 이렇게 될 걸 알았지. 남들이 속삭여주는 이야기의 도움 없이도, 나는 너를 안다. 내가 스스로 알아봤다. 단 하나의 별. 여름에 높게 뜬 섬광.

 

 

 

 

 

 

 

S#8748

 

교수가 몇 번이나 심각한 상황임을 주지시켰으나 끝내 공손한 말투로 교수의 전화를 끊어낸 장하오가 성한빈을 응시한다. 핸들을 잡은 손이 잔떨림조차 없이 부동이다. 장하오는 그 손으로부터 시선을 옮겼다. 팔에서 어깨로, 어깨에서 목으로, 목에서 귀 끝으로, 귀 끝에서 뺨으로, 뺨에서 눈으로.

 

무슨 일인지 말해.”

 

성한빈의 목울대가 한 번 울렁였다.

 

말만 해, 내가 들을게.”

 

성한빈의 손끝이 움찔했다.

 

자꾸만 알림으로 점멸하는 핸드폰 화면을 허벅지 위로 덮어버리고 저를 돌아보지 않는 성한빈만 가만히 바라본다. 어느새 관자놀이에서 흐른 땀방울이 턱선에 맺혀있다. 손을 뻗어 대신 훔쳐주어도 성한빈은 그를 보지 않는다. 사명이 있는 이처럼 오로지 앞만 보고 있다. 장하오는 세 번까지만 묻기로 했다.

 

내가 들을게 한빈아. 말해.”

말 못 해.”

 

세 번의 물음 끝에 답은 거절이다. 시트 헤드에 머리를 젖혀 기대고 한숨 쉬었다. 차창 밖 도로는 여전히 빼곡하다. 아까보단 많이 온 것 같지만 여전히 익숙한 길을 벗어나지 못했다. 생각해보면, 익숙하지 않은 길이 있었던가? 한국에 와서 장하오가 다닌 곳은 극히 한정적이다. 고등학교가 있던 동네. 대학이 있는 시내. 더 멀리 더 오래 떠나보려는 생각은 하지 않았다. 인생에 이동량이 정해져 있다면 중국에서 한국으로 온 것만으로도 다 채운 기분이었다. 대학에 진학한 뒤로는 근처에 강변공원도 있고 백화점도 있고 웬만한 의식주에 여가까지 다 해결되니 굳이 낯선 곳을 찾아갈 필요가 없었다. , 갑자, 이상...

 

장하오.”

 

성한빈이 나직하게 불러온다. 창밖으로 향해 있던 고개를 반대로 돌려 그를 바라봤다. 성한빈은 여전히 앞을 보고 있다.

 

도착하면. 내리면 얘기해줄게.”

 

잠시간의 유예를 대가로 답을 얻었다.

장하오는 잠시 생각한다. 장하오에게 이해와 공감은 별개의 개념이다. 성한빈과 의견이 일치하지 않았던 적은 많지만, 그를 이해하지 못한 적은 없었다. 성한빈에게 두 개념 중 무엇도 결부 짓지 못한 건 이번이 처음이다. 지금, 어딘지도 모르는 목적지를 향해 가고 있는 상황과 그곳에 도착한 뒤의 상황은 뭐가 다른 거지? 무엇이 달라서 그만큼의 시간과 공간의 간극을 기다려야 하는 거지? 도대체 무엇이 너를 초조하게 만드는 거지?

그리고 또다시, 어떤 사건은 인지보다 빠르게 일어난다. 맞은편에서 무언가 맹렬히 다가왔다. 조짐을 눈치챈 성한빈이 급하게 핸들을 꺾지만 눈 깜빡하는 새 그것도 이쪽을 향해 방향을 바꾼다. 장하오는 급격하게 흔들리는 차체에 갇혀 머리를 이리저리 부딪혔다. 성한빈은 핸들을 오른쪽으로 꺾은 모습 그대로 멈췄다. 세상이 뒤집힌다. 아니, 장하오가 세상을 거꾸로 본다. 유리창이 사탕처럼 부서지고 차 문짝은 알루미늄 캔처럼 구겨진다. 나일론 안전벨트는 용케 끊어지지 않은 채 장하오를 공중에 붙잡고 에어백은 시야를 온통 메꾼다. 정수리를 스치는 어마어마한 마찰의 잔열이 얼핏 서늘한 듯 했다.

 

한빈, 성한빈.”

 

“... 성한빈.”

 

한빈아......”

 

 

 

 

 

 

 

S#86??

 

장하오와 성한빈이 지난 학기들에 이어 학부생 신분으로써 마지막일 공모전까지 함께하게 된 것은 놀라운 일이 아니다. 남들은 이런저런 거 너무 붙어 하다 보면 자주 싸우고 다퉈서 갈라진다는데 장하오와 성한빈에게 그런 건 더 오래 함께하기 위한 장치에 불과했다. 부딪힐수록 서로가 보였다. 맞닿은 모서리가 쪼개질수록 딱 붙었다. 하지만 그게 더 이상 부딪힐 구석 없다는 건 아니라서 종종 이런 일이 있었다.

 

개연성이 없다고.”

개연성이 왜 없어? 이렇게 해야 재미가 있어.”

 

장하오가 맞받아치며 성한빈의 눈을 빤히 봤다. 이해하지 못하는 건 아니다. 성한빈의 의견에 동의할 수 없을 뿐이다. 파격적인 전개와 자극적인 사건은 시청자를 이야기로 흠뻑 젖게 하고 그러한 이입은 만족도로 직결되니까. 장하오는 공모전 입상을 위해 그 필요성을 주장하는 거다. 노트북과 패드, 온갖 스토리보드와 메모로 어질러진 책상에 마주 보고 앉은 두 사람이 언쟁을 시작하자 다른 팀원들은 자리를 비웠다. 표면에 물 맺힌 여러 잔의 음료 속에서 얼음이 녹아 움직이는 소리가 작게 들렸다.

