늘빈웹진: cinéclub

나의 너

cream

“한빈 씨?”

 

조금 놀란 얼굴로 저를 부르는 소리에 눈앞이 캄캄해졌다. 이어지는 낯선 이야기들을 듣지 않아도 무슨 상황인지 알 수밖에 없었다. 하오가 한빈을 저런 얼굴로 보는 게 얼마 만이더라. 감상에 젖기보다 엉망으로 일그러지려는 얼굴을 감추는 것이 고작이었다.

 

“그건… 제가, 알아서 정리할게요.”

 

자연스레 존댓말이 나왔다. 한빈 씨라고 불릴 적에 하오에게 반말을 해 본 적이 없으니까. 일정을 조절해달라 요청하는 하오에게 더 이상 자신이 하오의 담당이 아니라고 이야기 할 수가 없는 탓에. 잠깐만 전화 좀 하고 올게요. 발걸음이 비틀대지 않도록 핸드폰을 쥔 손에 힘을 꽉 주었다. 병실을 나와 두어 걸음 멀어지기 무섭게 꽉꽉 눌러두었던 한숨이 구역질처럼 튀어나왔다. 왜 이런 일이 생긴 거지. 왜 하필. 눈앞이 뿌옇게 흐려지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4년 차 연인이자 3년 차 동거인이, 무슨 영화도 아니고, 하필 딱 4년 치 기억을 잃었다는데. 둘이 사랑한 기억을 모두 잊었다는데.

 

짝-!

 

한빈은 양손으로 있는 힘껏 양 뺨을 내려쳤다. 주변의 시선을 신경 쓸 여유가 없었다. 한빈에게 중요한 것은 그런 것이 아니라 하오니까. 보호자가 흔들리면 환자는 불안해질 수밖에 없어. 마음을 단단히 먹어야 해. 눈물을 꿀꺽 삼킨 한빈은 하오의 담당에게 전화를 걸었다. 다급한 마감이 없는 것이 유일한 다행이었다.

 

“한빈 씨.”

 

혼란이 섞인 목소리에 한빈은 부드러운 표정으로 하오와 시선을 맞추었다. 괜찮아요. 입 밖으로 내뱉지 않아도 그 뜻이 전해지도록. 천천히 하오가 할 말을 기다렸다.

 

“지금 한빈 씨가 제… 보호자인 거죠.”

“네. 맞아요.”

“궁금한 게 있어요.”

 

신중하고 조심스러운 말투와 조금은 멋쩍어 보이는 표정. 조심스레 제 앞으로 내민 하오의 핸드폰은 구석에 못 보던 금이 가 있었다. 아스팔트 바닥에 떨어져 구른 것 치고는 괜찮은 상태다. 근데 형은 왜.

 

“제 핸드폰에 한빈 씨와 나눈 메시지나 저장된 사진들을 보면… 저희가 그... 연인 사이처럼 보이는데, 그게 맞나요? 아니면 제가 혹시…”

“맞아요.”

 

동그랗게 된 하오의 눈동자에 한빈은 입술을 살짝 깨물었다. 놀랐겠지. 지금의 하오에게 두 사람은 일로 만나 조금 친해진 사이 정도일 텐데. 게다가 한빈과 만나기 전에 하오의 연애 상대는 모두 이성이었다고 들었다. 별 거 아니라고 생각했던 일이 이제 와서 괜히 한빈을 불안하게 만들었다.

 

“역시 그랬구나아…”

 

하오는 납득했다는 듯이 고개를 작게 끄덕인다. 다행이네요. 기억을 잃은 거지 미친 게 아니라. 적당한 농담을 하고 웃는 하오의 얼굴은 예나 지금이나 다름이 없는데. 어쩌다 형은 우리의 기억을 모조리 잊은 거야. 한빈은 튀어나오려는 말 대신에 웃었다. 하오보다 저를 안심시키고 싶어서. 딱히 효과가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일이나 다른 건 걱정하지 말고 회복하는 데만 집중하세요. 제가 도울게요.”

“정말 고마워요, 한빈 씨.”

 

하오가 한빈을 한빈 씨가 아니라 한빈으로 부르게 된 것은 퇴원하고 나서였다. 한빈은 퇴원 전부터 하오에게 두 사람이 3년째 같이 살고 있으며, 퇴원을 하면 두 사람의 집으로 가 함께 지내게 될 것이라고 천천히 설명해 주었다. 연애와 동거는 별개의 일이니 미리 알려줘야 놀라지 않고 마음의 준비를 할 거 같아서. 역시 그랬구나아… 하오는 이번에도 비슷한 반응을 보였다. 주소가 달라졌다는 것을 알았을 때 의아했었고, 한빈과 사귀는 사이라는 걸 알고서는 함께 사는 게 아닐까 했다고. 상황 파악과 판단이 빠른 건 기억을 잃어도 여전했다.