 

재미?”

 

목이 조이는 듯한 목소리로 성한빈이 되물었다. 장하오는 눈치채지 못하고 눈썹을 찌푸리며 답했다.

 

"영상물의 목적이잖아. 즐거움, 흥미, 재미. 거기에 맞추지 않으면 작품이 아닌 시시한 영상일 뿐이지.”

 

프로젝트룸에 텁텁한 정적이 흐른다. 성한빈이 책상 위에 올려두었던 두 손을 들어 거기에 얼굴을 묻었다. 방벽이라도 되는 것처럼 그 뒤에 숨어서 무어라 중얼거리지만 들리지 않았다. 장하오는 잠자코 기다렸다. 이내 손가락 틈새로 나직한 목소리가 흘렀다.

 

재미는 모든 것을 정당화하는 데우스 엑스 마키나가 아니야...”

 

수많은 다툼 중에 한 번일 뿐인데

 

개연은 인물의 편이어야 해. 그 바깥에 있는 사람이 아니라.”

 

난 네가 그렇게 상처받은 듯 말하길 바랐던 게 아니다.

 

 

 

 

 

 

 

S#8748

 

혼잡한 응급실 구석에서 장하오가 눈을 뜬다. 온몸이 눈먼 주먹에 후드려 맞은 듯 아팠다. 뭉툭하고 날카로운 갖가지 통각이 조금 잦아들자 머릿속이 밝아졌다. 장하오는 첫 숨을 뱉듯 소리쳤다.

 

성한빈!”

 

침대 주변으로 커튼이 쳐져 있어 바깥의 소리는 웅성거리기만 하고 명확히 닿지 않았다. 장하오는 팔에 꽂힌 링거 바늘을 잠시 내려보다 팩이 매달린 폴대를 잡고 침대 아래로 다리를 내렸다. 하늘색 커튼을 걷어내고 폴대를 지지대 삼아 바닥에 누르듯 밀어내며 발걸음을 옮겼다. 팔도 다리도 한계 이상으로 욱신거리지만 그렇다고 주저앉을 수는 없다. 주변에 서 있던 간호사에게 다가가 물었다.

 

저기, 저랑 같이 온 사람은 어디 있어요? 이름은 성한빈이고, 스물다섯 살이고, ,”

잠시만요.”

 

경황 없이 주절대는 장하오를 흘긋 본 간호사가 상냥한 미소를 지으며 답하더니 멀어졌다. 그가 접수대의 다른 간호사에게 말을 전하고, 키보드 두들기는 소리가 영원할 것처럼 이어진다. 장하오는 초조함을 감출 수 없어 눈동자만 하염없이 굴려댔다. 폴대를 쥔 손에 땀이 뱄다. 모니터를 보던 이가 몇 마디 하자 장하오를 잠시 기다리게 했던 그가 다시 다가와 말했다.

 

지금 수술 중이세요. 조금 기다리시면 선생님이 오셔서 환자분 상태 체크하시고 주의하실 점 알려드릴 거예요. 누워계셨던 자리에서 쉬고 계세요.”

 

지극히 정제된 내용. 의문이 해소되지 않은 장하오는 그를 붙잡고 몇 마디 더 물으려 했지만 간호사는 예의 상냥한 미소를 짓고 금방 그를 부르는 다른 쪽으로 뛰어갔다. 장하오는 풍선을 놓친 아이처럼 망연히 바닥에 못 박혔다. 분주히 움직이는 의료진과 아픈 소리 내며 발버둥 치는 응급환자들, 저마다의 가족 친구 연인과 안부를 나누는 사람들. 그 사이 한 명의 장하오. 장노출로 촬영한 장면같이 세상은 장하오를 그저 거기 둔 돌멩이처럼 방치하고 저들끼리 연동한다. 모든 것이 그를 외면했다. 장하오는 턱끝까지 치달은 고독을 처음으로 깨닫고 발을 끌며 침대로 돌아갔다. 또 다른 간호사가 다가와 통증이 있는지 물었고 장하오는 희번득하게 뜬 눈으로 고개를 조금 끄덕였다. 폴대에 걸린 팩이 다른 것으로 교체되었다. 장하오는 다시 혼자가 되어 자맥질하듯 호흡했다. 집어삼킬 듯 다가오는 환영. 몸을 거세게 뒤흔들던 충격. 한 마디 비명 없이, 한 치의 망설임 없이 핸들을 꺾던 성한빈. 눈을 감으면 자꾸 보여서 부릅떴다. 눈꺼풀이 점점 자력을 잃었다. 의지를 배반한 몸이 서서히 늘어졌다.

 

 

 

 

 

 

 

!”

 

물속에서 건져진 듯 숨을 들이켰다. 악몽을 꾼 것 같다. 덜덜 떨리는 손목을 무언가가 따스하게 감쌌다. 습격이라도 당한 사냥감처럼 고개를 휙 돌렸다. 팔과 머리에 붕대를 둘둘 두르고 온 얼굴에 반창고를 덕지덕지 붙인 성한빈이 장하오의 침대 아래에 무릎 꿇고 있다. 무엇도 감기거나 붙어있지 않은 맨얼굴에도 불그죽죽한 생채기가 빈틈없이 자리를 차지했다. 옷감 바깥으로 보이는 모든 피부가 그랬다. 성한빈이 안도한 듯 눈가를 누그러뜨렸다가 손끝으로 손등을 쓸어주며 말했다.

 

깼으면 빨리 일어나. 나가야 해.”

 

장하오는 눈만 크게 뜨고 꿈쩍도 않았다. 성한빈이 손수 이불을 걷어주고 신발을 발치에 놓아줘도 그저 빤히 성한빈이 하는 양을 보고만 있다. 장하오가 굼뜨게 굴자 불안한 눈빛으로 주변을 살피는 성한빈의 머리에 홀린 듯 손을 뻗었다. 손끝에 귀 끝과 머리카락이 차례로 스친다. 별을 끌어내리는 것처럼 품으로 당겨 안았다. 뜨끈한 머리통에서 열기가 뻗쳤다. 정말로 별처럼, 타오르는 천체처럼.

 

, 뭐하... 빨리 신발 신어. 시간 없어!”

너 정말 거짓말 못해. 알아?”

 

밀어내지도 않으면서 말로만 재촉해. 장하오가 한숨 쉬듯 귓전에 불어넣은 그 말에 성한빈의 손은 힘을 잃는다. 머리꼭지까지 사람을 내몰아 예민하게 만들던 통증이 씻은 듯 사라지는 건 아니지만, 장면과 장면 사이 또는 행간의 여백에 숨겨진 것만은 점점 뚜렷해진다. 순간이 영원처럼 늘어진다. 이번엔 장하오가 흐름을 챘다.

 

지금 당장 가야 해?”

.”

같이?”

“...”

한빈, 대답해. 우리 같이 가?”

“... .”

그래.”

 

장하오는 성한빈에게서 몸을 떨어뜨리고 다리를 내려 신발에 발을 꿰었다. 깨끗한 병원 바닥과 달리 조금 전까지도 사고 현장에 있던 것처럼 엉망진창으로 망가진 신발. 긁히고 찢어지고, 피와 검댕으로 얼룩진. 장하오가 그리도 아꼈던 성한빈의 선물. 신발을 선물하면 받은 이가 그걸 신고 도망친다던데, 너 나를 도망자로 만들 거야? 물음표는 끝내 둥글려지지 못하고 꿀꺽 삼켜진다.

성한빈이 뒤돌아 커튼을 조금 젖혔다. 그러고 보니 응급실인 것 치고 영 조용했다. 성한빈이 걷어낸 커튼 너머로 병실 모습이 보였다. 언제 옮겨졌는지 모르겠지만, 아마도 4인용 병실 같았다. 다른 침상은 전부 텅 비어 있었고 성한빈이 그 사이로 걸어가 미닫이로 된 병실 문을 열었다. 주변을 살피듯 고개를 이리저리 돌리며 손은 뒤쪽의 장하오에게 뻗어 온다. 팔부터 손끝까지 한 치 오차 없이 올곧게 장하오를 향했다. 망설임 없이 손을 부여잡았다. 이끄는 힘을 따라 부드럽게 열린 문밖으로 뛰었다.

발을 구르고 또 굴렀다. 병원의 비상계단, 폐기물을 옮길 때 쓰는 것 같은 작고 녹슨 철문, 병원 앞 골목과 그 옆의 골목. 발이 닿는 곳마다 새로웠다. 매번 큰길로만 다녀버릇했다. ? 왜 그랬지? 어째서 작고 좁은 길은 없는 것처럼, 정해진 경로가 있는 것처럼...

 

우리, 허억, 어디, 까지 가?”

.”

 

얼기설기 엮인 손가락과 손바닥이 땀으로 미끈거렸다. 미끄러져 풀어질까 더 꽉 잡았다. 성한빈은 뒤도 돌아보지 않고 장하오를 잡아끈다. 거의 두 시간이 넘게 뛰다가 잠시 걷고 또다시 뛰고 걸었다. 이젠 온몸이 얼얼했다. 성한빈의 머리를 감은 붕대는 미약한 분홍빛으로 얼룩졌다. 시내를 한참 벗어나고 건물이 듬성듬성한 변두리를 넘어서 더 앞으로 나아갔다. 장하오는 매번 학교 건물에서 저 멀리 풍경화처럼 희끄무레하게 보이던 산을 처음으로 밟았다. 여름인 덕에 늦은 오후도 여전히 밝았으나 조만간 빠르게 어두워질 걸 알았다. 성한빈은 그런 것 괘념치 않는 듯 계속해서 흙을 밟고 발자국으로 경로를 알렸다. 좁고 울퉁불퉁한 등산로 비슷한 길을 따라 오르고 올랐다.

장하오는 그 등을 보다가 문득 오늘 하루의 개연성을 가늠해본다. 바뀐 핸드폰 알람으로 이르게 깬 아침, 눈가에 튀어 오른 달걀껍질, 바닥에 떨어뜨린 달걀프라이, 옆집의 공사소음, 아는 척하던 집주인, 하늘에서 떨어진 조명, 수많은 연락, 교통사고, 병원을 탈출해 두 다리로 뛰고 걸어 산까지 오르는 지금... 이렇게 형편없는 줄거리를 짜오는 팀원이 있다면 꼭 신랄하게 비판하리라. 그렇게 마음 먹는데 언젠가 성한빈이 했던 말이 한구석에서 연기처럼 자욱하게 피어올랐다. 개연은 인물의 편이라고 했다. 바깥의 사람이 아닌 그 속을 살아가는 인물의 편이어야 한다고. 그렇다면 오늘의 개연성은 오늘을 살아가는 장하오의 편인가 자문해본다.

 

하늘이 어둑해지고 길이 있는지 없는지 알 수도 없이 수풀과 어둠이 시야를 가렸다. 간간이 솟은 돌부리에 걸려 넘어질 뻔하거나 마구잡이로 뻗은 나뭇가지에 얼굴과 팔이 쓸렸다. 통증과 피로는 어느 지경에 이르자 마치 그러한 개념을 잃은 듯 느껴지지 않았다. 성한빈의 숨소리는 점점 크게 거칠어졌다. 앞장서던 등이 차츰차츰 낮아지더니 어떤 나무 아래로 쓰러지듯 앉았다.