 

“왜 안 들어가고 거기 있어요?”

“어? 그게…”

 

먼저 씻고 나온 하오가 자고 있을 줄 알았는데 오도카니 소파에 앉아 있었다. 숱이 많아 잘 마르지 않는 머리카락이 아직도 한참은 젖은 채로. 늘 하던 대로 드라이기로 말려줘도, 괜찮으려나.

 

“침대가 하나뿐이라서…”

 

아. 아무래도 역시 그건 좀 아닌가.

 

“제가 소파에서 자요. 그러니까 형은 들어가서 자면 돼요.”

 

별거 아니라는 듯이. 가볍게. 익숙하다는 듯이. 한빈은 목소리에서 힘을 빼려고 노력했다. 제법 잘했다는 생각도 들었고.

 

“왜에?!”

 

이런 반응은 좀 예상 못 했는데. 덩달아 당황한 한빈에 하오의 얼굴이 삽시간에 시무룩해졌다. 어깨며 눈썹이며 입꼬리가 아래로 쭉쭉 내려간다.

 

“우리… 같이 살면서 같은 침대에서 잠들지 않을 정도였구나…”

“아니에요, 안 그랬어요.”

 

슬쩍 올려다보는 눈에 의심이 가득한 것에 억울해졌다. 다툴 때가 있어도 언제나 잠은 같이 잤다. 그건 같이 살기 시작하면서 가장 먼저 했던 약속이었는데.

 

“이제 막 퇴원했으니까…”

“그거랑 무슨 상관이야.”

 

 

평소처럼 지내야 기억이 빨리 돌아온다고 했으니까 원래 같이 자던 거면 오늘도 같이 자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렇게 고집부리는 것을 보면 평소의 하오인 듯하다가도 늘 한빈이 잠들던 쪽으로 냉큼 올라가는 걸 보면 기억을 잃은 게 틀림없어서. 익숙한 공간에서 당연한 사람이 부자연스럽게 행동하는 것에 한빈은 한숨을 또 참아야 했다.

 

 

그거 너무 슬픈 일이잖아...

 

한빈이 만약에~ 로 시작한 이야기에 하오는 그 비현실성을 지적하는 대신 한빈의 감정에 동화되었다. 만약에 저 영화의 주인공들처럼 상대방을 잊어버린다면. 우리가 함께했던 추억이 사라져만 간다면. 기억을 잃는 사람보다 사실 기억을 하고 있는 사람이 더 고통스럽지 않을까.

 

그래도 나는 내가 기억하는 게 더 나은 거 같아

근데 한빈, 안돼.

응?

우리가 서로를 잊어버리는 건 안 되는 일이야.

 

그때 그런 슬픈 영화는 보지 말 걸. 보고 나서 만약에 상대에 대한 기억을 잃어버린다면 같은 가정 같은 거 하지 말걸. 둘 중에 고르자면 내가 기억하는 게 더 나을 거 같다는 말 따위, 하지 말걸. 논리적이지 않은 후회는 이내 논리적이지 않은 원망으로 옮겨간다. 안 된다고 했잖아. 그날 다른 이야기로 넘어가기 전까지 잊어버리면 안 된다고 몇 번이나 이야기했었잖아. 그래 놓고. 나를 잊어버렸어.

 

 

 

하오는 놀랄 정도로 빠르게 적응했다. 상황을 듣고 일정을 대폭 변경했던 하오의 담당이 굳이 그렇게 일정을 바꿀 필요가 없었다고 말했을 정도로. 일에서 뿐만 아니라 한빈과 함께 사는 생활에서도 그랬다. 기억을 잃은 사람 같지 않게 며칠 만에 세탁물을 아무렇지 않게 정리하고 재활용품을 요일에 맞춰 내놨다. 그에 적응하지 못하는 것은 되려 한빈이었다

 

"안 해줘, 뽀뽀?"

 

입술을 앞으로 한껏 모아 내민 채라 뭉개진 발음에 멈칫했다. 기억이 돌아왔나 싶어 눈을 크게 뜨면 입술이 슬그머니 들어가며 어설프게 헤헤하고 웃는다. 슬쩍 눈을 내리깔았다가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무슨 맛 아이스크림을 먹을 거냐고 화제를 돌려 놀란 한빈의 표정을 바꾸려고 든다.

 

"어... 초코요."

"그럼 내가 바닐라 먹을게."

 

한 입 빼앗아 먹을 거야. 장난스레 웃는 얼굴에 한빈은 그제야 표정을 바꿀 수 있었다. 드릴게요. 걱정 마세요. 웃음을 섞어 말한 목소리가 하오에게 자연스럽게 들렸을까. 냉동고 문을 여는 하오의 등을 바라보며 한빈은 아랫입술을 꾹 깨물고 자책했다. 거기서 굳어버리는 게 아니었는데

기억을 잃은 하오는 종종 기억을 잃지 않은 것처럼 한빈을 대했다. 평소처럼 지내야 기억이 빨리 돌아올 가능성이 있다는 진단을 받은 하오의 입장에서는 함께 사는 연인 사이인 두 사람이 아마도 평소에 했을 법한 형태를 흉내 내는 것이겠지만. 그게 정말 둘 사이 자연스럽게 있었던 것들이라. 하지만 하오는 한빈이 놀라는 사이에 그걸 빠르게 오답 처리하곤 다시는 시도하지 않았다. 4년의 기억을 잃었다 해도 장하오는 장하오였다. 4년 치 기억을 잃어 혼란스러울 것이 당연한 상황에서도 특유의 영민함과 섬세함은 여전했다. 흔들리지 않고 다정하게 한빈을 향해 배려하는 모습도, 4년 전 한빈이 하오를 좋아하게 되었던 모습 그대로였다.

 

"갑자기 아이스크림 먹기 싫어졌어?"

 

하지만 지금의 하오는 한빈을 사랑하던 하오가 아니다

 

"왜 얼굴이 찰흙처럼 구겨졌지... 그래도 귀엽긴 한데."

 

아이스크림을 내팽개친 손을 재빠르게 옷 위로 몇 번 비빈 뒤에 한빈의 뺨을 조심스레 감싸온다. 얼굴에 눈물보다 더 차가운 손이 닿았다면 정신이 들었을까. 한빈은 저를 끌어당겨 안는 품에 익숙하게 몸을 파묻었다. 피부에 닿는 온도도 코끝에 닿는 살냄새도 등을 천천히 쓰다듬는 손길도 몇 번이고 괜찮다고 말하는 목소리도. 모두 평소와 다를 것이 없는 하오라서. 한빈은 괜찮아지기로 했다

 

 

 

하오의 기억이 영영 되돌아오지 않아도 괜찮다. 한빈이 기억하고 있으니까. 지금부터 하오와 더 좋은 기억을 만들어 나가면 된다. 다행이 지금의 하오는 그에 무척 협조적이고.

 

"나 와쓰어~"

 

협조적인가.

 

"이거 우리 빙빙이랑 닮아소 데려왔지이~"

 

취기에 뭉그러진 문장으로 고이 쥐고 온 작은 꽃다발을 건네는 하오는 평소와 다르지 않았지만, 한빈은 이런 외출이 늘어난 것이 못내 신경이 쓰였다. 누구랑 만나는지도 알고 어디서 뭘 먹었는지도 알지만 무슨 이야기를 나누고 오는지 모르는 게. 하필 매번 한빈과 동행하지 못하는 타이밍에 되어버린 것도 신경 쓰였다

 

"리키가 쩜 아쉬워했서... 왜 함빙 형 없이 혼자 왔어요? 하구."

"나도 리키 보고 싶었는데."

 

갑작스러운 회사 일들로 한빈이 함께 가지 못한 경우들이 섞여 있지 않았다면 더 신경이 쓰였겠지. 집에 있는 걸 누구보다 좋아하는 하오가, 침대에 대한 간절한 마음 뿐인 하오가 자꾸 다른 사람들 만나고 다니는 것에 겨우 태연한 척을 했다. 퇴원한 뒤에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고 얼굴을 보며 말해야 할 사람들만 만나고 있다는 걸 알면서도, 겨우.

 

"왜에?!"

"응?"

"왜 리키 보고 싶지이?"

 

혹시... 리키 좋아해? 엥, 갑자기 무슨 소릴 하는 거예요. 그치만... 좋아하니까 보고 시픈 거 아닌가... 그럼 리키가 나 좋아하는 거예요? ...리키는 빙빙 쫌 조아하나바? 그래요? 그럼 리키랑 조만간 데이트해야겠다. 안돼! 그건 안 되는 일이야. 내가 한비니 더 마니 많이 좋아하능데 나랑 데이트 해. 하면 안 되까. 해주세요... 거실 바닥에 주저앉아 종알대던 하오는 소파에 앉아 있는 한빈의 허벅지에 철퍼덕하고 얼굴을 파묻었다. 머리카락을 쓰다듬는 방향을 따라 고개를 돌린 하오 뺨이 한빈의 허벅지에 눌려 도톰한 입술이 금붕어처럼 튀어나온다. 그게 귀여워 손끝으로 톡톡 건드리면 하오는 푸우-하고는 알콜 향을 내뱉었다.

 

"어쩔 수 없는 거야아..."

 

뭐가? 묻기도 전에 하오는 벌떡 일어났다. 갑자기 일어난 게 어지러웠는지 한 번 몸이 휘청였고. 한빈이 손을 뻗기도 전에 뒷걸음질 치며 양손으로 입을 틀어막더니 술 냄새가 미쳤다 소란을 피우며 욕실로 뛰어 들어간다. 하오의 속옷과 잠옷을 챙겨 욕실 앞에 놓으면서도 작게 흘러나온 그 말이 계속 한빈의 마음속을 헤집고 다녔다

 

 

 

"응. 그때는 시간 돼."