장하오는 경련하는 제 다리를 무시하며 성한빈을 살폈다. 어둠에 익은 눈으로도 상처의 상태를 분간하기 어려웠다. 아주 먼 곳에서 소리가 들렸다. 그리고 성한빈이 결심한 듯 장하오를 바라봤다. 새카만 어둠 속에서도 네 눈만은 별처럼 빛난다. 결의의 환영인지 본질의 누수인지 알 수 없지만 분명한 것은 오늘 하늘의 별보다 밝다.

 

나 스물넷이야.”

 

그렇게 비장한 얼굴로 꺼낸 이야기치곤 가벼운 주제라 장하오는 웃음을 터뜨리고 만다. 바닥을 친 현실감에 사실 무엇도 놀랍지 않을 것 같았다.

 

너 사실 형이야, 장하오. 나한테 하오 형이야.”

 

, 그래... 좀 놀랍네.”

 

쿡쿡대는 장하오의 반응을 어떻게 받아들였는지 성한빈도 나무줄기에 머리를 기대며 웃기만 했다. 가지런한 이가 다 보이게, 반짝이는 눈이 다 감춰지게. 장하오는 손등으로 그 얼굴에 흐른 땀을 훔쳤다. 두 사람의 몸에 짓이겨진 풀내음이 지독했다.

 

... 막상 말하려니까 무서워.”

난 지금 귀신 나올까 봐 무서워.”

, 나 장난 아니야.”

나도 장난 아니야.”

 

손톱을 손끝으로 문지르며 장난스레 답하자 성한빈이 한숨을 푹 쉰다. 웃음기가 잔잔히 배어 있어서 장하오도 미소 지었다. 이해되지 않는 것 투성이다. 사실 알 것 같지만, 알 수 없는 것들 뿐이라서 답답하다. 보이지 않는 것을 명확히 읽어내는 건 장하오가 잘하는 일이었으나 싫어하는 일이기도 했다. 분명히 보이지 않는 것은 비겁하다. 그래서 장하오는 인물의 얼굴을 가까이서 촬영하는 클로즈업 샷을 좋아했다. 얼굴 근육, 눈동자의 움직임, 눈을 깜빡이는 횟수, 하물며 숨 쉬는 코의 움직임까지도 가시적인 정보를 전달하니까. 반면 성한빈은 인물에게 멀리 떨어져 전체적인 샷을 담길 선호했다. 무언의 기류와 확장된 공간에서 다양하게 해석되는 연출이 대다수였다. 작업물엔 좋든 싫든, 원했든 원하지 않았든, 성향이 반영된다. 매 순간 장하오는 보여주길 바랐고 성한빈은 읽혀지길 바랐다.

 

아까 말한 거 기억나?”

 

그 물음에 성한빈이 장하오를 본다. 모든 주의가 장하오에게로 쏠렸다. 처음 만났던 날, 그보다 훨씬 전의 순간으로 거슬러 올라가도 그랬던 것처럼.

 

말해, 내가 들을게.”

 

 

 

 

 

 

 

D+1

 

章昊

2000.7.25

中华人民共和国 福建省 南平市 出生 预定

이었으나

중화인민공화국 모처 지름 10km의 돔형 스튜디오 내 진평시립병원 건물 출생

 

 

 

 

 

 

 

티비를 보는 게 좋았다. 아주 어릴 적부터 한빈의 가장 친한 친구는 짝꿍 민성도, 옆 반 소미도, 윗집 준수도 아니라 브라운관 속에 있었다. 엄마, 저 애는 누구예요? 왜 매일 저 안에만 있어요? 어머니와 아버지 사이 두 팔에 안긴 한빈이 그렇게 물으면 그들은 이렇게 답했다. 저 애는 저기가 집이야. 만나고 싶어도 만날 수 없어. 네 살 터울 동생은 어느새 숨소리 색색 대며 잠들어 있었다. 어머니가 리모컨으로 티비를 끈 뒤 곤히 잠든 동생을 안아 방으로 데려가면 한빈도 아버지 품에 안겨 침대로 옮겨졌다. 더 보고 싶다고 칭얼대도 내일 마저 보라며 스탠드를 켜주었다. 하지만, 저 애의 오늘은 내일 이어 볼 수 없잖아요. 그렇게 속살거려도 밤은 한빈을 지나쳐주지 않았다.

한빈이 클수록 티비 속 그 애도 컸다. 이젠 그 애가 하는 말을 실시간으로 번역해주는 자막 속도를 따라잡는 게 어렵지 않았다. 머리가 조금 굵어진 한빈은 미취학아동 시절에 했던 질문을 다시 던져본다. 너는 누구야? 왜 거기에만 있지? 한빈은 그 중 반절을 알고 있다. 그는 장호다. 시간이 흐르며 표기법이니 뭐니 하면서 장호는 장하오가 되었지만, 한빈에겐 장호라는 이름이 익숙했다. 장호는 하루종일 티비 속에서 살고 있다. 모든 사람이 그것에 이상함을 느끼지 않는다. 수많은 나라의 수많은 채널에서 장하오를 송출했다. 장하오가 잠들면 그 시간에 깨어난 이들에게 장하오가 깨어 있던 시간의 편집본을 재방영했다. 장하오는 그런 방식으로 수억 명의 사람에게 시청 당했다. 그들 시청자 중 하나였던 한빈은 이제야 뜻 모를 거북함을 느끼고 만다. 불쾌한 감각은 의문의 형태로 구체화된다. 장호는 일생을 관전 당하는 자신의 처지를 자각하고 있는가? 그렇지 않다면 그에게 앎의 권리를 뺏은 건 누구지? 답은 우스울 정도로 쉽게 찾아진다.