"그럼 나랑 데이트해요."

 

보름달처럼 동그랗게 되었던 하오의 눈은 고개를 끄덕이며 초승달처럼 접혔다

 

"최근에 생겨서 아직 안 가본 곳이긴 한데, 유진이가 맛있다고 추천했었거든요. 후기 살펴봤는데 형도 좋아할 거 같아서요."

"나도 좋아."

 

어딘지 모르잖아요. 일부러 투덜대면 맞아, 몰라... 하고 헤헤 웃는다. 한빈은 제게 순종적인 하오를 순간순간 의심한다. 하오가 한빈과의 관계를 지나칠 정도로 자연스레 받아들인 탓에. 보호자인 제게 의존하는 걸까, 아니면 기억은 잃어도 감정은 남아 있는 걸까

 

"이거 입을 거야?"

"네. 어때요?"

 

하오가 잘 어울린다고 몇 번이고 말했던 분홍색 니트를 꺼냈다. 의심과 불안은 길게 안고 갈 이유가 없다. 결국 한빈이 바라는 것은 저를 사랑하는 장하오니, 다시 하오가 제게 반하게 만들면 된다. 하오가 뭘 좋아하는지, 뭘 싫어하는지 모두 알고 있는 지금의 한빈에게 어려운 일은 아닐 것이다

 

"응. 진짜 너랑 잘 어울린다."
"
난 형이랑 잘 어울리는데?"

 

아하하하. 호쾌하게 터져 나온 웃음 뒤로 맞아, 나랑 잘 어울리지. 하고 따스한 목소리가 따라붙었다. 하오가 이 관계를 순순히 받아들인 이유는 알 수 없지만, 한빈은 그조차도 이용할 수 있으면 이용하겠노라 마음먹었다. 내가 애인이자 동거인이라는 걸 수긍하고 받아들였잖아. 그런 거면 이제 얌전히 나를 사랑하시지.

 

"여기 맛있다. 그쵸?"

"응. 엄청 맛있어..."

 

맛있는 거 먹을 때 젤 행복해하는 사람이니까 일단 맛난 걸 먹었다. 요즘 저녁 날씨는 같이 산책하다 사랑에 빠지는 걸 조심해야 할 정도니까 산책도 하고. 귀여운 거 좋아하니까 귀여운 모자 골라서 인생네컷도 찍고. 하오는 내내 웃는 얼굴로 한빈의 어깨와 팔을 붙잡아왔다. 맞아, 우리 형 스킨쉽도 좋아하는데

 

"잘 자요."

 

굿나잇 키스...는 좀 놀랄까 싶어서 뺨에다가. 근데 이것도 좀 놀란 모양이네. 한빈은 하오의 머리통을 끌어안고 누웠다. 한빈아? 잠옷에 눌려 동글동글해진 발음에 하오의 머리를 더 꼭 끌어안았다. 꼼지락대는 하오의 팔을 끌어다 제 허리 위에 올려두면 그제야 좀 얌전해졌다. 평소처럼 해야 기억이 돌아온다고 했잖아. 완전 평소처럼이었는데. 동거 중인 연인이 잘 자라고 볼 뽀뽀하는 게 뭐가 그렇게 놀랄 일이냐고. 마음에서 투덜거릴 때마다 눈물이 찔끔하고 흘러나왔다. 제 가슴에 얼굴이 파묻힌 채인 하오에게 보이지 않는 것이 다행이었다.

 

 

 

"처음 만났을 때...?"

-네. 하오 형이 한빈이 형 처음 소개해 줬을 때요. 그때 이야기를 했어요.

"갑자기 그걸 왜?"

-저도 그렇게 생각했는데, 기억나는 거 다 말해보라고. 듣다 보면 기억이 날 수도 있는 거 아니냐고 그러더라구요.

"에이... 그건 아니지 않을까."

-아무튼 말 다 했어요. 그런데 하오 형 좀 자기 이야기 듣는 사람 같지 않고... 자료 수집하는 사람처럼 굴었어요. 취재하는 기자처럼. 한국어로 어떻게 말해야 하는지 정확하게 모르겠는데, 좀... 좋은 의미는 아니고.

"어떤 느낌인지 알아. 일할 때 가끔 그러긴 해."

-하지만 그건 일이 아니잖아요.

 

리키와의 통화는 어영부영 끝났다. 궁금했던 것을 알고 나면 속이 좀 편해지려나 했는데. 확실한 수확은 하오가 부모님을 뵈러 중국에 갈 마음이 있다는 것뿐이었다. 근데 그런 걸 왜 나랑 이야기 안 하고. 리키와 만난 게 언젠데 제게는 언급조차 하지 않았던 것이 조금 서운했다. 리키와 편하게 모국어를 쓰다 보니 고향에 대한 이야기가 나왔겠거니 조만간 제게도 이야기 해주겠거니 하고 애써 납득하고 있었는데.