 

왕원표. 중국의 이름난 대부 중 하나. 그는 쉽게 달아오르고 식는 사람이었는데, 그 변덕에 사들인 것만 몇만 점이고 발들인 취미는 셀 수 없다고 했다. 1994년엔 세기가 바뀌면 지구가 멸망할 거라는 데에 억만금을 걸고 불법으로 사유한 섬에 거대한 대피용 돔을 지었는데 이것이 장하오 쇼의 첫 메인 스튜디오가 된다. 종말이 지척에 다가온 1998년 말 들어 돔 내부에 작은 도시를 설계하고 이는 예정보다 몇 주 늦은 2000년 초 완공되었다. 왕원표는 그즈음 세기말의 우울을 벗고 자신을 만족시켜줄 완벽한 재밋거리를 찾고 있었다. 넘치는 부와 드넓은 연줄로 못 해본 게 없는데 색다른 걸 어디서 찾는단 말인가, 그렇게 생각하던 왕원표는 불현듯 떠올렸다. 탄생부터 죽음까지 총망라한 쇼가 있다면 어떨까? 때마침 수중에 작은 도시도 있고, 아이를 살 돈도 있고, 아이를 팔아 입에 풀칠하길 원하는 어른도 널렸다. 이거다!

왕원표는 구상을 끝내자마자 당대 인기 영화감독이던 강진명과 떠오르는 신예 작가 유현을 끌어들였다. 무명 배우를 닥치는 대로 섭외한 뒤엔 제일 중요한 아이를 샀다. 뱃속에서 헤엄치는 게 전부였던 태아를. 아이의 친모는 출산 후 나머지 절반의 계약금을 현찰로 받아 그 즉시 섬을 떴고, 준비된 배우가 갓난아기를 안았다. 아이의 첫 포옹은 어머니 역 배우 양혜빈의 품이었다. 아버지 역인 장건학의 성을 따라 , 외자가 좋겠다는 왕원표의 뜻에 따라 이름은 . 아이는 그렇게 장하오가 되었다.

 

한빈은 손쉽게 찾아낸 검색 결과에 치를 떤다. 이런 걸 그 누구도 잘못되었다고 생각하지 않고, 윤리적인 문제를 제기하는 이 없이 재미를 위해 누군가의 인생을 ''로 만들었다. ...... 구역감이 치민다. 목구멍의 이물감이 무슨 짓을 해도 넘겨지지 않았다. 생리적 혐오감이 등골을 타고 오른다. 도망치듯 침대로 기어들어 갔다.

이후 며칠이 지나서 한빈은 결론지었다. 모든 것이 잘못됐다. 세상은 지구 밖 위성에서도 거대하게 보이는 그 돔을 치외법권처럼 여기며 거기 사는 장하오를 외면했다. 포털에 '장하오 쇼' 단 네 글자만 입력해도 클릭 몇 번에 읽어낼 수 있는 사실을 아무도 모를 리 없다. 모두가 알고 있다. 그러나 중히 생각하지 않는다. 장하오의 인생은 시청 당하기 위해 만들어졌으므로.

장하오의 일생은 이제 티비 채널뿐만 아니라 인터넷 플랫폼 라이브로도 송출된다. 어두컴컴한 방에서 머리끝까지 이불을 덮은 한빈의 얼굴에 일렁일렁 장하오가 어렸다. 이제 17세인 장하오는 공부하느라 여념이 없다. 책상에 앉아 연필을 사각대는 모습만 두 시간째였다. 중간중간 전화가 오거나 엄마 양혜빈이 문을 열고 들어와 난데없이 피로 음료를 부자연스럽게 보여주고 가는 일이 있었지만 장하오는 여전히 그 자리에서 요지부동이었다. 깨닫기 전엔 무심코 지나갔던 것들이 선득한 연출로 비로소 와닿았다. 한빈은 책상 위 스탠드 불빛이 불꽃처럼 어린 장하오의 새카만 눈동자를 보며 놀이터에서 대장으로 앞장서던 때처럼, 정의감, 영웅심, 그 엇비슷한 무언가가 복잡하게 타오르는 걸 느꼈다.

 

 

18세까지(때때로 시청률을 위해 개연성 모자란 사건이 벌어지는 것을 제외하면) 무난한 삶을 보낸 장하오는 양친의 사업 문제로 한국으로 이주하게 되었다, 는 건 현실을 숨기기 위한 각본이었다. 장하오 쇼의 권리자인 왕원표는 지난 2014년부터 연이은 투자실패와 기업부도, 온갖 범죄로 인한 소송 및 합의로 인해 파산에 이르렀고 이에 따라 그의 가장 큰 유형자산인 돔형 스튜디오를 매각해야 했다. 무형자산에 속하는 쇼의 권리는 실질적으로 스튜디오에 묶인 것이나 다름없었다. 그렇게 2015, 장하오 쇼의 모든 것이 대한민국 굴지의 대기업 일가로 넘어오게 된다. 권리자가 갈아치워지며 장하오 쇼도 급격한 변화를 맞았다. 쇼의 배경, 등장인물, 문화 등을 한국식으로 개편해야 한다는 새로운 권리자에 의해 새로운 무대가 짜였다. 한국 서쪽의 작은 섬이 번듯한 돔형 스튜디오로 탈바꿈한 것은 28개월 만이었다. 2017, 기존 고정 출연진이 하차의 탈을 쓴 해고에 대거 정리되었고 장하오는 이코노미석으로 분한 전용기에 태워져 수면제 연기와 함께 한국으로 넘어왔다.