 

"내일이요...?"

"응. 너무 갑자기지. 근데 스케줄 맞추려니까 그때뿐이라서."

 

거실에 나와 있는 기내용 캐리어와 백팩. 식탁에 올려진 붉은 색 여권을 보고 멍해졌다. 4년쯤이야, 앞으로 함께 할 시간에 비하면 짧은 시간이니까, 그 정도는 혼자만의 추억이라도 괜찮다고. 앞으로 더 행복하게 지내면 된다고 생각했다. 하오가 제 곁에 계속 있을 것이라는 오만이 내린 결론이었다. 한빈은 흔들리는 눈동자를 고정할 수 없어 눈을 꾹 감았다.

 

"같이 가면 좋은데... 아무리 빨리 해도 비자 나오는 데 이틀은 걸린대."

 

비자보단 네 휴가가 더 문제긴 하지만. 작게 웃는 하오에게 나 두고 어디 가지 말라고 매달리고 싶은 마음과 그렇게 말도 안 되는 걸로 고집부리다가 미움받고 싶지 않다는 마음이 충돌한다. 그걸 감추려 무비자나 도착 비자가 없는 한중 관계를 탓하는 농이라도 하려고 했는데

 

"금방 돌아 올 거야."

 

거짓말. 안 돌아왔잖아

 

"한빈아."
 

기억이 돌아오지 않은 것처럼 하오도 돌아오지 않을 것만 같은 불안이 한빈의 눈물샘에 태연하게 몸을 뉘었다. 안 돌아오면 어떡하지. 데리러 가도 되나. 순순히 따라와 줄까. 안 따라오면 납치할 거야. 납치해서 어디도 못 가게 가둬둘 거야. 난폭해지는 마음이 하오의 옷자락을 꼭 붙잡았다. 천천히 한빈을 품에 당긴 하오에 한빈은 그 너른 어깨에 눈물을 쏟지 않기 위해 애썼다

괜찮아. 잠깐이야. 매일 전화하자. 돌아오는 비행기 예매하고 바로 알려줄게. 나 퇴원한 뒤로 너 계속 못 쉬었잖아. 이번 기회에 좀 쉬어. 사실 너 아무것도 안 하고 내가 다 해주는 게 진짜 쉬는 걸 텐데. 미안해. 아직은 그렇게 못 해서. 너무 걱정하지 마. 곧 돌아 올 거니까

천천히 한빈의 등을 토닥이며 이어지는 말들이 한빈을 달래려는 건지 울리려는 건지 알 수 없어서 한빈의 노력은 결국 물거품이 되었다.

 

 

 

아니. 그렇게 펑펑 울었는데. 가지 말라고 말만 안 했지 그렇게 온몸을 다 해 표현했는데. 그런데도 간다고. 원망하고 싶다가도 현실적으로 부모님과 이야기가 다 된 귀향을 막을 수는 없는 노릇이라.

 

"면세점에서 인삼이랑 영양 크림 잊지 말아요."

 

술이랑 담배는 사지 말구... 전날의 대성통곡으로 아예 잠겨버린 목소리는 영 밝아지질 않는다. 퉁퉁 부은 얼굴이라 입술이 좀 불퉁해지는 게 티도 안 났고. 하오는 머쓱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하고 싶은 말이 많은 눈치긴 한데, 한빈이 또 울어버릴까 참는 듯 했다. 확 또 울어버릴까. 달래느라 비행기 놓치게. 불쑥불쑥 올라오는 미운 마음을 누르려 하오의 손을 잡아다 새끼손가락을 걸었다.

 

"얼른 돌아와야 해요."

 

도장 찍고 복사하는 것도 잊어버린 건지 힘을 뺀 손을 제게 맡긴 하오에 한빈은 아랫입술을 꽉 물었다 놨다. 팔을 크게 벌려 하오를 꼭 안으면 한빈의 허리에 하오의 팔이 감겼다. 언제나 한빈에게 안정을 주었던 포옹이 쉽사리 평소의 그것을 전하지 않아서 한빈의 얼굴이 구겨졌다.

 

"연락 많이 해줘요."

"그럴게."

 

구겨진 얼굴을 펴서 웃는 얼굴을 만들고 나서야 팔에 힘을 풀었다. 부은 얼굴로 웃는 것도 예쁘다고 했었는데. 지금의 하오에게도 어떻게 느껴지려나

 

"저도 많이 할 거니까 답장 꼬박꼬박해야 돼요. 알았죠?"

"알았어."

 

하오가 천천히 미소를 지었다. 한빈이 울지 않아 안심한 걸까. 집에 돌아가게 된 게 기쁜 걸까. 알 수 없는 것투성이였지만, 한빈은 하오가 약속을 잘 지키는 사람이라는 걸 알았다. 같이 일을 할 때도 그게 좋았고. 그래서 한빈은 그것을 믿으려 했다

 

 

 

"하오 형이 왜 가보랬는지 알겠네."

"형이 너한테 연락했어??"

 

하오를 믿으려 한 것과 별개로 한빈의 일상은 순조롭게 엉망이 되어갔다. 하오가 연락도 자주 하고 꼬박꼬박 답장을 해오는데도 그랬다. 잦은 연락 중에도 하오에게 티를 내지 않았다고 생각했는데, 규빈을 보낸 걸 보면 다 들킨 모양이다.

 

"지금 그걸 물어요?"

 

한빈의 양 어깨를 붙잡고 앞뒤로 몇 차례 흔든 규빈이 그대로 한빈을 소파에 밀어 앉혔다

 

"형한테 돌아오는 비행기 정보 보냈다면서요."

"그런 것도 이야기했네..."

 

테이블 위에 널브러진 것들을 쓰레기통으로 밀어 넣던 규빈이 들으라는 듯이 혀를 찼다. 네네. 형한테 비행기 정보 보냈단 이야기도 듣고 이미 아는 이 집 주소도 듣고 점심으로 뭐 먹었는지도 들었네요. 똠얌꿍 먹고 후식으로 두리안도 먹었대요. 도대체 중국을 간 거야 태국을 간 거야?

 

"하오 형이 다른 이야기는 안 해?"

"했죠."

"알려달라고 그러면 좀... 그런가?"

"네. 확실히 그렇긴 하죠. 근데 하오 형도 많이 그랬어서... 형들은 피차일반 아닌가?"

 

고개를 갸웃거리는 규빈에 한빈은 조금 웃을 수 있었다. 어디서 누구랑 만나서 무슨 이야길 했냐고 열심히 묻는 것은 언제나 하오 쪽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한빈의 외출 빈도가 하오보다 압도적으로 높았으니까. 게다가 하오의 얼마 안 되는 지인들은 이내 한빈과도 지인이 되었기에 한빈이 물을 필요도 없었다. 하오가 소개해준 규빈과 하오를 빼고 둘이서 만나서 논다고 툴툴거린 것도 하오였으니.

 

"근데 지금은... 아니니까..."

"아니에요? 절대 나 혼자 가지 말고 유진이든 리키든 데리고 가라고 2 3절을 하던데요?"

 

그 와중에 음빠빠는 카운트 안 할 거래. 완전 평소의 짱하오였구만 뭔... 규빈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삑삑삑삑 하고 현관 비밀번호가 눌리는 소리가 났다. 동그랗게 된 한빈과 규빈의 눈동자가 현관을 향했고 자기 집인 양 자연스럽게 들어온 유진이 더 놀란 눈을 했다.

 

"어? 규빈이 형 와 있었네요?"

"이거 차별 맞죠. 아무리 생각해도 맞는 거 같은데?"

 

나한테는 안 알려준 비밀번호 한유진한테만 알려주는 거 몇 번을 생각해도 편애가 지나친 거 같은데? 나를 이렇게까지 안 사랑하기 있다고? 쓰레기봉투 대신 핸드폰을 들어 올린 규빈은 당장이라도 하오에게 전화를 걸 기세였다. 한빈은 장난으로라도 그걸 말리는 시늉을 하지 못했고. 그걸 본 유진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한빈의 옆에 털썩 하고 앉았다.

 

"하오 형이 알려준 게 아니라 형이 알려줬잖아요."

"내가?"

"저번에 형들 제주도 갔을 때 형 네 회사 난리 났어 가지고... 제가 여기 와서 컴퓨터에 있는 파일들 메일로 보내주고 그랬잖아요. 클라우드에 백업 좀 하라고 그랬던 거 기억 안 나요?"

 

한빈은 그제야 작년 여름휴가 때 제주도의 어느 피시방에서 라면 시켜놓고 카트라이더를 하는 하오 옆에 두고 업무를 봤던 기억을 떠올렸다. 그 이야기를 알고 있는 규빈은 슬그머니 핸드폰을 집어넣고는 쓰레기봉투를 묶고 있다.

 

"그때 알려준 걸 아직 기억해?"

"0706을 까먹는 게 더 어렵죠? 형들 생일 달이라고 굳이 알아야 하나 싶은 이유까지 다 들었는데."

"와 우리 유진이 똑똑하네..."

 

어색한 말투로 유진을 쓰다듬으면 유진의 어깨가 아래로 아래로 내려갔다. 한빈이 힘을 조금도 주지 않았는데도 그랬다

 

"근데 저 실수했어요."

"뭘?"

"하오 형한테 그때 이후로 비밀번호 안 바뀌었냐고 물었거든요. 그때가 언제냐고 그러는 걸 듣고서야 아 맞다 이 형 기억 잃어버렸지 하고 생각난 거예요."