그때 한빈은 배우가 되겠다며 주변에 으름장을 놓고 다녔다. 배우가 되지 못한다면 관련 업계의 말단 스탭이라도 될 작정이었다. 학교를 졸업하기 전부터 연기학원에 뛰어들었다. 다행히도 소질이 있었다. 마스크 괜찮고 실력도 나쁘지 않으니 이리저리 단역으로 많이 뛰었다. 손에 돈도 조금 쥐었고 어디서든 싹싹하게 굴며 연줄 대려 노력했다. 그렇게 21. 제의가 들어왔다. 장기 로케, 유명 프로그램. 한빈은 주저 없이 승낙했다.

 

 

장하오 쇼의 모든 출연자는 본명을 사용했다. 혹시 모를 실수를 대비하기 위함이었다. 초기 쇼는 워낙 무명 배우들을 데려다 썼으니 어찌보면 효과적인 지침이었다. 지금이야 단순한 매뉴얼이지만, 어쨌든 한빈은 그렇게 성한빈이 된다. 배역의 전사를 숙지하고 대기실에서 동기 역할의 연기자들과 몇 번 합을 맞춰본 뒤에 장하오의 복학에 맞춰 투입됐다. 한빈은 대기실을 빠져나와 섬 안쪽, 스튜디오 내부로 들어갔다. 딱딱한 유리 너머 보았던 세계가 현실로 넘어온다. 거짓말 같은 광경이었다.

스탭의 안내에 따라 강의실 의자에 앉아 숨을 골랐다. 개조된 시계에서 슛 사인이 넘어왔다. 속으로 셋을 셌다. 강의실 문이 열리고 장하오가 들어온다. 숙련된 연기자들은 아주 간만에 학교를 배경으로 장하오에게 대사하며 동작했다. 한빈은 몇 번이고 연습했던 첫 마디를 입 속에서 쉬지 않고 굴렸다. 안녕. 안녕. 안녕. 그 순간 장호의 눈이 한빈에게 내리꽂힌다. 새카만 시선은 탄환처럼 쏘아져 한빈을 꿰뚫는다. 세상이 필름처럼 늘어졌다. 화면 속의 인물이던 장하오가 인간이 되어 서 있다. 실제로는 몇 걸음이나 떨어져 있는데 그의 숨결이 뺨에 닿았다. 심장 뛰는 소리가 고막을 찢을 듯이 들렸다. 한빈은 몇 년간 평면에 갇힌 장하오를 보고 들었다. 그가 팔을 움직이는 각도, 눈썹을 찌푸리는 모양새, 말과 숨의 운율을 알았다.

하지만 그렇기에 무심코 장호에게 다른 것도 있다는 걸 잊었다.

장호에게선 향이 난다.

 

안녕. 네가 장, 하오구나.”

 

대사를 절었다. 깨문 혀가 얼얼했다.

 

 

 

 

 

한국에서 쇼가 시작된 지 거의 7년이 다 되어가고 있었다. 성한빈의 첫 등장은 벌써 약 2년 전이다. 한빈은 예고하지 않은 돌발행동을 자주 했다. 전달받은 하루치 일정에 없던 것을 막 끼워 넣었다. 장하오를 끌고 나가 밥을 먹거나 산책하거나... 처음 몇 번은 불려갔으나 반응이 괜찮다는 걸 확인하니 호출도 끊겼다. 한빈의 즉흥성에 모두가 맞춰줬다. 그렇게 착실히 장하오와 가까워졌다. 촬영이 없을 땐 배역에 동화되기 위해서라는 핑계로 스탭처럼 입고 스튜디오와 섬을 돌아다녔다. 스탭들에게도 살갑게 굴어 스튜디오에서 섬 변두리로 나올 수 있는 다섯 개의 출입구와 배를 댈 수 있는 곳에 대해 알아냈다. 중간중간 육지로 나가는 이들과 동석해서 배 주인과 연을 텄다. 성한빈의 분량이 나날이 늘어가는 동시에 장호를 훔칠 준비를 착실하게 해왔다.

패는 다 모았다. 어떻게, 어느 순간에 사용할지만 결정하면 된다. 하지만 쇼는 한빈을 기다려주지 않는다. 출연진과 제작진 사이에 이상한 소문이 돌았다. 쇼의 권리자가 신기술과 가상 시뮬레이션, AI, 그런 것에 눈이 돌아 어디 써먹을 데를 찾아서 혈안이 되어 있다고. 한빈은 그걸 쓸데없는 뒷얘기로 취급하고 한 귀로 흘렸다. 쇼에 영향을 미칠 건 끽해봐야 관련 어플이나 기기를 카메라에 비춰줄 PPL 타이밍뿐이라고 생각했다. 안일한 생각이었다. 돈과 권력이 장하오의 인생을 어떻게 전시했는지 잊은 것도 아니면서, 그의 삶을 또 좌지우지할 거라고는 예상하지 못한 게으른 판단.

 

시작은 통보였다. 유지비 경감과 출연료 삭감을 번드르르한 말로 구구절절 써놓은 문단 아래에 일방적인 계약해지와 새로운 계약에 관한 상세설명이 적혀있다. 한빈은 친하게 지내던 스탭에게 몰래 받은 서류를 두 번 세 번 읽었다.

 

한빈 씨는 알아야 할 거 같아서... 출연진한테는 내일모레쯤 전달될 거야. 우리도 막내들은 완전 모르고 짬 있는 사람들이나 받은 거라.”

, ... 고맙습니다. 생각해주셔서.”

아냐, 한빈 씨 계약금이 제일 셀 거 같으니까 미리 마음의 준비 하라고.”