 

유진이 한숨을 푹 내쉬었다. 뭐라고 말해야 하나 했는데 하오 형이 막 웃는 거예요. 내가 너를 속이고 있는 건가? 하면서요. 그런 게 아니라고 그러고 말긴 했는데... 그러면 안 됐어요. 한빈은 덤덤하게 자신의 실수를 인정하는 유진을 꼭 안아주었다. 그 위로 규빈의 온기도 더해졌다.

 

 

 

"리키는 왔다가 갔어요. 내일 아침 일찍 일이 있대요."

-피곤하진 않아?

"조금? 근데 힘든 건 아니에요. 기분 좋은 피곤함?"

-그래도 얼른 자. 애들은 다 잔다며.

"괜찮아요."

 

사람은 왜 하품을 못 참을까. 딱히 졸린 것도 아니었는데. 하오가 웃는 소리가 넘어왔다. 졸리구나. 아니, 그냥 나온 거예요. 응~ 그랬어. 그냥 나왔어어. 한 살 차이인데 하오는 가끔 한빈을 더 어린 것처럼 대했다. 하오가 한빈을 귀여워하는 방식이라고 생각했는데, 어쩌면 하오가 연인을 귀여워하는 방식인 게 아닐까. 하오의 과거 연애사를 목격한 바가 없으니 추측일 뿐이지만. 엉뚱한 곳에서 괜한 질투를 하는 스스로가 어이없어 기운이 빠졌다. 평소엔 저를 어리게 취급하는 하오에게 실컷 어리광을 부렸었는데.

 

-우리 한빈이 이제 잘 시간이잖아~

"왜 자꾸 재우려고 그래요?"

 

나는 더 이야기하고 싶은데. 이어서 나오려던 말을 삼키고 서둘러 웃었다. 형도 이제 자야 하죠? 나머지는 내일 이야기 해요. 한빈아. 좋은 꿈 꾸고, 꿈에 돼지 나오면 나한테 꼭 꿈 팔아요. 알았죠? 와다다 이야기를 쏟아내면 하오는 알았다며 고개를 끄덕인다. 그렇게 통화가 끝남과 동시에 한빈의 얼굴에서 미소가 사라졌다.

평소와 다름 없이 하오를 대하는 건 현실적으로 불가능했다. 평소의 하오와 한빈 사이에 깔려 있는 사랑이 한빈의 몫밖에 없으니. 하오의 몫이 사라진 빈자리를 채운 건 지금의 하오가 선택할 미래가 한빈의 옆이 아닐지도 모른다는 불안이었다. 평소처럼 지내야 기억이 빨리 돌아올 거라고 했는데, 이래서야 하오의 기억이 돌아올 리가 없다.

 

[잘 자]

 

미리 보기에 뜬 두 글자는 곧 어두운 액정에 비친 한빈의 얼굴로 바뀌었다. 별로 보고 싶지 않아 버튼을 아무렇게나 누르면 밝아지는 화면에 하오의 얼굴이 가득 찼다. 보고 싶다. 방금까지 얼굴을 보고 통화를 해놓고는 하오를 그리워한다. 보고 싶은 것이 제 배경 화면의 하오인지, 방금까지 움직이는 걸 봤던 하오인지, 아니면 둘 다인지. 정답이 없는 문제를 풀고 있는 것만 같은 혼란스러움에 한빈은 눈을 감았다

 

 

 

하오의 기억이 돌아왔다. 그에 기뻐하던 한빈은 익숙한 품에 안겨 펑펑 울었다. 등을 토닥이는 손길에 불안했던 것들을 눈물과 함께 뱉어내고 나니 개운해졌다. 다행이라 말하려 고개를 들었을 때, 한빈을 안고 있던 사람이 기억을 잃은 채인 하오라는 것을 알았다. 굳어버린 한빈을 보고 곤란하다는 듯이 웃은 하오가 한빈을 토닥이던 손으로 자신의 얼굴을 가렸다. 손가락 사이로 떨어진 것이 바닥을 적셨다. 저도 모르게 뻗어나간 손이 하오의 어깨에 닿기 전에 멈췄다. 달랠 자격이 있어? 허공에서 웅웅거리는 소리가 한빈을 비난한다. 결국 기억을 잃은 하오는 원하지 않은 거잖아. 아니라고 말하려 해도 목소리가 나오지 않고 고개를 흔들려 해도 온 몸이 굳어버린 것처럼 움직이지 않는다. 멈췄던 눈물이 다시 나기 시작했다. 뿌옇게 흐려진 시야를 밝혀주는 건, 당연하다는 듯이 한빈이 너무나도 잘 아는, 그 손이라서.

형아.