 

한빈은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쥐고 있던 끄트머리가 조금 구겨진 종이를 다시 주인에게 넘겨주고 예의 바르게 웃으며 인사했다. 약속한 장소를 향해 걸었다. 머리를 덤프트럭에 갈아버린 것 같다. 제작진 일부만 남겨두고 나머지 스탭과 배우들을 싹 다 해고한 뒤, AI 학습을 통해 출연진을 가상 인물로 제작하겠다고? 하차하게 될 출연진에겐 위약금과 초상권, 더불어 그의 인격체에 대한 학습의 대가로 어마어마한 계약금을 걸고 새로운 라이선스 계약을 제안할 예정이며 그렇게 만들어진 데이터는 가상세계에 집어넣고 구동한다... 기가 차는 발상이다. 인본주의를 길바닥 쓰레기만도 못한 취급하는 미흡한 급진성. 거기다 가장 중요한 부분에 대해선 알 수 없었다. 쇼를 인지하고 있는 이들 말고, 25년 인생을 남모르고 산 장호는 어떻게 되는 건지. 그에게 네 인생은 평생이 가짜였고 네 어미도 아비도 네 가족이 아니고 네 친구, 원수, 이웃, 학력, 경험까지 전부 고작 역할극이었다고 하며 그 보상으로 턱없이 모자를 돈 몇 푼 쥐여주고 말 텐가.

한빈은 발끝이 울렁거리는 착각에 빠진다. 가던 걸음을 멈추고 섰다. 반듯하게 깔린 보도블록이 수렁처럼 느껴졌다. 지나치게 당연해서 묻어두었던 생각이 고개를 들이민다. 장호를 여기서 데리고 나가기 위해선 진실을 알려주어야 했다. 그렇다면 장하오의 세상을 깨부수는 것 말고 다른 건 해줄 수 없는 한빈보다, 수많은 허들을 넘어 궂은 길로 그를 탈출시킬 성한빈보다. 어찌되었든 적법하게 장하오를 해방시킬 재계약이 더 낫지 않을까.

 

성한빈!”

 

장하오가 멀리서 이름을 불렀다. 귀 끝은 붉고 머리카락은 솜털처럼 휘날린다. 그를 휩쓸고 왔을 인공 겨울바람에 코끝이 시렸다. 한빈은 자신과 성한빈을 혼동한다. 그는 한 번도 장호의 앞에 한빈이었던 적 없다. 장하오의 앞에서도 그랬다. 그는 매번 매 순간 성한빈이었다. 어쩌면 성한빈으로 너무 오래 있었나. 자꾸 쓸데없는 생각이 들었다. 여태껏 그를 구하려고 했던 게 사실 아무 의미 없는 행동이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 또는 열심히 이것저것 알아냈지만 여즉 여기 있다는 건 결국 그에게 제 입으로 사실을 말하기 두려워 결정을 미루고 있었던 게 아닌가 하는 생각. 그래서 조금 비겁한 마음이 든다. 네 모든 걸 깨어버릴 사람이 나 말고도 있어서 다행이라는 이기적인 안도.

변하지 않은 건, 분명한 건 하나였다. 나는 네가 진실로 살아가길 바랐다. 누군가의 창작이 개입한 불순한 시나리오가 아니라 순수하게 네 마음만으로 구성된 삶을. 거기 내가 없어도.

 

 

 

 

 

 

 

그런데 주워듣자니 그렇게 괜찮은 게 아니더라고. 널 이상한 용액에 넣는대. 생명유지장치처럼 선을 주렁주렁 달아서 뇌에 전기자극을 줄 거래. 그렇게 하면 무슨 기술로 널 가상세계에 집어넣을 수 있다더라. 정확히 말하자면 가상세계에 있는 네 아바타를 움직이게 할 수 있다던데, 난 사실 고졸에 연기수업 듣느라 공부도 많이 못 했거든. 어려운 말이 너무 많아서 못 알아들었어. 미안해.”

 

장호는 호언장담했던 것처럼 한빈의 이야기를 가만히 들었다. 이해하기 어렵고 받아들이기 싫은 이야기가 태반일 텐데 한순간도 산만해지지 않고 한빈의 눈을 보며 손끝으로 손을 가만가만 쓸어주었다. 고통을 경감 해주듯이. 한빈은 생각보다 담담하게 이어지는 목소리에 안심했다. 그는 자신이 울 줄 알았고, 심지어는 말하기 직전까지 울 것 같았다. 그런데 과거를 돌이켜 넘겨주는 기분이 생각보다 괜찮았다.

 

널 데려가는 날이 언제인지 알아내려고 별별 짓을 다 했는데 어제 아침에 알았어. 당장 내일이래, 77. 그래서 좀 급했어. 설명도 제대로 못 해주고 끌고 나와서 이 꼴로 말하게 된 것도, 미안.”

 

장호가 한빈을 본다.

 

고생했어.”

 

장호는 솔직히 모든 것이 완벽히 와닿지 않는다. 좁은 문틈에 트럭 가득 채운 이삿짐을 바리바리 욱여넣는 기분이다. 작은 것부터 하나하나씩 집어넣고 정리할 시간이 필요했다. 머리통이 미어터질 것 같았다. 다만 확실한 건 하나 알았다.

 

그래도 너는 한빈인 거잖아. 너는 내 편이고, 날 구해주러 왔고, 날 구하고 있고. 그건 변하지 않아.”

 

한빈도 장호를 본다.

그토록 고대하던 순간이다. 장호의 앞에 한빈으로 있는 것. 사실 지난 모든 대사와 동작은 그저 말과 행위였다. 그를 꼬여내기 위해서, 믿을만한 사람이 되기 위해서 연기한 게 아니었다. 한빈을 움직이게 한 것은 철부지의 영웅심이나 치기 어린 정의감일 수 없다.

 

근데 한빈아.”

 

한빈은 답을 안다.

 

나는 네가 나한테 사랑을 고백하고 있다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네.”

 

새카만 어둠, 미약한 하늘빛, 사방을 메운 초록빛... 어슴푸레 보이는 서로의 얼굴과 엉망진창인 두 사람. 낭만적인 장치가 결여된 산 중턱의 흙바닥에서 장호는 사랑을 말한다. 한빈은 그로써 확실히 실감했다. 이런 건 연출가가 할만한 게 아니다. 장호가 장호이기 때문에 만들 수 있는 삶의 순간이다. 손을 꾹 잡았다. 몇 번이고 잡아봤던 손이지만 지금만큼은 손바닥 피부 아래 혈관 속 혈류까지 느껴질 정도로 생생했다. 미친 척 입을 맞출까. 떨어지지 못하게 부둥켜안을까. 장호도 한빈도 같은 생각을 하며 시선을 얽었다. 이제 낯선 이의 소리가 가까워진다.

 

이거, 가져가. 비밀번호는 이거야.”

 

한빈이 뒷주머니에서 핸드폰을 꺼내 쥐여주며 말했다. 오늘 아침에 장호를 깨운 그 핸드폰이다. 아침잠 깊은 그를 깨우기 위해 한빈이 일부러 바꿔치기 했던 그것. 한빈의 손가락이 장호의 손바닥에 네 번의 궤적을 남긴다.

 

눈높이에 형광 표시된 나무가 있어. 따라서 계속 걸어. 가다가 길 잃어버리면 하늘을 봐. 제일 밝게 빛나는 별 세 개 중에 두 번째로 밝은 쪽을 향해서 가면 돼. 문은 열려 있을 거야. 나가서 직선으로 쭉 달려.”

같이 간다고 했잖아.”

여기까진 같이 왔잖아.”

 

한빈이 활짝 웃는다. 장호는 미간을 찌푸려버린다. 한빈의 팔 아래로 몸을 끼웠다. 몸을 일으키자 한빈의 온전한 무게가 쏟아졌다.

 

... 나 다리가 안 움직여. 같이 못 가.”

 

발을 질질 끌며 움직여보지만 몇 걸음 못 가 함께 바닥으로 무너졌다. 장호도 한빈도 체력이 동난 탓이다.

 

남는다고 죽겠어? 해봤자 고소지. 근데 넌 이상한 용액에 갇혀서 평생 살아야 한다잖아.”

 

짠내가 났다. 소리도 없이 방울방울.

 

먼저 가. 그럼 어떻게든 내가 너 찾아갈게. 약속해.”

 

장호는 손가락을 거는 것보다 더 확실한 증명을 원했다.

 

친구 말고 동생으로 약속할게... 내가 형 찾을게.”

 

한빈이 그를 떠민다. 장호는 떠밀리고 싶지 않아 버티다가도 그의 노력을 헛되게 하고 싶지 않아서 고개를 들었다. 바닥을 짚고 일어서서 주저앉아 있는 한빈을 본다. 한빈은 장호가 좋아하는 얼굴로 마냥 웃으며 그를 보고 있다.

 

하오 형. 잘 가.”

 

한빈의 손가락이 가리키는 곳으로 발을 옮겼다. 장호는 몇 번이고 뒤돌아본다. 눈이 완전히 어둠에 익었나. 몇 걸음이나 떨어졌는데도 입 모양이 선명히 보였다.

 

뒤돌아보지 마.’

 

장호는 달린다. 비밀번호는 7 8 9 1. 형광 표시가 있는 나무. 하늘에서 두 번째로 밝은 별. 문을 열고 직선으로. 뒤돌아보지 않을 것. 비밀번호는 7 8 9 1. 형광 표시가 있는 나무. 하늘에서 두 번째로 밝은 별. 문을 열고 직선으로. 뒤돌아보지 않을 것. 약속. 비밀번호는 7 8 9 1. 형광 표시가 있는 나무. 하늘에서 두 번째로 밝은 별. 문을 열고 직선으로. 뒤돌아보지 않을 것. 약속. 네가 나를 찾겠다는 약속.

 

너 약속했다. 약속한 거야.

하늘 같은 형과의 약속을 깨는 건 말도 안 되는 일이야...

 

 

 

표시를 따라 굽이굽이 뛰었다. 숨이 차서 잠시 멈추고 하늘을 봤다. 눈에 띄게 밝은 두 별이 직선을 이루고 있다. 성한빈은 모르고 한빈은 알겠지만 나는 밤하늘을 보고 뜀박질하길 좋아하는 학생이었다. 거기 있어야 할 게 하나 없다는 걸 단박에 알았다. 보이지 않던 한 글자. g, 너였구나. 베가와 거문고자리. 쇼의 바깥, 삶의 복선이 회수된다. 나는 오르페우스가 아니고, 영영 돌아보지 않고, 너는 나를 찾아야 해.

장호가 다시 발을 구른다. 파도 소리가 가까워진다. 페인트칠 된 철문이 보였다. 손잡이를 돌려 열고 짧은 통로를 지났다. 흙이 아닌 모래를 밟는다. 발이 푹푹 패여 들어갔다. 얼굴에 범벅인 짠내보다 더 짙은 소금의 냄새가 난다. 불 꺼진 작은 배가 보였다. 장호는 겁 없이 올라탔다. 시동이니 운전이니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른다. 주머니를 무겁게 하던 핸드폰의 존재가 떠올랐다. 새파란 기본 잠금화면이 장하오의 얼굴을 파르랗게 물들인다.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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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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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금이 풀린 그곳엔

 

 

 

 

 

 

 

 

 

cinéclub

 

Chekhov's S

 

Fin.

 

 

 

 

 

 

 

 

 

 

 

 

 

장호가 당신을 본다

 

 

 

이 모든 내 삶의 구경꾼

 

보여줄 이야기는 끝입니다

 

안녕

 

 

 

 

 

 

 

 

 

 

 

 

 

 

영화 <트루먼 쇼> 모티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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