목소리는 여전히 나오지 않는다. 마주한 눈동자는 따뜻하고 다정하게 한빈을 살핀다. 붉어진 눈가를 살살 달래주고 싶은데 몸이 말을 듣지 않는다. 제 눈가에 조심스레 닿는 손끝에 또 울고 싶어졌다. 미안해. 귓가에 들린 말에 그게 아니라고 고개를 흔들고 싶고 미안해하지 말라고 말하고 싶었는데 어느 하나 할 수가 없다. 천천히 안아주는 몸을 꼭 붙잡고 싶은데, 왜 잡을 수가 없지

 

 

 

"형."

 

갑자기 몸이 흔들렸다. 빛이 눈동자를 한 바퀴 스쳐 지나가며 걱정스러운 유진의 얼굴을 보여준다. 가위눌렸어요? 조심스러운 목소리로 물어오는 유진에 한빈은 고개를 끄덕였다. 몸이 움직이는 걸 보니 그건 꿈이 맞았구나

 

"응... 그랬나 봐."

"규빈이 형이 콩나물국 시킨 거 슬슬 도착할 때라서 깨웠어요."

 

술은 먹지도 않고서 무슨 콩나물국을 먹자는 건지. 작게 툴툴거리며 일어나는 유진에 한빈은 그제야 정신이 들었다. 베개 옆에 놓인 핸드폰을 보면 여전히 알림창에 [잘 자]라는 하오의 메시지가 남겨져 있다. 그걸 누르고 들어가 제 속마음을 털어놓았다

꿈에 형이 나왔는데 내가 못 안아줬어. 미안해. 대신에 내일 꼭 안아줄게.

한빈은 망설이지 않고 전송 버튼을 눌렀다. 자기 전의 혼란은 꿈속의 눈물로 단단하게 뭉쳐졌다. 생각했던 것보다 작고, 심장과 닮은 단순한 모양으로.

 

 

 

"하오 형!"

 

분명 기내용 캐리어 하나를 들고 갔는데 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건지 커다란 캐리어가 하나 더 늘었다. 서둘러 큰 쪽을 제 손에 넣고 하오를 끌어안으면 하오의 팔이 익숙하게 한빈에게 감겼다. 어제 아침에 보냈던 빨간 볼을 하고 눈을 동그랗게 뜬 이모티콘과는 다른 자연스러움에 한빈은 웃음이 났다

 

"보고 싶었어..."

 

아구구~ 그랬어. 나 보고 싶었어어. 어린애를 다루는 듯한 말투가 절로 나오자 하오의 얼굴이 턱하고 한빈의 어깨에 올라왔다. 응. 엄처엉. 말끝을 늘리며 어깨에 얼굴을 부비는 하오를 온몸에 힘을 주어 꼭 끌어안으면 머지않아 하오가 아야야 하고 아픈 척을 한다. 그에 하오를 놓아주며 얼굴을 보면 하오는 배시시 웃고 있었다. 한빈은 하오가 이렇게 웃는 것을 좋아했다. 사실 웃지 않을 때도 좋았다. 남들은 어려워하는 무표정한 얼굴도 섹시해서 좋았고, 식탁에 발가락을 찧어서 울먹일 때도 귀여워서 좋았다. 하지만 꿈에서라도 울리지 말아야지. 어디서든지 꼭 안아줘야지. 기억을 잃은 하오든 기억이 돌아온 하오든 그런 건 이제 한빈에게 중요하지 않았다. 눈앞에, 제 곁에 있는 하오가 한빈의 하오이므로.

 

"손 줘."

 

당당하게 내민 손이 덥석 하고 잡혔다. 고개를 마구 끄덕이는 하오의 얼굴은 입꼬리에 힘을 제대로 못 주는 중이었다. 뭐가 하오를 스멀스멀 웃게 하는지 몰라 고개를 갸웃하면 이번에는 좌우로 흔들린다.

 

"좋아서 그래."

"그래?"

"응. 성한빈 너무 좋아."

"나도 좋아해."

 

한빈의 불안이 사라진 틈을 채워오는 것은 하오의 사랑이라. 한빈은 하오의 손을 놓아주지 않을 것이다. 지금까지 그랬던 것처럼, 늘. 앞으로도 영원히

 

 

**

 


 

 

 

"형은 병원에서 깼을 때 나 보고 어땠어?"

"놀랐고, 미안했지. 그리고 좀... 실패했다고 생각했어."

"실패?"

"응. 잘 보이고 싶었는데... 실패했네 하고."

 "나한테 잘 보이고 싶었어?"

"응. 너 좋아했으니까."

"나 좋아했다고? 그때도??"

". ...몰랐어?"

"몰랐어... 아니 그럼 형은 나랑 사귀는 거 알고 나서"

"엄청 좋았지. 같이 살기까지 한다고? 개쩐다고 생각했지."

"개쩐다는 말은 대체 어디서 배웠어..."

 

 

(C) cinéclub. design by STUDIO B3.